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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글짓기대회 초등부 우수상
2020년 12월 17일(목) 14:22
김대중 글짓기대회 초등부 우수상 백 원 한 장

광주경신여자고등학교

1-7 박한빈



아부지, 우리가 함께이던 날들을 기억하십니까?

한 달에 한번이면 아껴쓰라며 쥐어주시던 1원 한 장을 냉큼 달려가 내 과자 하나, 아부지 곶감 하나 사서 들어가면 아까운 돈을 아부지한테 쓴다며 꾸짖는 말과 달리 종이 덮은 곶감, 아까워 먹지도 못하고 이불 밑에 고이고이 넣어두시던 아부지 생각이 납니다. 그런 아부지의 마음을 알면서도 꾸짖는 말에 토라져 돌아 누워있으면 마치 내 마음을 읽는 듯 따뜻하고 일정한 토닥거림에 잠에 빠져들던 어릴 적의 제가 생각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왜인지모를 공허함이 온몸을 감싸 안아 아부질 찾았더니, 아부지와 함께 이불 밑에 항상 있던 곶감마저 사라지고 이유모를 백 원 한 장과 ‘아부지 금방 댕겨올게’라는 급하게 쓴 듯한 손편지 하나만 남아있던 그날, 나는 아직도 그날 꿨던 달달한 바나나를 맛보는 꿈조차 잊히지 않을 만큼 그날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그때의 나는 어린 맘에 편지는 뒤로하고 큰돈을 가진게 마냥 좋았던건지 언제나처럼 과자 하나와 아부지 줄 곶감을 사러 슈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하루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을 즈음에도 나는 끝내 아부지의 형상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하루, 이틀을 건너 며칠이 지나서야 아부지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른 나이에 이별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고 삶을 버티기위해 안 해본 것 없이 정신없이 살다보니 또 몇 년이란 시간도 나와 함께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그 사이 그날 사둔 곶감이 썩어 없어질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고, 건너건너 전해들은 이야기로 아부지가 북에 계신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아부지가 북에 가신 날 넘지 못할 선 하나가 휴전이란 이름으로 나와 아버지 사이를 갈라놓았고, 그래서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곳에, 불행 중 다행히도 살아 머물러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날 재운 그날 새벽, 들이닥친 인민군이 살인과 잔인함만이 공존하는 전쟁소굴로 아부지를 데려갔다는 사실과, 마치 일어날 일을 미리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모아두었던 그날의 돈 백 원 한 장은 내가 성인이 될 만큼의 생계비였다는 걸 지금에서야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 번 1원을 주시던 아부지가 그날 두고 가신 백 원처럼 하나이던 1에 공을 두 개 더하니 지금 내 마음도 공허함만 두 배가 되었나봅니다.

‘아부지, 나만 두고 어딜 가셨나요. 이제 내 손에 들린 곶감은 주인을 잃었습니다. 아부지, 금방 다녀온다는 약속 잊지않으셨지요.’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지만 나는 어느새 아부지만큼 자라 인생의 중간지점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자란 만큼, 또 세월이 흐른 만큼, 아부지도 많이 변해있겠지요. 눈가에 주름이 깊어진 채 날 보며 짓던 그 인자한 눈웃음이 입가에도 옮겨 자신의 자취를 주름 한 자락으로 남겨뒀을까 하는 상상을 거울 속 비치는 내 모습으로 만들어 내보지만 도저히 잊히지 않는 그 마지막 웃음마저 아부지만큼 만들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아, 지금의 아부지의 모습이 이젠 더이상 그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부지, 우리가 다시 마주할 날이 온다면 우리는 바다 건너에서도 서로를 바로 알아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아무리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나 곶감에 주름 하나 더 생겼다지만 그렇다고 곶감이 아닌게 아니듯이 우리가 아무리 변한대도 핏줄 하나 못 알아보겠습니까.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금방 보러오겠다는 그 약속, 하늘이 아닌 이 땅에서 반드시 지키겠다고, 같은 높이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이 땅에서 마침표를 찍기 전 뒤돌아 날 보러 오겠다고 말입니다.

그날로 9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젠 아부지가 주신 돈이 1원 한 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0년이 흐르면 아부질 잊을까, 10년이란 세월을 홀로 버티게 하려 9년 전 아부지는 내게 백 원 한 장을 쥐어 주셨나봅니다. 하지만 아부지, 10년이란 시간은 아부질 지워내지 못하고 애꿎은 1원만을 지워냈습니다. 이젠 1원을 전처럼 달갑게 맞이하는 사람 하나 만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심난했던 시간을 과거라는 경계로 밀어넣는 것 같아 좋다고 떠들어대는 듯 보이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가 함께이던 시절 하나를 외면하고 지워내는 것만 같아 가슴 한켠이 무겁기만 합니다. 혹여, 기다림의 끝자락에 아부질 만나러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에겐 눈엣가시가 될까 날이 갈수록 변하는 세월이 내겐 두렵게만 느껴지나 봅니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 견뎌야할 것이 이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흐르는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으렵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은 잠시나마 아부질 원망하는데 쓰였던 내 마음의 속죄라고 생각하고는 꼭 붙들고 나만은 변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시간을 날 벌하는데 쓰는 시간으로 잠시동안만 놓아주었다가 이 세월에 익숙해질 때쯤, 아부지가 다시 오실 때쯤 다시 그날로 붙잡아 놓겠습니다. 시간을 내어주고 아부지와 함께할 수 있다면 무엇인들 무섭고,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그 언젠가 아부지가 하셨던 말을 기억합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은 어느 것보다 따스하게 다가와 많은 것들이 좋아하고, 찬바람을 버텨낸 곶감은 그 바람을 오래 버틸수록 더 맛나 아무나 맛보지 못할 음식이 된다고. 귀한 것은 과정에서부터 달라 많은 사람들은 그 과정 또한 귀한 것인 줄 알지만, 실은 누구보다 강하고 힘들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과정 또한 훗날 어느 누군가에겐 그저 몇십년, 그저 잠깐의 슬픔이 스치고 간 것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압니다. 그 언젠가 우리의 만남은 그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빛날 것이라는 것을, 결코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언제일지 모를 그날을 위해 난 이제 추운 겨울의 찬바람을 맞이하려 합니다. 얼마나 찬바람일지, 얼마나 힘든 일인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 어느 것이 온다 하더라도 날 이겨내지 못하도록, 다시 꽃이 피고 살랑대는 바람에 나비가 찾아올 봄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아부지, 몇 년이 지나도, 지금처럼 10년이란 세월이 더 간대도 그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버티고 버텨온 지금처럼 난 그 자리 그대로 꿋꿋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불 밑 곶감도, 남은

1원 한 장도, 시간을 보내주었다가 아부지 오시는 날엔 다시 그 날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그러니 혹시 변했으랴 걱정 말고 오시던 길 따라 나에게 오시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내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백 원 한 장 쥐어주고 가신 그날처럼 말입니다.

아부지, 금방 오시겠다는 그 약속, 그 기약 없는 약속이 언젠가는 선을 지워 우리가 다시 온기를 나누며 손을 맞잡을 날이 오겠지요.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 결국엔 하나라는 사실을, 결국엔 우리의 간절함을 모두가 알고 또 하늘이 알아 비로 눈물로 지워낼 것이라는 것을 오늘도 바라고 기다려봅니다.

‘아부지, 가시는 길 곶감으로 외로움은 달래셨나요. 아부지, 부디 금방 오셔요. 오신다는 소식 들리거든 그때에는 내가 나가 오시는 길 반겨 드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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