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18>2015 아시아현대미술전

비전이 죽으면 예술도 죽는다
전북도립미술관 3년간 3차례 아시아현대미술전
지역사회, 대외적 출구 국제전 부정 반발 거세
포퓰리즘의 양적 팽창뿐 문화적 융성 기대 못해

2020년 09월 03일(목) 08:56
2015년 첫 아시아현대미술전이 열렸던 전북도립미술관 전경.
2014년 8월 28일 오전 8시, 전북도립미술관장 임용장을 받기 위해 전북도청 지사실 앞에 앉았다. 지사의 출근을 앞두고 2줄로 도열한 간부들, 전형적인 공무원 복장으로 출근에 맞추어 박수로 환영하는 계급 사회를 목도했다.

곧 호출되어 들어가니 임용장을 수여하고 잠깐 티타임을 가졌는데, 나에게 한 마디 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관장 사업 중 최대 현안이 되는 ‘아시아현대미술전’을 전폭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반문하기를 “예산이 어느 정도?” 하길래 나는 ‘6억’이라고 답했다. 그 후 예산을 지원받아 3차례에 걸친 아시아현대미술전을 열게 되었다.

내가 아시아현대미술전을 열려고 했던 이유는 아시아권이 곧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이로부터 나오는 현대미술의 양상은 서구의 그것과 사뭇 다른 양상을 드러낼 것이며, 아직 아시아 미술을 본격적으로 벌이는 국제전이 없기에 이를 밀고 나가면 곧 아시아 현대미술의 주도권을 갖게 되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제1회 아시아현대미술전 전시 중 한 장면.
그리고 이를 계기로 전북권 작가들을 국제무대에 진출시키고 머지 않은 장래에 아시아 무대의 주역으로 활약케 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적중했다. 아시아권 미술계는 전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현대미술전에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3년에 걸쳐 3번 연이은 전시 중 첫해에는 아시아권의 현대미술에 나타난 이슈를 다뤘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굴곡을 겪는 아시아 전반의 실상이기도 하고 빈부 격차, 정경유착 등 비리, 군부 독재, 종교적 편향 등 넘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은 빠르게 변모하고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며, 예술적으로도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화로 인하여 서구 중심 체계를 전도시키는 성향을 내보이고 있다.

이 전시를 추진하면서 베이징, 청두, 타이베이, 방콕, 양곤, 족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도쿄 등을 경유하며 작가들을 만났던 과정은 곧 보이지 않는 아시아 미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횟수를 거듭하면서 그 인프라는 더 공고해졌다. 기민하게 다양한 반응들이 일어났다. 아시아는 넓고 하나로 묶어내기 어려운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경제적 발전과 함께 번영을 추구하는 모습은 유사하다. 번영의 뒤편에는 언제나 짙은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예술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아프고 위험한 문제들 가운데에서 가장 예술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개막 당일 세이지 시모다는 무대에서 얼굴에 종이컵 등 일상의 사물들을 붙이고 휘슬을 꺼내 불었다. 몇 차례 반복되면서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나에게는 아시아의 전위예술이 처한 위기를 알리는 신호로 들렸다.

제2회 아시아현대미술전 ‘아시아 청년 36’에서 필리핀 작가 덱스터 페르난데스가 미술관 기둥에 낙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들끼리의 뒷풀이 좌석에서 천칭야오가 들고 온 진먼주로 흥을 돋운 뒤 바산 시티켓이 기타를 들고 노래를 시작했다. 방콕의 군부 권력과 정경 유착을 그림으로 비판해온 그는 방콕의 반체제 작가였다. 푸줏간의 고기처럼 걸린 여성의 신체를 다룬 페리얼 아피프, 자폐적 공간에 갇힌 자신을 그렸던 이시다 테츠야, 점 하나를 큰 터치로 찍은 듯 그린 이우환, 3m가 넘는 화면에 머리카락을 잔뜩 붙인 우까우중 등 전시 장면이 뇌리를 스쳐갔다. 작가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기념 메모지 안 표지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과거의 아시아가 아니라 현대의 아시아입니다. 우리는 정부 각료도 아니고 기업체의 간부도 아니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예술가로서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아시아를 향하여 말을 걸고 아시아권 현대미술의 네트?이 구축되는 동안 지역 내에서는 반발이 일었다. 의회에서는 예산 배정에 늘 브레이크를 걸었고, 화단은 멀리에서 관망하는 한편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었다.

“5억이라는 돈을 지역 화가들에게 나눠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말을 전해 듣고 나는 회의감이 들었다. 포퓰리즘에 익숙해진 지역화가가 눈앞의 곤궁을 면하기 위해 유일한 대외적 출구인 국제전을 부정한다면 희망이 사라진다.

비전이 죽으면 예술도 죽는다. 예술을 생계 수단으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을 하기 위하여 잘 살 수 있는 조건들을 버리고 뛰어든 것인가? 이 지역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곳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국제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고 젊은이들을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미술관 산하에 창작 스튜디오를 만들고 해외 레지던시 공간과 협업해 상당수의 젊은 작가들을 해외로 보내고 외국의 작가들을 받아들였다. 그러한 교류를 통하여 성과를 내려면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제대로 밟게 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 대나무로 설치 작업을 했던 오쿠보 에이지와 함께.
제2회 아시아현대미술전은 ‘아시아 청년’전으로 치렀고, 3회는 ‘아시아 여성’전으로 치렀다. 테마에 의한 전시 설정보다는 중요한 꼭지를 짚는 방향으로 아시아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 사이에 미술관에는 아시아권 중요 작가의 작품이 30여점 소장되었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바탕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안 된다. 예산을 볼모로 행사에 간섭하는 의원도 생기고, 정치적 생색을 내기 어려운 국제전을 거북해하는 풍토 위에서 더 이상의 지속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비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성과도 빛을 잃게 된다. 문화적 욕구는 커졌지만 대부분 포퓰리즘으로 양적 팽창만 가져올 뿐, 질적인 가치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풍토에서 최고의 문화적 융성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한국의 그 융성기는 앞으로 20-30년 정도를 더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도전이 꾸준히 벌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장석원(미술평론가)
/장석원(미술평론가)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