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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뮤직 줌(24)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파워풀한 대범함…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2021년 03월 18일(목) 10:10
차이콥스키 Piano Concerto 1번 서주 카덴차.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보스턴에서 초연했던 뷜로.
시작부터 굵직하고 긴 여운 남기는 주제선율
‘1악장 서주’ 백미…독주자 입장에선 큰 부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완성하긴 까다로워
루빈스타인 혹평…곡 초연은 보스턴서 뷜로가

루빈스타인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서주를 가진 차이콥스키(1840~1893)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마치 러시아 음악의 특징을 응축해 놓은 듯한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곡이다. 클래식 전문 웹사이트인 ‘Presto Classical’에 기록된 이 협주곡의 CD가 211점이 넘는 것만 봐도 이 작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고전적인 협주곡 양식에서 1악장의 1, 2주제를 오케스트라가 연주 후 독주 악기가 등장해 앞에 연주된 주제 선율을 재연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기존의 협주곡 양식을 벗어나 과감한 시도를 선보였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선율과 반주’를 교대로 들려주고 있다. 시작부터 굵직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주제 선율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각인효과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곡의 백미는 오케스트라 선율을 뚫고 피아노의 육중한 화음진행인 ‘1악장 서주’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인상적인 서주의 주제는 다시 재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폭발적인 진행은 3악장 코다에서 재연된다. 피아노 독주로 긴장감 넘치는 9마디 옥타브 진행 후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 1악장 서주의 감동을 연상케 하며 화려하게 마무리 한다.

보통 1악장의 종지 전에 독주자의 기량을 보여주는 카덴차를 배치하는데, 차이콥스키는 곡의 서주에 카덴차를 한 번 더 배치시켜 청중을 압도한다. 반대로 독주자의 입장에서 시작부터 등장하는 카덴차로 많은 부담을 주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기교를 가졌더라도 대범하지 못하고, 자기 조절이 안된다면 연주를 망치기 쉬운 곡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협주곡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완성하기 까다로운 협주곡이 틀림없다.

보통 이러한 이유로 국제콩쿠르 결선에서 이 곡이 자주 연주되고,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도 도전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4년에 한 번씩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지정곡으로 나오는 이유는 차이콥스키 이름의 콩쿠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범함과 파워풀한 연주를 보여줄 피아니스트를 가려내는 데 최적의 협주곡이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
이 협주곡의 헌정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아마도 차이콥스키가 작품에 대한 고집과 욕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버려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차이콥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였으며 루빈스타인은 모스크바 음악원의 원장이었다. 차이콥스키가 1875년 모스크바의 러시안 음악협회의 공연에서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루빈스타인이 초연을 부탁하고 헌정하려고 했지만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유는 루빈스타인은 연주가 불가능한 곡이라 혹평을 하고, 작품의 몇 군대를 지적하며 자신의 요구대로 수정하지 않으면 초연이 불가능 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난 후 차이콥스키의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과 편지에서 “이 사건은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최악의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고 당시를 기록했다.

결국 초연은 1874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지적이고 열정적인 연주를 보여줬던 독일의 피아니스트 뷜로에게 맡겨졌다.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동료에게 인정받지 못한 작품의 혹시 실패할지 모르는 불안함을 지구 반대편에서나마 초연하고자 했던 결연한 의지로 당시 미국 투어를 준비하고 있었던 뷜로를 통해 실현했다. 결국 초연은 차이콥스키의 의지대로 원본 그대로 1875년 10월 25일 보스턴에서 뷜로의 연주로 이루지고, 미국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3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성공적인 초연을 마쳤다. 그 기세를 몰아 더욱 완성도 높은 연주와 호평을 받으며 그해 11월 22일 뉴욕에서 담로쉬의 지휘로 한 번 더 무대에 올려졌다. 곡의 헌정은 차이콥스키의 원석을 알고 초연을 한 뷜로에게 돌아갔다.

제15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한 장면.
러시아에서 초연은 1875년 11월 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 크로스에 의해, 11월 21일 타네예프의 연주로 모스크바에서 성공적으로 마쳤다. 당시 지휘는 이 협주곡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루빈스타인이 맡았다. 미국의 성공적인 초연 소식을 들은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차이콥스키와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서 이 공연이 성사되었다.

차이콥스키는 성공적인 초연 후 오리지널 버전으로 곧바로 출판됐지만 1876년 영국 초연을 맡은 피아니스트 단뢰더와 실로티의 조언을 받아 몇 곳을 수정 후 1890년 오늘날의 버전이 완성되었다. 현재의 오프닝의 묵직한 화음진행은 실로티의 아이디어였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연주에 어려움을 더 주었지만 소리를 크게 바꾸지 않고 한두 음을 더함으로써 보다 풍성하면서 묵직하게 확장되었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듣고 있는 이 협주곡이 오늘은 더 특별하고 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못 들을 수도 있었을 작품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뛰어난 명작은 탁월한 조력자와 작곡자의 작품에 대한 애착과 열정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광주시립교향악단 운영실장

차이콥스키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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