문득 아주 오래전 한 여인의 이름이 생각나 훌쩍 떠난다, 누구나 풋풋했던 첫사랑의 추억이 봄바람과 함께 시나브로 떠오른다. 그녀를 맨 처음 본 햇수를 손가락으로 헤아려본다, 오메! 10년 단위로 한 손이 꽉 찬다. 그녀의 이름은 ‘구송이’였다, 수수하면서, 어찌 보면 촌티도 나고, 늘 운동화에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다니던 그녀. 그래서 나는 그녀를 ‘아홉 송이’라 불렀다. 꽃을 꼭 아홉 송이만 선물했던 그녀가 보고 싶어진다.

◇바람, 파도, 시간, 그리고 옛 시절

소나무가 많고 지형이 사람의 귀를 닮아서 송이(松耳)도로 불린다는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 언젠가 좋은 인연의 길이 열려 서로 하얀 머리카락을 해풍에 날리면서 사각거리는 송이도 하얀 몽돌밭을 함께 걸으며 바람도, 파도도, 시간도, 모두 옛 시절을 되돌려보는 영화의 한 화면으로 보고 싶어진다.

송이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뱃길이 아주 힘들었다. 법성포를 지나 계마항에서 배를 타야 했는데 뱃길에 풀등이 있어 배 시간이 날마다 들쭉날쭉했다. 여차하면 배를 놓치기 일쑤였다.

지금은 향화도에서 물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전 8시, 오후 2시30분에 갈 수 있다. 오전에 배를 타고 들어가 돌아보고, 오후에 나오는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해졌다. 향화도에서 송이도까지는 1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몽돌 구르는 소리만으로도 시원

송이도는 직설적인 섬이다. 섬의 명물, 몽돌 해변을 숨기지 않고 바로 보여준다. 전국에서 유일한 아이 주먹만 한 몽돌 해변이 1㎞ 남짓 된다. 우리는 해변, 해수욕장이라고 하면 하얀 모래사장을 떠올린다. 하지만 송이도 해변에는 모래가 없다. 작은 돌로만 이뤄져 있다. 그것도 검정 몽돌이 아닌, 하얀빛의 몽돌이다. 느낌이 색다르다. 크고 작은 돌들이 오랜 세월 파도와 부딪히며 다듬어진 몽돌이다. 큰 것은 주먹보다도 크고, 작은 것은 바둑알만 한 것까지 지천인 몽돌밭이다.

파도가 밀려와서 몽돌에 쏴-하고 부딪히고, 파도가 물러가면서 몽돌이 또르르륵 소리를 내며 짜글거리는 소리도 정겹다. 그 소리에 귓전이 시원해진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경쾌해진다. 몽돌이 구르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송이도 여행의 본전을 뽑을 수 있다.

신발을 벗고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도 바다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몽돌을 모아서 탑을 쌓고, 발바닥 모형을 만들어 보면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즐겁다. 납작한 몽돌을 들고 바닷물을 향해 옆으로 던지는, 물수제비를 뜨는 체험도 재밌다. 몽돌 해변은 자연이 선사한 놀이공원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바닷물에서 솟아나는 신비한 약수터

맨발로 다녀도 발이 전혀 아프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몽돌로만 이뤄져 있다. 건강지압인 발바닥이 후끈거리도록 걷다 지치면 몽돌 바닥에 앉기도, 눕기도 하면서 쉬어보자. 초여름의 더위를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걸어보자. 해변에 끝이 날 무렵, 바닷물이 가득 차면 바닷물에 잠기는 신비한 약수터가 있다. 물이 빠지고 삽으로 파면 거짓말같이 샘물이 솟아나는데, 물은 염도가 0인 순수 약수다. 물맛이 좋을 뿐 아니라 신경통에 묘한 효능이 있다고 소문나 있다. 송이도를 찾는 여행객에는 신비의 오아시스이다.

◇물결바위, 촛대바위, 거북바위 기암괴석 즐비

몽돌 해안도로는 포장이 잘돼 있어 역시 걸을 만하다, 해안가의 큰 바위들을 어느 예술가가 조각하듯이 한 조각 한 조각씩 작품을 만들어 놨다, 돌의 재질이 참 특이하게 퇴적된, 해식애(海蝕崖, sea cliff)로 불린다. 송이도는 해식애는 동해안처럼 크지는 않으나 오목조목한 작은 해식애이다.

송이도 동쪽 해안을 제외한 전 해안이 해식애로 둘러싸여 물결바위, 촛대바위, 해식동,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널려 있다.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 제361호 노랑부리백로, 제389호 칠산도 괭이갈매기, 저어새 등의 번식지로 알려져 있다.

◇물 빠지면 각이도까지 십리길 걸을 수 있어

마을 뒤 고개를 넘으면 드넓은 신비의 바닷길이다. 1년에 200일 정도는 웬만한 도심지만 한 풀등을 우리에게 내놓는다. 바닷물이 빠지면 건너편의 섬 각이도까지 족히 십리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바닷길의 폭이 수 ㎞에 이른다. 마을 사람들은 경운기를 타고 들어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꽃게, 물고기 등을 줍는다. 그리고 또 일부는 바지락, 대합, 대나무를 닮았다는 대맛 등을 채취한다, 이 풀등에서 맛이 많이 나기 때문에 풀등을 ‘맛 등’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의 명품 대맛은 맛 조개 중에서도 맛이 최고다. 담백할 뿐 아니라 철분이 풍부한 식품으로 소문나 있다. 양념 하나 더하지 않고 대맛 만을 볶아 만든 대맛 두루치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때론 잘 익은 김치에 싸 먹어도 그만이다,

이곳은 송이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다. 마을 어촌계와 상의해 체험을 신청하면 대합, 바지락, 동죽, 대맛을 채취가 가능하며, 운이 좋은 날은 꽃게도 주울 수도 있다.

◇왕소사나무 산림유전자원 보호림 지정

눈여겨볼 만한 곳은 또 있다. 우리나라 특산인 왕소사나무 군락지이다. 송이도에서 가장 높은 왕산(161m)에 100여 그루가 한데 모여 있다. 해안가가 아닌 산정에 왕소사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는 게 특이하다.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돼 있다.

송이도에는 육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없다. 육지에서 충분한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큰내기해수욕장 기암괴석

송이도 몽돌

각이도 풀등

송이도 몽돌 해수욕장

관광객들이 풀등에서 갯벌체험을 하고 있다.

풀등에서 갯것을 채취중인 마을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