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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 에세이-질문과 대답<15>역사 다큐멘터리를 추구하는 사진가 박하선

현장의 흔적,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 되물어
독학으로 카메라 익혀 다큐사진 독보적 영역 구축
9년간 항해사 생활 접고 33세에 사진작가로 전향
73일간 실크로드 대장정…어려운 오지 촬영 감행

2020년 07월 23일(목) 06:34
독학으로 카메라를 연구하고 독자적으로 도큐멘터리 사진의 영역을 구축해온 작가 박하선.
독학으로 카메라를 익혀 다큐멘터리 사진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작가가 있다. 박하선. 그는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1976년부터 9년 동안 항해사 생활을 하면서 바깥 생활을 접했고, 긴 여정을 사진에 대한 연구에 골몰했다.

중학시절 잠깐 사진반 활동을 두어 차례 한 것이 전부였던 그는 첫 월급을 타자 나고야에서 아사히 펜탁스 MX를 샀다. 사진기 작동법을 잘 몰라 미국, 일본 등지에서 산 관련 책을 일일이 번역해 보면서 기법을 익혔다. 서투른 외국어 실력 탓에 해독이 잘 되지 않았지만 몇 번이고 곱씹어 보면서 점차 카메라의 비밀을 터득하게 되었다.

‘시신을 보고 달려드는 독수리들’, 2001년 수상한 월드 프레스 포토 스토리 상의 티벳 ‘천장’ 시리즈 중 하나.
1980년 항해 중 찍은 사진들로 첫 사진개인전 ‘대양’을 광주 남도예술회관에서 갖는다. 1등 항해사로서 선장이 되기 직전 그는 그만두고 나왔다. 33세가 되어 본격적인 사진 작가로 활동할 것을 결심하고 전 재산을 털어 실크로드 행을 감행한다. 가기 전에 정보가 너무 없어서 신문사에 있던 선배를 만났고, 실크로드행 계획이 돈키호테적 발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73일 간의 실크로드 장정을 마치고 1990년 ‘실크로드’ 전시를 남봉미술관서 개최했다.

그후 그는 티벳, 인도 중동으로 영역을 확대했고 이어 ‘서역’(1992), ‘왕오천축국전’(1994), ‘천장’(2008) 전시를 갖는다. 2001년에는 티벳의 장례 풍습인 ‘천장(天葬)’을 찍어 월드 프레스 포토 스토리 부문상을 수상한다. 천장이란 죽은 시신을 독수리가 뜯어 먹도록 두는 장례 풍습을 말한다. 1997년 ‘천장’을 찍기 위해 시체가 오기를 며칠 째 기다리던 때의 기록이 이렇다.

‘…오늘이 며칠 째일까. 역겨운 냄새가 찌들어 있는 텅빈 천장 터. 그곳이 내려다보이는 산허리 양지에 주저앉아 누군가의 죽음이 다가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린 지도 벌써 나흘째다. 죽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니 참 불경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약속되어 있지 않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다. 여러 마리의 독수리 또한 저만치에 내려 앉아 있다.’

곡성 밤실마을 고인돌.
남들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오지 촬영으로 기반을 다진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고대사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2004년 무렵부터 ‘고인돌’, ‘발해 유적지’를 비롯해서 장기간에 걸친 ‘고구려’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가 찍은 ‘백암산성’(2006), ‘환도산’(2010), ‘홀본성’(2015), ‘오골성의 북문에서 바라 본 풍경’(2015), ‘광개토태왕묘-2’(2011) 등은 웅혼했던 고구려의 기상을 상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는 역사의 현장에서 당대의 기상을 돌이킬 수 있는 사진을 좋아한다. 그는 말하기를 역사상 고구려는 없었고 ‘고려’ 만이 존재했다고 한다. 통일 신라 이후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하여 북방의 대륙을 지배했던 고려를 고구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폐허처럼 남아 있지만 우리는 그의 사진을 통해 실재했던 제국의 영화와 허무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2006년 중국 지린성의 유허(柳河)에서 간첩으로 오인받아 숙소에 들이닥친 공안에게 필름들을 모조리 압수당했다. 그는 공안의 심문에 거침없이 다음과 같이 대응해 가까스로 필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가 간첩이라면 이런 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간첩 봤는가?’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생명처럼 여긴다! 촬영한 필름을 빼앗아 가는 것은 곧 내 목숨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곡성 밤실마을 고인돌.
그의 역사적 관점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 2019년 눈빛에서 낸 ‘조선 의용군의 눈물’은 태항산과 연안에서 활동했던 ‘조선 의용군’의 흔적에 대한 기록이다. 만주와 연해주를 무대로 전개됐던 ‘항일 빨치산’, 일본군을 상대로 했던 독립군.

1942년 봄, 일본군이 40만 병력으로 팔로군 소탕전을 벌이자 팔로군의 퇴로를 열어주기 위해 50여명도 안 되는 조선 의용군이 요충지인 십자령에서 강력히 항전해 방어선을 뚫지 못하여 팔로군 지휘부는 무사히 탈출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조선 의용군을 이끌던 밀양 출신 윤세주는 분산 작전 중 총상을 입고 희생된다. 1944년 중국 공산당과 함께 이동했던 연안 시절 까지 그의 카메라는 그 흔적을 쫓는다.

최근 그는 담양 담빛예술창고에서 ‘시공흔적’이라는 전시에 ‘고인돌’ 작품을 대거 출품하고 있다. 강화도, 진도, 화순, 고창, 영광, 담양 등지에서 마주친 고인돌이 육중하게 그리고 신성한 느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상의 혼이 영생한다는 믿음에서 세워졌다는 고인돌,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고인돌을 찍어 왔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점심시간에 인근의 백반 집에서 그는 핸드폰에 들어 있는 최근 사진을 보여 준다. 그것은 소년 빨치산으로 장기 복역 후 근래 출소한 김영승이었고, 함께 지리산 삼도봉의 제5지구당 터와 비트, 이현상이 죽은 자리 등을 촬영한 것이었다. 그의 사진이 갖는 관심사, ‘숱한 이야기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진실을 찾아 후세에 전하는…’ 바의 일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박하선의 사진은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고, 직접 현장을 찾아 그 흔적을 캐고 오랜 기억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과 오늘을 사는 우리들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되묻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과거 없이 현재가 없고 현재 없이 미래가 없다고 한다. 그의 사진 작업이 보여주는 역사적 지평과 먼 간격을 두고 서있는 우리 자신들 사이에서 회오리처럼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가 천천히 사라진다. 그의 사진 작업이 던지는 매력이다.

/장석원(미술평론가)

고구려 시리즈 ‘백암산성-3’(2010). 초승달 아래 기다란 몸체의 산성이 역사성에 대한 상념에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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