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툭 툭, 무슨 소리인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호흡을 다독이며 잠을 청해 보지만 머릿속이 말짱해지기만 한다. 의식의 모서리를 스치며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저 소리. 눈을 감으면 선율 같기도 하다가, 눈을 뜨면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도 같다.

자정을 넘긴 지도 한참인 이 시각,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개수대에 떨어지는 수돗물 소리인지, 홈통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인지, 벽 건너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톺아보아도 짐작할 수가 없다.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귀를 열고 더듬이를 세워 주변을 탐색한다. 주방은 고요하고 밖엔 비가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수대도 홈통도 아니다. 화장실까지 살펴보아도 별 이상이 없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면 이리 선명하지도 않을 텐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다시 자리에 눕는다. 여전히 소리는 들려온다. 귀가 더 예민해진다. 모르겠다. 차라리 소리에 귀를 맡겨두자. 오늘 밤은 그냥 저 소리로 밤을 새워 보자. 운율 삼아 느긋이 즐기는 편이 낫겠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한데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같고 느려지는 것도 같다. 탁하기도 하고 때론 투명하게도 들린다.

소리는 차츰 어떤 기억을 불러들인다. 의식의 갈피에 스며있는 울음과 눈물이다. 그래, 눈물이 소리를 내면 울음인 게지. 불현듯 가슴이 바싹 조여 온다. 소리 안에 눈물이 숨어있었단 말인가. 소리는 결국 뜻하지 않은 울음을 끌어온다. 그리고 울음은 다시 되돌려 눈물을 소환한다. 귀로 눈물을 듣고 있는 셈이다. 울음 속에서 기어이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어릴 적, 방학이면 한 마장 밖에 사는 막내 고모네 집에 놀러 가곤 했다. 부모님을 졸라 그곳엘 가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모는 신작로 가에서 가게를 하고 있어서 군것질거리가 많았다. 고모는 큰 유리병 속에 담긴 알사탕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곤 했다. 하나 그때 신작로 건너 벌판을 무연히 바라보곤 하던 고모였지만, 나는 단물이 흐르는 사탕을 입에 물고 진종일 굴리느라 정신 팔려 고모와 눈을 제대로 맞추질 못했다. 그 무렵 고모부는 밖으로 배돌며 집에 머무르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때 그날 밤, 무슨 소리엔가 잠이 깨고 말았다. 대청마루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일어나 그쪽을 바라보니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고모였다. 얄푸른 달빛이 내려앉은 마루 귀퉁이에 앉아 숨죽여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왜 저리 새붉게 울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고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다.

어느 봄날이었다. 꽃샘바람이 치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건널목에서 파랑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코끝이 시큰하고 울대뼈가 알알하며 속이 우꾼하더니 가슴 저편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쳤다. 순간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 무슨 일인가. 신호등이 바뀌었지만 맞서 오는 사람들이 쳐다볼까 봐 그 자리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쏟아진 눈물의 이유를 아직껏 알지를 못한다.

저 소리의 출처를 알면 잊고 잠을 청할 수 있으련만, 하나 이젠 구태여 찾지 않으련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기보다 소리에 묻히는 게 더 낫겠다. 출처 불명의 소리는 울음이 되고 다시 눈물로 바뀌어 의식의 켯속으로 스며든다. 알 수 없는 삶의 조각들이 귓속에서 웅얼대고 앙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 눈물은 가슴의 서늘한 감각이자 똬리를 튼 감정의 결정체이지 않은가.

출처 불명의 소리, 여전히 멈추질 않는다. 그날 밤 고모가 삼킨 울음의 정체와 바람 치는 봄날 뜬금없는 눈물은 어디서 서성대다가 그렇게 우우우 몰려온 것이었을까. 등뼈를 세우고 귀를 벼려 눈물을 듣는다. 눈물에서 그 답을 듣고 싶다. 존재의 뿌리와 비의가 담긴, 그 눈물의 뚜껑을 열어보고 싶다. 눈물은 강 저편 죽음 쪽보다는 꽃이 피는 삶을 향해 떨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