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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진다리붓’ 가업 계승한 안명환 필장
2021년 01월 27일(수) 15:16
안명환 필장
4대째 ‘진다리붓’ 가업 계승한 안명환 필장
대가들이 인정한 명품붓 “동서양 붓 중 으뜸”
진다리붓, 백운동 옛 명칭 아냐…특허 상품

좋은 붓은 ‘첨제원건(尖濟圓建)’의 조건을 갖춰야한다. 붓 끝이 뾰족하고 터럭이 가지런해야하며, 먹물을 풍부하게 머금을 수 있어야한다. 탄력이 적당해 사용 후에도 원래의 모습을 갖추는 모양새까지. 명품붓의 조건은 까다롭지만 기본에 충실하다. 4대째 첨체원건의 조건을 갖춘 붓을 만들어 유명 서예가들의 예술혼을 뒷받침한 ‘진다리붓’을 만나본다.

글 민슬기 기자 사진 김생훈 기자

◇아흔아홉번의 붓 매기

털을 고르는 장인의 눈빛과 손끝이 날카롭다. 가장 질 좋은 털을 솎아내느라 열에 아홉은 버려진다. 붓 모양을 잡은 뒤에도 거듭되는 빗질, 탈락한 모들이 쉴새없이 무릎을 덮는다. 기름이 잘 빠진 털만 붓이 될 자격을 얻는다. 경지에 오른 여러 필장들이 있지만 털에 있는 기름을 빼는 과정에서 미묘한 실력차가 드러나기도 한다. 털은 족제비나 염소 털을 사용한다. 목포, 진도, 해남, 완도 등 전라도 섬 지방에서 나오는 털이어야만 품질이 좋지만 흰염소를 키우는 농가가 드물고, 족제비털 역시 수급하기 어려워 중국에서 흰염소의 털을 수입해 사용한다. 날씨가 추워져 염소의 털이 수북해지고 보온성이 높아지는 12월과 1월은 한해동안 사용할 털을 구비하는 짧은 기간이다. 염소의 겨드랑이 부분 털이 가장 부드럽고 길어 붓을 만드는데 탁월하다. 구입한 털은 황토흙과 쌀겨를 섞어 태운 가루로 마지막 기름을 빼낸 뒤 햇볕에 말려 건조해 사용한다. 가장 질 좋은 털로만 엮어낸 붓은 우뭇가사리를 푼 물에 빨듯이 눌러 점성을 먹여야한다. 물끝보기로 마지막 털을 골라내고, 명주실로 머금은 물을 고르게 빼내면 비로소 완성이다. 전국의 내노라하는 명필가들이 인정하는 안씨 집안표 진다리붓이다. 첨제원건의 조건을 갖춘 것은 물론, 10년 이상 붓을 다룬 서예가들만이 유려하게 다룰 수 있는 특징이 있다.

◇4대째 이어진 가업

‘필장’은 광주광역시가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한 공예기술종목이다. 안재환·안규상·안종선·안명환으로 4대째 광주 남구 백운동에 터를 잡고 붓을 만들어온 가계전승을 인정받아 3세대인 故 안종선 선생이 지난 1985년 3월 처음으로 무형문화재 인정을 받았다. 현재는 4세대 안명환 필장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대대로 이어져오는 무쇠다리미와 빗 등으로 기본에 충실한 붓 매기를 하고 있으며, 털의 질과 길이에 따라 골라낸 뒤 빗으로 솜털과 겉가죽(따대기)등을 벗겨내는 작업인 부검질솜털 작업에 능하다. 털이 구불구불한 것은 힘은 좋을지 모르나 끝이 잘 벌어지고 글씨를 해치기 때문이다. 안 필장이 만드는 붓은 윤기가 흐르고 붓끝이 뾰족하며 낭창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4대째 이어져온 가업이기에 붓 매는 일이 가장 쉬우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아야하는 일이라 말한다.

◇대가들이 애용하는 붓

안씨 집안이 만들어내는 붓은 10년 이상 붓을 잡은 대가들이 즐겨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종화(산수화 2대 화풍 중 하나)로 유명한 의재 허백련 선생은 “진다리붓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라 말하고, 세밀화 1세대 작가인 송훈 선생 역시 “동서양 어느 뛰어난 붓을 써봐도 진다리붓만 못하다”는 평을 남긴다. 이런 극찬과 달리 처음 붓을 잡는 사람이나 초보자들은 진다리붓을 이기지 못해 상이한 평을 남긴다. 털 자체가 낭창해 글씨에 힘을 불어넣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분을 오래 머금어 긴 호흡을 갖기에 진다리붓의 진면목을 알기까지는 긴 수련이 필요하다. 안 필장은 “대개 붓글씨를 처음 배울 때 돼지털이나 인조모처럼 빳빳하거나 억센 털로 맨 붓을 사용한다. 그래야 붓끝에 힘이 들어가 글씨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며 “경지에 이르면 붓이 아닌 글씨와 먹에 힘을 불어넣게 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체를 쓰는지에 따라 본인에게 필요한 붓이 다르다”며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붓을 잡은 지 얼마나 됐는지, 글씨를 쓰는지 그림을 그리는지 집요하게 물어 설명과 함께 붓을 넘긴다. 진다리붓이 유명하다는 걸 알고 붓을 사간 이들 중에는 그에게 사기꾼이라 했던 사람도 많다. 하지만 수련을 거친 후에는 진다리붓만 찾는 경지에 이른다. 그는 가장 보람있었던 일을 묻는 말에 자신이 만든 붓으로 상을 탔다는 전화가 걸려올 때라 말했다. “붓을 사간 이래 아무런 연락이 없어 붓이 마음에 들지 않나, 하고 고민하던 찰나 수상 소식과 함께 ‘역시 진다리붓이다’라는 평을 받을 때가 가장 기쁘다”.

◇‘진다리붓’의 미래

안 필장은 “4대째 이어져오는 붓 매는 일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전승시켜야한다는 생각도 있다”며 진다리붓을 상표 등록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실제 지난 1985년 2월 25일 무형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된 진다리붓은 동일한 명칭이 상표법에 의한 상표로 등록되자 무형문화재 지정을 해제한 뒤 보편적인 명칭인 필장으로 명칭을 변경해 2005년 재지정한 일이 있다. 안 필장에 의하면 진다리붓은 대부분 남구 백운동에서 생산되는 붓을 일컫는다고 알려져있으나, 진다리붓은 안씨 집안이 만들어내는 붓을 지칭하는 붓이다. 그는 “조부 때부터 ‘진교필방’이라는 곳에 납품계약을 맺고 붓을 만들어 보내고 있었는데, 붓을 만드는 이가 아닌 진교필방이 유명해지다보니 남모를 불편을 겪었다”며 지난 1985년에 진교의 ‘다리 교(橋)’자를 순한글인 ‘다리’로 바꿔 ‘진다리 붓’이라는 특허 상표를 등록했다 알렸다.
포털사이트에도 백운동의 옛 지명이 ‘진다리’였다고도 하고, 당시 백운동의 땅이 축축한 것을 의미하는 ‘질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기재돼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 했다. 안 필장은 “특허 상표등록을 마치고 백운동에서 붓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자 ‘진다리’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못 박아 말했다.
이어 그는 붓 매는 기술이 우리나라가 가장 월등함에도 중국의 값싼 붓에 밀려 점차 그 명맥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붓글씨 서예시간을 정해 붓문화가 활성화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작품활동을 병행하고 있고, 증조부 때부터 간직해온 작품이 많으니 백운동이나 양림동 등지에 ‘붓 박물관’이나 ‘붓 문화관’을 만들고 싶다고도 말했다. 4대째 이어져온 가업으로 붓 매는 일을 해왔음에도 늘 긴장을 놓지 않고 예민하게 만든다는 그는 진다리붓의 명성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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