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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 에세이-질문과 대답<24> 구 국군광주통합병원 ‘메이투데이’ 전시

나의 아픔으로 상대 치유할 수 있는 예술의 여지

2020년 12월 10일(목) 09:20
구 국군광주병원 내 개인 병동에 설치된 카테르 아티아의 설치 작품. 상처와 치유라는 문맥에서 다의적으로 읽혀지는 작품이다. 마네킹의 다리처럼 조립된 하반신, 거기 입혀진 신발과 양말이 실존과 허구성을 반영한다.
‘아픔’을 천천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줘 깊은 공감
질문과 대답 열려 있을 때 예술 폭 넓어지고 교감
광주민주화운동, 광주비엔날레 중요 키워드지만
무게 덜어내고 고착화 하지 않아야 그 가치 인정


폐사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구 국군광주통합병원 공간을 활용해 광주비엔날레가 5·18 40주년 특별전으로 ‘메이투데이(MaytoDay)’를 열고 있다.

5·18 당시 계엄군 100여명과 민간인 300여명이 치료를 받았다는 이곳은 방치된 시간만큼 유감없이 황폐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 벗겨진 페인트, 낮 시간에도 귀신을 볼 법한 을씨년스러움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왜 하필 이런 곳을 현대미술의 면모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선택하게 되었을까? 그 답은 이곳이 5·18과 관련된 유적이면서 동시에 텅 비워진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시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열쇠로 문을 열었을 때 커다란 홀에 켜져 있는 모니터 4개에서는 인터뷰 또는 도큐멘터리 필름이 구동되고 있었다. 망월 묘역 이장 당시의 필름, 이를 증언하는 인터뷰, 역사적 길목에서 겪는 아픔에 대한 증언들…. 자세히 볼 시간은 없다. 그러나 그 옆에 이어지는 병실 공간에서 작가 카테르 아티아가 말하고자 하는 상처와 그 치유에 관한 설치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의족은 의자에 걸터 앉아 있었고, 마네킹처럼 조립되어 있었고, 어떤 것은 구두가 신겨져 있었고 또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암시하면서 마네킹이자 동시에 사람인 모습이었다. 타의에 의해 어찌할 수 없는 상처, 치유하기 어렵고 치유되어도 평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반복되는 구조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은 작은 병실 칸칸이 하나씩, 좀 다른 모습으로 안치되어 있었다. 5·18이 엮어낸 집단 트라우마는 계속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을씨년해 보이는 구 국군광주통합병원 전경.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계엄군, 민간인 모두 치료를 받던 현장이기도 하다.
그 옆 공간에서는 예배 공간으로 쓰이던 곳에 시오타 치하루(일본)의 ‘신의 언어’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환자와 목자가 만나던 공간, 그곳에 작가는 실타래를 엮어 동굴 속 같은 공간을 연출하고 구석구석에 성경의 낱장을 넣어 영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시오타는 말한다. “우리 마음과 생각과 감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우리의 신념과 결정의 원천이 된다. 몰래 기독교를 믿었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믿고 싶었지만 자신들이 믿을 만한 것으로 변형시켜야 했다. 이는 정신적 이주이다.”

우리는 자신이 믿고 싶은 바대로 변형시켜서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만을 믿는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생사가 갈리는 위급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만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로부터 얻어지는 위안도 시오타가 연출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 만의 동굴 안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시오타 치하루의 설치 작품 ‘신의 언어’. 예배 공간으로 쓰이던 그 공간에 검정색 실로 엮어 동굴 속 같은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 성경책 낱장을 찢어 넣었다.
구 국군광주통합병원 경내에 있는 국광교회, 지금은 폐쇄되어 빈 공간에 영국작가 마이크 넬슨의 설치 작품 ‘거울의 울림’이 진열되어 있다.

그는 2018년 광주비엔날레 당시 이곳에 구 국군광주통합병원 건물에서 수집한 거울들을 설치했다. 그는 묵묵히 걸려있던 자신의 현장에서 극한적인 상황들을 지켜봤던 거울들을 증인으로 소환한다. 그 거울들은 아직도 그 옛 모습들을 견지하면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버려진 공간에서 거두어진 그 사물들은 거울의 특성 상 다른 것들을 비추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들을 응축시킨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거울을 통해 타임머신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고, 미래의 예상치 못한 시간대로 갈 수도 있다. 작가는 그러한 명상적 여행이 아주 가까이에서 실체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손짓으로 알리고 있다.

‘메이투데이’에 동행했던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에게 나는 말했다.

“5·18을 기념해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에서 ’1980년대 목판화‘전이 열리고 있지만, 목판화전이 80년대의 뜨겁고 치열한 문제들을 다루며 꽉 찬 느낌이라면, 구 국군광주통합병원에서의 전시는 같은 아픔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 여백이 있는 여유를 주고 있어서 더 공감이 간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좋게 다가온다.”

구 국군광주통합병원 경내에 있는 국광교회. 지금은 폐쇄된 그 내부에 병원에서 수집된 거울들을 모아 설치한 마이크 넬슨의 ‘거울의 울림’. 거울은 말없이 형상을 반영할 뿐이지만, 과거의 끔찍했던 일들을 지켜보았던 증인이기도 하리라.
예술이 단답형 질문처럼 대답을 주입하게 된다면 거부 반응이 일 수 밖에 없다. 질문과 대답이 열려질 때에 예술의 폭은 넓어진다. 그 열려진 폭에서 많은 교감이 일어날 수 있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도 도식적, 교조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공감이 왜소해진다.

20여년의 광주비엔날레가 지속되는 동안 광주민주화운동은 항시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곤 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첨예한 예술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광주’라는 지역성과 역사성이 항시 짚어가야 할 이슈로 등장하곤 했다. 광주비엔날레의 태생 배경부터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만큼 광주비엔날레는 태생과 관련된 정치성, 지역성, 역사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기실 국제적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러한 짐을 지금보다 훨씬 가볍게 덜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갈수록 광주비엔날레가 진부하게 가라앉는 이유는 이러한 짐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고착화 현상을 빚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픔도 자유롭게, 나의 아픔으로 상대를 치유할 수도 있는 여지를 갖는 것이 예술적 행로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나의 상처와 아픔이 직설적으로 자랑거리는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딛고 더 나은 길을 찾아 나설 때에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광주의 희생을 딛고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었기에 그 희생이 더 빛나고 가치가 주어지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광주비엔날레가 더 자유롭게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게 용인하고 지켜 볼 필요가 있다. ‘광주’에서 세계적인 현대미술 시스템을 키우는 것은 그 만한 아량과 자유, 그리고 독립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미술평론가

구 국군광주통합병원 경내의 국광교회. 마이크 넬슨의 ‘거울의 울림’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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