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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17>용과 여인의 작가, 박소빈

빛나고 있을 때 어떤 빛깔로 타오를까를 고민하라

2020년 08월 20일(목) 10:57
박소빈의 ‘용과 여인(그 신화)’, 390×220㎝, 2015년 작으로 2017년 베이징 금일미술관 출품작이다. 용과 여인이 뒤엉킨 이 소재로 그녀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용과 벌거벗은 여인의 포옹…전설적 감동
연필로 드로잉 한 4~5m 대작 시선 압도
“동서양 형식과 모티프 섞인 드로잉 걸작”
베이징 금일미술관 전시 국제무대에 각인
기대 모으는 새로운 현대아시아 여성작가

베이징 금일미술관에서 49일 간의 현장 작업 중 장면, 2017.
코로나 19로 베이징으로 가는 길이 묶여 그녀는 잠정적으로 광주에 머물고 있다. 오랜 해외 체류 기간에도 광주 작업실을 치우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용과 여인을 주 테마로 작업해온 박소빈 작가 이야기다. 그녀는 2007년 이후로 뉴욕과 베이징을 오가며 작가 생활을 해왔다.

올해 2월 25일부터 3월 15일 사이에 있었던 뉴욕 엘가 갤러리 초대전 포스터.
그녀가 묘사하는 장면은 늘 용과 여인의 사랑이다. 상상의 짐승이자 하늘을 나는 괴력을 가진 상징적 존재인 용과 벌거벗은 여인이 격렬하게 포옹하고 있는 장면은 기이하면서도 전설적 감동을 전달한다.

불가능한 사랑, 전설로서만 남아있는 이야기를 전설보다 더 강렬하게 각인시키려는 것일까? 그녀는 종이 위에 연필로 작업하며, 대작의 경우 4~5m가 넘는 것들도 있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압도하곤 한다. 드로잉 형태로 무수히 그려지는 연필 선으로 민감하고 미묘한 감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몇 번이고 중첩되면서 시꺼멓게 다가오는 용과 여인의 뒤엉킨 덩어리의 느낌은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목포대학 재학시절 원동석 교수를 따라 답사를 다닐 무렵, 화엄사 대웅전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용에서 강한 생명의 에너지를 느꼈다는 그녀는 석사학위 논문도 용의 상징성과 조형성에 대하여 썼다.

신라 때 부석사 창건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불교를 공부할 때 알게 된 여인 선묘가 의상을 흠모해 먼발치로 맴돌다가 의상이 귀국하려고 배를 타자 무사 귀환을 염원하며 죽어서 용이 되겠다고 기도하고 황해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용이 되어 배를 호위하고, 부석사 창건 때에는 500여명의 토착 세력이 반발하자, 바위로 변한 선묘의 용이 공중에서 내려 칠 듯이 위협하자 굴복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선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전설이 되었다.

2009년도 엘레나 하트니가 ‘아트 인 아메리카’지에 쓴 글을 보면, ‘한국작가 박소빈은 동양과 서양 형식과 모티프가 섞인, 소용돌이치는 드로잉 걸작을 만들어내었다. 이 전시에서 그녀는 남성의 권력과 상서로운 힘을 시커멓게 중국의 용으로 상징하며, 구스타프 클림트나 얀 투롭 같은 상징주의 그림에서 나온듯한 여성의 에로틱한 누드를 가지런히 보인다. 형태는 서로 껴안으며 웅크린 모습의 리드믹한 패턴으로 연필 선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썼다.

용이라는 특이한 동양적 소재와 여성의 몸이 엉킨, 기이하고도 불가항력적인 장면을 상징주의와 더불어 동서양의 소재가 섞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이채롭다.

박소빈을 지지하는 뉴욕의 기획자 탈리아 브라초포울러스, 엘가 위머 갤러리 그리고 베이징의 포스갤러리 등의 노력이 그녀를 오랜 동안의 해외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2017년 베이징의 금일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전시는 뉴욕의 탈리아가 베이징의 금일미술관에 전시 제안을 해 이루어졌다. 외국인에게 1관을 준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박소빈이 처음 제안을 받은 것은 2관 개인전이었다. 그녀는 실망해 동의하지 않았다. 그 이후 금일미술관 자체 회의에서 관례를 깨고 1관에서의 전시를 허락했다. 그리고 조건부로 제기된 49일 간의 현장 작업요청을 승낙하게 된다. 매일 연필로 대형 작업을 펼쳐가는 특이한 프로세스를 필름으로 기록한다. 그녀는 연필로 용과 여인을 그리는 특이한 작가로 국제적 무대에 바로 섰다.

까오펑 금일미술관장은 이렇게 썼다. ‘…박소빈의 새로운 회화들은 아시아의 신화와 현대적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연필을 잡은 작가의 손은 전통적 신화에서 빌려온 용, 사랑, 그리고 관계를 완전한 표현으로 제시한다. 새로운 현대 아시아 여성작가 세대의 새로운 유행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자신의 누드를 스스로 그려 주목을 받았던 그녀는 특이한 예술의 세계로 발을 들여 ‘새로운 아시아 여성작가’로 꼽히고 있다. 어렵게 레지던시 비용을 마련해 2007년 대책없이 뉴욕에 갔고, 그곳에서의 개인전이 NY ARTS에 리뷰로 떠올랐을 때에 무척 기뻐하던 그녀가 이제는 기대를 모으는 아시아의 여성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광주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에 나는 그녀가 자신의 빛깔을 유감없이 활활 불태우고 있음을 알았다.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 그녀가 던진 메시지에 이렇게 답했다.

‘…빛나고 있을 때에 어떤 빛깔로 타오를까를 생각해 보는 거죠. 거기에 미묘한 문제가 있어요.…’

객관적으로 봐서 그녀는 활활 타고 있긴 하지만, 그 빛깔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존재는 어떤 의미로든 스스로를 불태우며 빛을 낸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빛깔의 빛으로 불타기를 원하며, 온 힘을 다해 불태울 때에 객관적으로 무엇으로 보이느냐 하는 문제이다.

사실 불타고 있는 현상과 불태워지기를 욕망하는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예술의 중요한 문제가 거기에 걸려 있곤 한다. 결국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단순히 남들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내밀한 개인적 문제가 있기 마련이며, 예술은 그 당사자에게 의미 있는 신호가 되기 마련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공간을 거부할 줄 알았던 그녀는 앞으로도 직감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아직 자신의 작업을 돌아볼 시기는 아닐지 모르겠다. 길을 가는 사람이 뒤돌아 자신의 긴 그림자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은 아직 필요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항시 미묘한 시선으로 그 예술성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석원(미술평론가)

뉴욕 엘가 갤러리 전시장에서. 왼쪽부터 작가 박소빈, 아트인아메리카 편집장 리처드 바인, 뉴욕의 기획자 탈리아 브라초포울러스, 중국 미술평론가 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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