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에서 동동거리고 있다. 휴일이면 시골로 향하는 남편 손에 들려 보낼 반찬을 싸기 위해서이다. 음식 보따리를 꾸리는 일이야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요즘 부쩍 신명을 내는 것은 예전의 버릇이 도졌다고나 할까.

보따리에 대한 내 이력을 들춰보자면 제법 긴 세월을 거슬러야 한다. 동생들을 데리고 중학교부터 시작한 자취생활은 손에 보따리가 분신처럼 들려 있게 했다. 쌀과 반찬은 물론이고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 주전부리들까지 싸 들고 와 늘 허기져 기웃대던 친구들의 입까지 즐겁게 했다. 단연 보따리 싸기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싸 온 것들을 펼쳐놓고 먹을 때마다 생색을 내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나 혼자만의 보따리가 분명 아니었다. 자식들을 염려하며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먹거리들을 그저 싸 오는 일뿐이었다.

어머니와 맏이인 나, 우리 모녀의 보따리는 세월과 함께 자양분이 되어 형제들을 하나둘 성인으로 입성시켰으며, 순서대로 가정을 꾸려 여러 대도시로 흩어지게 했다. 당연히 어머니의 보따리 싸기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어머니의 보따리가 전국 각지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한때 어머니는 틈만 나면 재봉틀 앞에 앉아 보자기를 만들었다. 보자기뿐만 아니라 예쁜 헝겊을 이어 붙여 내용물을 곱게 덮어 보낼 조각보까지 지으셨다. 보자기의 ‘보(褓)’는 포대기를 나타내는 뜻으로 물건을 싸거나 덮는 천을 의미하며, 물건을 놓고 싸서 끝과 끝을 잡아 동여매면 보따리가 된다. 글자에 ‘보호할 보’가 들어있는 것은 물건의 원형이 변하지 않도록 잘 지켜준다는 뜻이겠지만, 뭔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 주어지는 선물꾸러미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선인들 역시 물건을 싸놓으면 복이 간직된다는 믿음으로 보자기를 사용하곤 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슬금슬금 보자기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대신 택배라는 배달 방법이 생겨났다. 크고 작은 비닐봉지들이 등장했고, 각종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상자가 현관까지 척척 옮겨졌다. 국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깨끗하게 전달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으나, 그 편리함이 마음 가득 차오르는 감동과 행복감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일렁였던 어머니의 보따리가 날이 갈수록 더욱 그리워졌다.

불혹을 목전에 둔 어느 날, 나는 다시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오매불망하던 시골집을 마련하여 텃밭 농사를 짓게 되었다. 주말을 지내야 할 음식 보따리를 챙겨야 했고, 돌아올 땐 수확한 농산물과 먹고 남은 음식들을 다시 싸 와야 했다. 가져온 것들을 형제나 주변에 나누는 일 역시 보따리 싸기였다. 때로는 채소나 과일 그대로, 때로는 반찬과 잼 등을 만들어 정성껏 보따리를 쌀 때마다 행복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보자기와 조각보를 적재적소 사용하는 즐거움도 컸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대를 잇고 있다는 자부심은 또 다른 소명감까지 안겨주었다.

상자 포장은 겉모양만을 보고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선물을 받아 포장지를 뜯을 때 그 과대포장의 허탈함은 보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마저 상쇄시켜버리곤 한다. 그에 비해 보자기로 싼 보따리는 내용물을 적나라하게 가늠할 수 있는 솔직함이 있다. 그만큼 보따리는 싸는 사람의 마음과 심리상태가 그대로 담기기 마련이다. 그 의미를 조금은 좇고 싶었는지 명절마다 선물보자기가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 상자나 바구니로 포장을 마친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겉만 싸는 거라서 보따리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역부족이다.

요즈음 실생활에서 보따리가 자취를 감춘 대신 언어생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는 듯하다. ‘웃음보따리’, ‘이야기보따리’, ‘선물 보따리’, ‘상상 보따리’, ‘요술 보따리’, ‘노래 보따리’ 등 대부분 좋은 의미를 지닌 것이 많다. 누군가에게 기쁨이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된 행운의 묶음이라고나 할까.

암울하기 그지없는 세상 속에서 훈훈한 소통의 보따리들을 싸고 푸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