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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 에세이-질문과 대답<22>수묵운동을 이끌었던 거인, 남천 송수남

“전통은 살아 생동하는 정신 속에 있어”
한국화만의 정신성 현대적 실현 큰 역할
‘붓의 놀림’, 생동감 있는 독특한 풍격 주목
전통 계승하며 거침없는 실험·변신 그리워

2020년 11월 12일(목) 11:14
송수남 작 ‘가나다라’, 한지에 수묵, 1963. 먹으로 추상을 시도한 60년대 작품. 서양화의 알포르멜 추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화는 근 40여 년 동안 변화의 몸부림을 쳐 왔다. 80년대에 일어난 새로운 수묵 운동을 기점으로 전통과의 결별 및 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도가 출발점이었다. 그 기점에 남천 송수남이 있다. 그러므로 남천이 중요하게 인식하고 한국화를 현대화 하려고 관통했던 시도들은 눈여겨 볼만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는 전통으로부터 현대 한국화가 결별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것을 염원하면서도 모더니즘 이후의 현대미술이 추구해 갔던 길과 유사하게 또는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한국화의 문제가 단순히 화선지와 먹이라는 재료 상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에 기반을 둔 한국화만의 정신성을 현대적으로 실현해 가는 데에 중점을 둔 것이다.

제자들이 펴낸 ‘우리 시대의 수묵인 남천’이라는 책을 보면 남천의 글이 나오는데, 그는 현장의 일선에 선 작가였으며, 탁월한 이론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화실에서의 남천 송수남.
‘…전통은 옛 형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 속에 있는 것이다. 고여 있지 않고 썩지 않는, 살아서 생동하는 정신 속에서 전통은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화의 전통이 연연히 계승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실험을 거친 자기 개혁을 통해 고이지 않는, 썩지 않는 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한국화가 탈장르라는 실험을 통해 한국화의 영역을 더욱 넓히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겠지만, 탈장르 현상이 한국화를 더욱 위축시키거나 아니면 단순히 서양화하는 단계라고 한다면 이는 대단히 부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한국화 분야에서도 포스트모던적인 실험적 추세가 기대되지 않는 건 아니다. 예술이 한 시대의 첨병으로서 자신을 자각시켜 가는 뛰어난 정신 활동이라고 할 때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도 당연한 추세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나는 포스트 모던이라고 해서 한국화라는 본래적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본다. 어차피 포스트모던도 각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하게 되고 그 영향을 받는 것이라면 한국화의 경우도 한국화로서의 특수한 배경과 내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송수남 작 ‘붓의 놀림’, 한지에 수묵, 111×145㎝, 1999. 남천의 본격적인 수묵 그림이 전개될 때의 작업 양상을 보여준다. 한국화가 국제 무대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면모도 보인다.
한국화의 전통에 대한 현대적 계승을 위하여 탈장르화가 필요하다 하면서도 서양화하는 데에 대한 경계와 더불어 당시의 문화적 추세였던 포스트모더니즘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

그의 먹에 대한 실험성은 60년대 중반 ‘가나다라’(1963) 같은 작품에서 먹의 번짐과 추상성을 도모한 작품에서부터 엿보이거니와 ‘오늘의 전통회화 81전’ 이후 뜻을 같이 하는 제자들과 함께 벌이기 시작한 수묵운동을 넘어서 90년대 중반 이후 독자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붓의 놀림’ 시리즈 작업에서 진면목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1999년도에 제작된 ‘붓의 놀림’ 작품을 보면, 필획의 기운 생동하는 모양새가 거침없을 뿐더러 반복적인 필획의 나열을 통해서 필획 자체의 의미를 주시하게 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러한 작품 개념은 곧 포스트모더니즘 상황에서 한국화가 어떻게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바로 설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고민해온 결과로 보인다.

2000년대 후반에 베이징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에 그의 만년 생활에 대하여 나는 고향인 전주로 이주해 사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즉답을 피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전주에 화실을 내고 안주할 차비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갑작스럽게 타계하게 되었다. 만년에 제대로 남천다운 빛을 흠뻑 발휘할 수 있는 시기에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와 함께 80년대 초부터 불던 한국화의 현대 수묵 운동도 종식을 고하게 되었다.

그를 기억하는 글들이 남아 있는데, 대만의 유명 수묵화가 관집중(管執中)의 ‘묵은 살아 숨쉬고 필은 무겁기 그지없다’라는 글을 보면 이렇다.

산이 있는 먹 그림. 대중적 공감대를 갖춘 그림으로 남천은 폭 넓은 일반적, 사회적 지지를 받았다.
‘…남천의 작품을 대할 때 제일 먼저 시각적인 감동을 주는 것은 화면상의 그 쾌활하고 원기 넘치는, 끝없이 막힘이 없는 먹색, 그리고 그 먹색 중 보일 듯 말 듯한, 속도에서 뻗쳐 나오는 질기디 질긴 선일 것이다. 얼핏보면 작가는 작품 제작시 전혀 마음을 쓰지 않은 듯 하지만,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잘 살펴보면 우리는 작가가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성으로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휘두른 듯한 필묵 사이에서 대자연 중 조화의 유기적인 원리를 드러냄과 동시에 또 이를 다시 자신의 회화 공간으로 바꾸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남천의 먹 그림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의 운필은 대담하지만 결코 날카롭지 않다. 마치 무딘 쟁기로 일구어 나가는 밭갈이 같이 덤덤하면서도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기확인이 있다. 육중한 무게가 실리지만 차분하게 이어지는 내재율을 지닌다. 먹은 전면을 덮어가지만 거기 잔잔한 여백의 숨결이 멈추지 않는다…’

‘무딘 쟁기로 일구어 나가는 밭갈이 같이’, 묵묵히 그러나 확신을 갖고 한국화의 변신을 꾀하던 그는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사라졌고, 한국화 화단은 그 이후 쟁점 없이 고요하다. 문제 제기 후 30여년 좌충우돌, 새로운 길을 걸었던 그의 행적은 역사 속에 남게 되었다. 그가 떠나고 고요해진 한국화 화단의 적막 너머로 그의 우직하고 강렬하던 개성이 그립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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