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오고 있는 사회변화의 여파에 대한 책들을 최근 서점가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 '문명의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무엇보다 현재의 상황을 잘 파악하는 것에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일어난 전염병에 대해 보여지는 세계 각국의 민낯이 현대 문명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인권과 평등을 중시해 온 유럽국가들은 실은 내부적으로 차별과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는 전염병 위기 상황에서 정책메시지에 대한 반발과 불신으로 이어져 연일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타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의료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최악의 공공의료 수준에서 빈곤층의 대다수를 차지한 유색인종의 감염과 사망이 두드러졌다.

거기에 민주주의 종주국이라는 미명 하에 수면 아래 있었던 흑인차별의 문제가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일어남으로써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누적 확진자가 700만명에 이른 인도에서는 계급차별의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건재해 코로나로 인한 제약 상황에서 매일 88명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보도는 놀라울 뿐이다.



연대와 협력 통해 공생



세계 각국에서 전염병의 확산은 위험의 불평등으로 극대화되고 있는 듯 하다.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차별과 각자도생이라는 반문명적이며 비인권적인 상태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전염병의 위기에서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를 받으며 어떻게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에서 악셀 하케는 품위란 다른 이들과 기본적인 연대의식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한 품위의 개념은 이해하기 쉽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조금 피곤하더라도 노인들을 위해 서서 가는 것, 시간적 여유가 없더라도 틈을 내어 혼자 있는 친구를 방문하는 것, 급하더라도 대기 줄에서 새치기하지 않는 것,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장례식에서 끝까지 남아 유족들과 함께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별것 아닌 단순한 일들을 한 번이라도 몸소 실천하는 것이 품위 있는 삶이다'는 것이다. 악셀 하케는 적어도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인정과 배려,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품위라고 말한다. 품위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연대와 협력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 공생하면서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내게 있음을 실천할 때 유지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절제된 시민의식 필요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 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덕분에 다시 1단계로 내려와 소소한 일상을 회복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다시 대한민국은 시험대에 올라섰다. 자발적 참여에 의한 방역과 선진적인 공공의료로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다.

민주적 사회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잘 하는 나라, 집단·계급·종교의 차별이 없는 나라, 공적 서비스에서 소외된 집단이 거의 없는 나라로서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한층 더 절제된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이다. 딱딱한 법보다 부드러운 품위로 우리 앞에 놓인 노둣돌을 딛고 새로운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