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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뮤직 줌(21)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소중한 삶, 열정적으로 살고 사랑하라
뮐러 연작시 ‘겨울 나그네’, 방랑자의 쓸쓸함 그려
슈베르트, 음악으로 심경 표현·절망적 고독 극대화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 속절없는 슬픔 극적으로

2021년 01월 28일(목) 08:43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작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신년의 한파가 오락가락 할 사이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이 지난 주에 지났다. 음악에서 사랑과 절기는 중요한 소재로 많은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영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이 두 가지 요소의 ‘시’와 ‘예술가곡’을 통해 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에서 방랑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1827년 프란츠 아이블이 그린 슈베르트의 초상화.
슈베르트가 뮐러(Wilhelm Muller, 1794~1827)의 연작시 ‘겨울 나그네’를 발견한 것은 1826년 말쯤이었다. 뮐러의 시는 1823년 첫 열두 편이 먼저 발표되고, 이듬해 열두 편을 더한 후 앞서 발표된 시들의 순서를 정리해 총 24편 연작시 구성으로 출판되었다. 슈베르트는 1827년 2~3월 겨울 나그네의 첫 열두 편 구성의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고, 나머지 후반부는 그 해 10월에 완성했다. 출판은 빈의 하슬링거 출판사에 의해 전반부가 1828년 1월 14일에, 후반부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28년 12월 30일에 발행되었다.

빌헬름 뮐러의 ‘겨울 나그네’는 낭만주의 문학의 특징인 여행기 형식을 띤 시로 전체 스토리는 사랑하는 연인의 곁을 떠나 추운 겨울밤 방랑의 길을 떠나는 한 방랑자의 처절하고, 쓸쓸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슈베르트가 이보다 4년 전에 완성한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또한 1821년에 출판된 뮐러의 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당시 뮐러의 시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그리고 인기 있는 시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독일 출신의 젊은 시인 뮐러는 시인이자 문학비평가, 소설가였고 번역가, 학자, 도서관 사서 등 문자와 관련된 모든 방면에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인 낭만주의 사조의 영향으로 꿈과 이상을 동경하고, 낭만적인 사랑과 희망, 자유를 중시하며 형식상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슈베르트보다 2년 연상으로 시의 줄거리와는 다르게 상당히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가 죽음을 예상하거나 죽음 앞두고 시를 쓴 것은 아니었다.

뮐러와는 반대로 이 가곡을 작곡하고 있을 무렵 슈베르트의 건강상태는 악화되고 있었다. 당시 슈베르트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음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지나친 음주로 인한 두통인 것인지, 매독과 관련된 불편한 증상인지, 그는 언제든지 건강이 악화될 거라는 불안감을 안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슈베르트가 극도로 우울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겨울 나그네’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당시 슈베르트의 친구인 요제프 폰 슈파운(Joseph von Spaun, 1788~1865)은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Winterreise) 악보.
한동안 슈베르트는 침울한 기분 속으로 가라앉아 어딘가 언짢은 사람처럼 보였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묻자 슈베르트는 짤막히 대답했다. “글쎄요, 곧 듣게 되실 테고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슈베르트는 내게 와서 “오늘 쇼버네 집으로 오세요. 음산한 연가곡집을 들려드릴 테니까요. 곡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실지 무척 염려가 됩니다. 지금까지 썼던 그 어떤 가곡보다도 저를 힘들게 했던 곡들이거든요.” 슈베르트는 감정이 잔뜩 실린 목소리로 겨울 나그네 전체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 우울한 분위기에 우리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슈베르트는 방랑자의 심경에 따라 음악의 표현과 분위기를 극대화 했다. 그는 시와 어울리는 선율과 전곡에 걸쳐 피아노 역할 또한 방랑자의 심정과 곡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때로는 피아노 반주가 더 아름답게 방랑자의 노래를 만들거나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방랑자의 노래를 꾸밈없이 담담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쓴 그 어떤 곡보다도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완성하고 만족해 했다.

슈베르트의 절망적인 고독이 전곡을 통해 스며 나오는 이 가곡집은 특히 마지막 곡인 ‘거리의 악사’에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조인다.
방랑자는 마을 어귀에서 얼어붙은 손으로 동냥을 하며 손풍금을 켜는 거리의 늙은 악사를 마주한다. 방랑자는 노인에게 자신과 비슷한 연민을 느끼고, 자신과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말을 건넨다. 악사의 쓸쓸한 모습과 방랑자의 고독이 속절없는 슬픔을 극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베르트 생가.
거리의 악사(Der Leiermann)
-뮐러(Wilhelm Muller)

마을 저편에 손풍금을 연주하는 노인이 서 있어
곱은 손으로 힘껏 손풍금을 연주하고 있네
얼음 위에 맨발로 서서 이리저리 비틀거리네
조그마한 접시는 언제나 텅 비어 있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네
개들은 그를 보고 으르렁거리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네
오로지 연주를 계속할 뿐, 그의 손풍금은 멈추질 않네
기이한 노인이여, 내 당신과 동행해도 될는지?
내 노래에 맞추어 당신의 손풍금으로 반주를 해줄 순 없는지?

슈베르트는 그의 마지막 생애 역작들을 남겼다. 겨울 나그네(D.911)를 비롯해 피아노 트리오 2번(D.929),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D.934), 피아노 듀오 환상곡 f단조(D.940), 그리고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곡(D.958~960)까지 그의 말기 작품은 모두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아우르는 주제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삶은 소중하고,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음악으로 선물한 것 같다.
/광주시립교향악단 운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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