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열선루 복원과 의미 <상>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돼 보성을 방문해 애국 충정에 불탄 젊은이들을 보면서 승전 가능성을 발견했다. ‘수군을 폐지하라’는 선조의 명령에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금신전함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장계를 보성 열선루(列仙樓)에서 써서 올렸다.

구국의 일념으로 전국에 통문을 돌려 의병들이 보성으로 모여 들었던 그곳을 기념하기 위한 충절사가 보성군 득량면 송곡리 군두(군머리)에 있다.

의병을 모집하고 병기를 쌓은 뒤 출전한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구국의장 보성 열선루는 보성군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2021년 완공된다. 보성군은 이를 기념해 ‘나라사랑’를 주제로 전국 장계대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보성의 인연 그리고 복원중인 보성 열선루에 대해 상, 하편으로 나눠 싣는다



◇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임진년으로부터 5~6년 동안 왜적이 감히 호남과 충청을 곧바로 공격하지 못한 것은, 조선 수군이 해로의 길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기로 각오하고 싸운다면 오히려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폐지한다면 이는 바로 적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하면 적은 호남과 충청을 지나 한강으로 갈 것이며, 이는 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은 부족합니다만, 미천한 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 글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1597년 8월 15일(양력 9월 25일) 선조에게 올린 장계이다. 장군께서 이 장계를 올렸던 곳이 바로 보성군청에 있었던 ‘열선루’(列仙樓)다.



◇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영웅,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23전 23승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했다. 지극한 충성심과 백성을 아끼는 마음, 살신성인의 정신, 고귀한 인품, 투철한 사명감, 철저한 전쟁 대비, 휘하 장병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만든 원활한 소통과 원칙 중시의 리더십, 탁월한 지략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기적 같은 업적이다. 영국에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을 격파해 영국을 구한 넬슨제독이라는 영웅이 있고, 일본에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도고 헤이하치로’가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훌륭한 세계적 영웅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은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매번 승리했기 때문이다.

‘충무’(忠武)는 조선시대에 무관에게 내렸던 최고의 시호다. 우리는 또한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으로 추앙한다. ‘성스럽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나타내지만, 천부적 재능과 순탄한 운명에 힘입어 그런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치열한 고뇌와 노력으로 돌파했다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장군은 성자이자 영웅이다. 장군은 전투만 하는 단순한 무인이 아니었다. 전략과 전술을 꾸준히 연구하고 현장에 맞게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 소양을 갖춘 문무겸전의 훌륭한 지도자였다. 시인이고 문장가였다. 창의력과 상상력, 감성이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인이었다. 가슴이 찢어지고 미어지는 순간에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개인적 감정을 절제하고 대의를 위해 승화시킨 위대한 성인이고 영웅이었다.



◇ 이순신 장군의 억울한 파면과 옥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원균과의 갈등, 윤두수 등 일부 서인들의 적개심, 선조의 무능과 시기심,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하이자 이중간첩인 요시라의 교활한 음모 등으로 파면되고 옥에 갇혔다. 장군은 1597년 2월 6일 삼도수군통제사 직위에서 억울하게 해임됐을 뿐만 아니라(부산 해역에 출전 중이었다가 2월 26일 압송됐다) ‘조정을 기망하여 임금을 무시한 죄, 적을 잡지 않고 놓아주어 나라를 저버린 죄, 남의 공로를 가로채고 모함한 죄,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는 죄’ 등의 황당한 죄목으로 3월 4일 하옥됐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혹하고 잔인한 고문까지 당했다. 짓지도 않은 죄를 어찌 인정한단 말인가. 장군은 관직에 진출한 후 세 번 파직되고, 두 번 하옥당했으며, 두 번 백의종군했다.



◇ 조선수군의 궤멸

후임 통제사가 된 원균은 이순신 장군이 정비했던 제도를 모두 변경하고 이순신 장군이 신임하던 맹장들을 내쫓아 버리고 날마다 술주정을 일삼았다.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왜군이 바다를 건너와도 한산도의 원균은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작 원균 자신은 그전에 ‘이순신이 부산으로 나가 싸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순신 장군을 모함한 적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조정이 출전 명령을 내리자 원균은 ‘먼저 육군 30만을 동원해 안골포와 가덕도의 왜군을 무찌른 후 수륙연합 작전을 펴서 부산을 공격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장계를 올렸다. 당시 조선에는 그런 병력이 있지도 않았다. 원균은 여러 차례에 걸친 조정의 독촉 끝에 1597년 6월 18일 함대를 끌고 안골포와 가덕도를 공격했으나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1597년 7월 5일 부산까지 출동했으나 전투다운 전투를 하지 못한 채 칠천량(거제)까지 후퇴했다. 임진왜란 때의 해전 참패를 설욕하기 위해 대형 함선인 ‘아타케부네’를 건조하는 등 수군 육성에 힘을 쏟고 야간기습과 포위공격 전술을 수립한 다음 기회를 엿보고 있던 왜군은 1597년 7월 16일 1,000여척의 전선을 동원해 칠천량에 총공격을 감행해왔다. 아무런 전략과 전술도 없이 무작정 돌진하던 원균의 조선 수군은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기진맥진한 채 왜군의 야간기습과 포위협격 등의 작전에 휘말려 어이없이 궤멸되고 말았다.



◇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

다급해진 선조는 1597년 7월 22일 이순신 장군에게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의 교서를 내렸다. 장군이 받은 것은 8월 3일이다. ‘지난번에 경의 관직을 빼앗고 죄를 씌운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이오, 그로 인해 오늘날 패전의 수치를 당하였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임명장이라기보다는 사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장군이 하옥되고 조선 수군이 궤멸되고, 의병장 김덕령이 죽고 곽재우가 사라지자 왜군은 전라도를 마음 놓고 짓밟았다. 8월 16일에는 남원을, 25일에는 전주를 점령했다. 전라도는 갑작스러운 왜군의 진격과 무차별적인 학살, 약탈로 생지옥이 돼 버렸다.

/동부취재본부=김근종 기자

이순신 장군 ‘금신전선 상유십이’ 수군재건로 조형물

보성 열선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