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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19>전북의 AX 그룹 운동

인간의 창의성과 영혼을 예술의 긴급 이슈로
“전북 미술에 활력 불어넣자” 작가 9명 한 뜻
예술의 사회성·삶에 대한 자세·역할 등 고민
6월 창립전…퍼포먼스 누드 바디페인팅 성황

2020년 09월 17일(목) 15:22
AX 그룹 토론 때 김춘선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 토론을 마치고.
2020년 6월 11일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 AX 그룹 창립전이 열렸다. 요즈음처럼 아트페어나 옥션의 영향으로 예술의 상품화가 대세인 마당에 웬 그룹 운동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바로 그래서 그에 대한 반발로, 그리고 예술의 사회성과 삶에 대한 자세, 역할 등을 고민하면서 힘을 모아 화단의 통속적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창립전 오프닝에 9명의 작가들 연명으로 된 선언문을 낭독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우리는 삶의 길과 예술이 일치한다고 믿으며
예술이 사회적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예술적 혁신이 곧 정신적 혁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술이 상품화되는 것에 반감을 느끼며
또한 제도적 틀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한다.
예술은 날마다 새로워야 하며
그 어떤 강령도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반대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창의성은 가장 궁극적인 인간의 가치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한다.
AX는 그러한 뜻을 공동으로 발현코자 한다.

AX 그룹 선언문 낭독 장면. 우리는 삶의 길과 예술이 일치한다고 믿으며, 예술이 사회적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예술적 혁신이 곧 정신적 혁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60-70년대에는 선언문과 함께 하는 그룹 운동이 주류를 이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국제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공모전을 중심으로 하던 권위 체계는 무너졌고, 예술은 시장에서 팔려야 가치가 인정되며, 예술가의 창의성 또한 상품화되는 위기에 빠지고 있다. AI가 발전해가면서 인간의 능력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인간 존재의 가치는 의문시된다. 인간의 창의성과 영혼의 문제는 다시금 예술의 긴급 이슈로 빛을 발해야 할 계제로 인지되었다.

개막 당일 AX 창립을 기념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나는 일본 NIPAF(일본 국제 퍼포먼스 페스티벌) 행사 때 교토에서 했던 ‘I LOVE YOU, I HATE YOU!‘를 재현해보기로 하고 여성 파트너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여성 한 명이 먼저 관객 앞에 서서 천천히 옷을 하나씩 벗어 전라가 된 다음 2-3분 간 관객을 당당히 응시하다가 뒤돌아서면 그 등에 내가 글씨를 쓰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글씨는 ‘I LOVE YOU’ 또는 ‘I HATE YOU’였다.

이런 내용과 함께 사례를 하겠다는 광고를 페이스 북에 냈지만 허사였다. 소문을 듣고 한 여성 작가가 모델로 일하는 사람을 소개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평소 퍼포먼스 작가를 꿈꾸어 오던 여성, 김진영씨였다. 우리는 첫 미팅에서 그 내용을 설명하고 의향을 타진했고 두 번째 미팅에서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논의했다.

그녀는 이의를 제기했다. 옷을 하나씩 벗는 과정이 있는데, 옷을 찢으면서 벗고 싶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찢는 것도 벗는 사람의 한 표현인데 안 될 이유도 없어서 승낙했다.

또 하나는 다 벗고 관객을 응시한 다음 뒤돌아서는 장면이 있는데 본인은 당당히 관객을 바로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관객의 시선을 피해 뒤돌아 설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로 그녀의 몸에 바디 페인팅을 하게 되었다.

‘I LOVE YOU, I HATE YOU!‘ 퍼포먼스.
코로나 19로 전시 오픈에 관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날 AX 취지에 공감하는 관객이 많이 와 퍼포먼스는 성황을 이뤘다. 김진영이 옷을 찢는 순간부터 관객의 시선은 모아졌다. 옷을 다 벗는 시점에서 분위기는 정적에 휩싸였다. 나는 그녀의 몸에 처음에는 창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검은 색으로 AX라는 글씨를 크게 썼다. 그 다음 빨간색 물감을 손가락으로 찍어 ‘I LOVE YOU!’를, 검정색 물감을 찍어 ‘I HATE YOU!’를 썼다. 그리고 그녀의 몸 위에 여러 가지 페인팅이 가해졌다.

몸은 일종의 표현의 장, 캔버스로 변모하고 있었다. 내 손도, 내 얼굴도 물감 범벅이 되었다. 나는 물감을 싸왔던 비닐 봉투를 머리에 쓰고 관객에게 인사를 한 다음 퇴장했다.

동문 네거리 길목집 뒤풀이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해방 후 전북미술 75년여 역사에서 선언문 형태로 목표를 구체적으로 가시화하면서 9명의 각기 다른 작가들이 힘을 모아 한 길을 가겠다고 나선 일은 없었다는 말이 나왔다.

9명의 작가에는 현대도예가, 서양화가, 한국화가, 도큐멘터리 사진작가 등으로 분야가 나눠지고 연령층 역시 50대 초반부터 70대 중반까지 차이가 있었다. 학연이나 지연도 상관없이, 예술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으로 1년여의 논의와 준비 끝에 개막식을 갖게 된 것이었다.

AX의 활동이 과연 전북의 미술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첫 발을 분명하게 그 취지를 알린 것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7월 18일 다시 그 길목집에서 회원들이 모여 전시에 대한 자체평가 기회를 가졌고, 11월 서학동사진관에서의 두 번째 전시에 대한 논의를 했다.

우리는 개개인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전북 화단의 답답한 구조를 타개하는 데에 그룹의 힘을 더 모으기로 했고, 11월 전시에서는 타이틀을 ‘코로나 사막-AX’로 정하고, 코로나가 일으킨 사막 같은 황폐함을 기억하되 작품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임하기로 했다.

예술은 깨어 있어야 하고, 창의적 관점에서 가능한 다양한 길을 열어야 한다.

/장석원(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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