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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글짓기대회 고등부 우수상
2020년 12월 17일(목) 14:31
진정한 민주화와 인권
송원고등학교 2학년 2반
고명한

공리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수백년간 격동의 세월을 거쳐오며, 인류는 수많은 사상이 생겨나고 사라지며 되살아나는 것을 목도했다. 사상의 물살은 인류가 탄 배를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고 막아서거나 뒤흔들기도 하였으나, 결국 역사라는 티를 남기고 스쳐갔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안에 영원히 남아 우리의 가슴을 불태우고 우리의 앞길을 훤히 밝혀줄 사상이 단둘있다. 바로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이다.
1960년대 초, 콘크리트처럼 서서히 굳어져 가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한국전쟁 직후와 냉전이라는 배경을 이용한 군인들의 손에 철저히 박살이 났고, 이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인권 확립을 위해 거의 평생을 바치었다. 우리는 그와 수많은 민주투사들, 당시 민주화를 갈망하던 수많은 시민들이 일궈놓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가 꿈꿨던 완전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는 않다. 김대중이 구상했던 이상세계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우리가 해결해야할 것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경제민주화의 실현이다. 우선 경제민주화란 단어의 의미를 크게 ‘빈부격차를 조정하여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도모하는 것’과 ‘경영에 민주적인 절차를 도입하는 것’으로 놓겠다. 김대중은 70년대에 계층 간의 세력균형, 노동자 경영참여 등을 다론 대중경제론을 내세웠으며, 80년대에는 이해집단 간의 힘의 균형, 협력적 노사관계를 포함한 대중참여경제론을 내세웠고, 대통령 당선 후에는 성장과 복지의 균형, 각 경제주체의 참여를 담은 민주적 시장경제를 내세웠다. 그의 경제관은 미국 망명과 케임브리지 유학 등을 통해 점점 시장주의적으로 변모해갔지만, 균형과 참여라는 최소한의 틀은 유지한 채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과 4대사회보험 정비, 노사정위원회 출범 등의 정책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향해 미약하게나마 전진하였다. 우리가 70년대부터 계속되어온 그의 의지를 이어받아 경제민주화를 일궈낸다면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서 말한 첫번째 의미의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산층을 늘려 사회적인 안정과 통합을 도모하고 유효수요의 증가를 통한 소비 진작과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두번째 의미의 경제민주화를 통해서는 직장에서의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민주적 절차를 더 깊숙이 새겨넣을 수 있다. 또한 노동자 참여를 통해 노동자에게 최적화된 노동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능률과 직장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다. 경제의 발전은 곧 소득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복지와 더불어 실질적 자유의 보장과 행복추구권을 더욱 능동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져올 것이다.
둘째는 권위주의의 완벽한 타파이다. 김대중이 정치활동을 하던 시기는 권위적인 지도자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민주화의 지도자인 김영삼도 외환위기 직전 전문가들이 했던 경고를 정치공세로 치부하며 불통하려 드는 등 민주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로, 대통령의 호칭을 ‘대통령님’으로 확정하고, 학교나 관공서에 걸려있던 대통령 사진을 내리며, 국민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김대중의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화·예술계에 대해서도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정책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확실히 보장한 것 또한 그렇다. 허나,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특정 개인이나 세력이 아닌 다수의 권위로부터도 탈피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지나친 유행 의존과 인싸/아싸의 구분, 나이 혹은 기수를 기반으로 한 위계 문화 등 누구로 특정할 수 없는, 사회에 전방위적으로 포진되어있는 권위주의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권위주의가 사라지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기승을 부리는 꼴이다. 권위주의로 인한 자유의 박탈과 의견의 획일화는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전체주의, 중우정치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반대로 우리가 그것을 타파하고 상호존중하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해 사회가 다양성을 갖추게 된다면 더 수준높은 민주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며, 김대중 또한 민주화에 헌신한 일생과 탈권위를 위한 노력으로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상으로 김대중 정신이 구현된 이상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해야할 일에 대한 내 글을 마치겠다.
여담으로, 이 글의 후반부를 작성하는 도중에 내 글에 주관이 많이 개입된 것 같아 탈락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을 했다. 헌데 다시 생각해보니 계승의 의미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과거의 것과 새로운 것을 융합시켜 그것이 정체되어 소멸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재창조를 하여 남기는 것이 유일한 계승의 길이었다. 김대중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며, 연설하며, 글을 쓰며 그들 속에 영원토록 간직하고 있을, 불변하는 김대중을 넣은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 속에 있는 김대중은 녹아들어서 그들을 제2의 김대중, 제3의 김대중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김대중과 그들이 구상한 세계로 가도록 동력을 공급한 것이다. 내가 이 대회를 알고 참여한 것은 내게 엄청난 축복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새로운 것을 깨닫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내 글이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어딘가에 공개적으로 게재되었으면 한다. 이 글을 읽게 된 누군가가 동력을 받아 새로운 김대중, 새로운 고명한이 되어 이상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행렬에 동참하게 될 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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