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퇴근 후 직장 앞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는 대신, 운동 삼아 두세 정류장 정도는 걸어 다니곤 했다. 마침 길목엔 특색있는 가게들이 많았었는데 늘 여행객들이나 연인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구경하는 일은 또 다른 흥밋거리였다. 코로나가 닥치면서부터 갑자기 생경한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분간 휴업'이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내걸렸고, 엊그제까지 왁자지껄했던 가게가 손님 대신 분주히 움직이는 철거작업 직원들로 채워졌다. 대로 밖까지 흘러나온 음악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줬던 '그 재즈 카페' 역시 아쉽게도 코로나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요즘 국회에서 4차 재난지원금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아직 지급대상이나 지원액 규모가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자영업자 지원에 대한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그러한 정책이 과연 경제적으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의문의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겠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최소한 복지적 관점에서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에게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용과 실업간 완충 역할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평균 이상이지만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임금근로자에 비해 그다지 촘촘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용어 자체가 말해주듯 자영업은 업주 자신의 책임하에 직접 경영하는 사업이므로 실패할 경우 그 손실을 자영업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등 위험부담이 크다. 특히 영세한 자영업자의 경우 한 번의 실패로도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금근로자의 경우 직장을 잃더라도 실업급여를 통해 최소한의 생계비를 일부라도 보전받고 구직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겠지만 영세 자영업자는 이러한 보호장치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 전 정부가 자영업 일부 직업군에 대해 고용보험가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이들을 사회부조라는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켰지만 여기서 제외된 자영업자가 여전히 많다는 점에서 아직도 갈 길이 먼 듯하다.

자영업은 매출이나 업황이 경기 상황이나 사람들의 소비심리 등에 매우 민감한 특성이 있어 코로나와 같은 전방위적 외부충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또 자영업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고 취약한 업종에서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더욱 클 것이므로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자영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등으로 특히 도소매업이나 음식, 숙박업 등 대면접촉이 요구되는 업종에서 피해가 컸는데 이들 업종은 상대적으로 높은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적은 자금만으로도 창업하기 쉬워서 원래부터 내부 경쟁이 치열하고 장기간 영업할 가능성도 낮은 업종이었다.

몇 년 전 통계이기는 하지만 통계청의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 혼자 운영하는 음식·숙박업의 경우 비단 코로나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5년간 폐업하지 않고 살아남을 확률이 20%가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자영업이 고용과 실업 간에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점도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를 보호해야 할 이유가 된다고 본다. 실직했거나 퇴직 후 재취업이 어려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적지 않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영업은 실업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다. 실제 이는 관련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취업자 통계는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한 비임금근로자와 임금근로자의 합으로 계상되는데, 임금근로자 증감과 비임금근로자 증감 간에는 부(-)의 관계가 나타나기도 한다.



-정부 차원 조속한 지원 필요



임금근로자가 줄면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1월 광주지역의 취업자 수가 200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반면, 자영업자 수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증가하였다. 이는 직장을 잃은 사람 중 일부는 실업자로 분류되거나 구직활동을 포기하여 취업자 통계에서 아예 제외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일부는 창업을 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 여기에 임금을 받고 자영업체에서 일하는 종사자까지 합하면 지역내 총 취업자의 40%에 이른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자영업의 피해가 지속될 경우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이 광범위할 것임을 가히 짐작케 하는 규모다. 자영업자에 대한 조속한 지원이 필요하며, 주어진 재원이 한정된 만큼 정교하게 설계된 정책 집행을 통해 필요한 이에게 지급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