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김대중 글짓기대회 고등부 우수상
2020년 12월 17일(목) 14:30
평화를 위하여-영흥고 김태환(손의 온기)

구름 한 점 없는 어느 날,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그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노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낮고 힘없는 목소리에서 노인에게 묻어 나오는 절망이 폭포처럼 쏟아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초 하나를 내게 주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문득 나의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다. 30년 전인가,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 같은 소리에 어머니가 나를 깨워 급히 산으로 올라갔다. 잠결에 산을 오르던 나는 오직 나의 왼손을 꼭 잡고 있던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만 느껴졌다. 한참을 달린 후 나는 잠이 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는 마치 자장가같이 느껴졌지만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어머니가 내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비가 오는 듯 떨어지는 물방울에 나는 잠에서 깼다. 그것은 물방울이 아닌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어머니는 놀란 듯 급히 눈을 닦으시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나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머니에게 아무 말 없이 안겼다. 어머니 품속에서 밤새 내 왼손을 감싸고 있는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제서야 오른손이 차갑다는 게 느껴졌다. 내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도 점점 식어갔다. 해가 떠오르자 어머니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해가 뜨지 않은 듯 우리 동네는 온통 새까맣게 물들여져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하얀 천으로 된 옷이 눈에 띄었다. 나는 재빠르게 옷을 잡았다. 역시나 차가웠다. 내가 안 보이자 어머니가 나를 크게 부르며 찾아오셨다. 나의 오른손에 있는 옷을 보자 어머니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왼손을 잡고 까맣게 타버린 우리의 집으로 돌아갔다. 타버린 우리의 집을 보며 충격에 빠진 잠시 어머니는 필요한 물품만 챙긴 채 화약 안개가 가득한 길을 걸었다, 마을을 나가면서 조용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한동안 침묵으로 이어졌던 순간에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우린 조심스럽게 그곳에 갔다. 그곳에 간 나는 충격적이었다. 사람의 모습인가, 동물의 모습인가. 어머니는 그들에게 얼마 없는 식량을 나눠주었다. 우린 웃음이 가려진 얼굴 속에서 지내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얼굴엔 점차 웃음이 나타났다. 꽃이 필 때 우리의 웃음도 온전히 피어났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총격 소리와 함께 우리의 어둠도 피어난 것이다. 어머니는 그때처럼 나를 데리고 도망쳐 재빠르게 숨었다. 큰 소리가 멈추고 우리는 두려운 얼굴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호랑이 같은 무서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두려워하던 나의 입을 꼭 막으셨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우리의 심장소리도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소리가 눈앞에서 멈췄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도망치려 했지만, 소리는 어머니를 붙잡았다. 결국 나는 손을 놓고 혼자 도망갔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멀리서 들려오는 심장소리도 서서히 작아졌다. 왼손의 온기도 점점 식어져갔다. 내 마음만 뜨거웠다. 구름 없는 하늘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집에 도착한 후 까만 연탄을 태웠다. 밥을 먹고 책을 읽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해가 지고 차가운 밤이 왔다. 어두워지자 나는 아침에 노인이 준 초에 불을 붙였다. 오른쪽에 초를 두고 장롱에서 하얀 이불을 꺼내 누었다. 차가웠던 오른손이 따뜻해지자 왼손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따뜻해졌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저절로 눈이 감겼다. 나의 눈에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나에게 작별 인사라도 하듯 내게 속삭였다. 그 손을 잊지말게...다신 그 일이 있지 않도록 하게. 다음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상하게 그 노인은 그날 이후 보이지 않았다. 봄이 오고 나의 평화로운 삶이 시작됐다. 내 손은 더욱 뜨거워졌다.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