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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12>시인 천상병과 걸레스님 중광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가는 인생
천상병, 술·어린아이 좋아했던 도인
중광, 현대사회에 즐거운 화두 던져
첫 만남에서 서로 알아보고 반겨

2020년 06월 11일(목) 08:44
가사를 허리에 감고, 딸기 코에 검은 브래지어, 각시 가면, 런닝셔츠, 제멋대로 된 신발을 신은 중광. 1970년대.
마치 이 세상에 유배되어 온 것처럼 살다간 시인 천상병. 그의 시 ‘귀천’에서처럼 하늘로 돌아가 있을까?


막걸리를 마시고 싶으면 거리에서 만나는 지인 누구에게나 ‘막걸리 한 사발 값만 도고!’ 하는 구걸을 했다는 시인 천상병. 그의 사후 걸레 스님 중광은 그를 기리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상병 시인은 자식도 하나 없고/ 이렇다 할 재산도 없어도/ 맥주 값 500원이면 이 세상을 넉넉하게 살다 가신 도인이었다.’

기인과 기인은 통한다고, 천상병은 중광에 대한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비록 누더기 옷을 걸치고 가슴에 고장난 시계, 머리에 쓴 모자에 울긋불긋 달린 장식들, 그 모습이 우습다고 보이지만 어느 곳이든 어느 하늘 아래를 활보한들 떳떳한 그 모습, 그 웃음 앞에는 누가 말할 자 있을까? 스님과 나는 언제나 서로가 형님과 도사가 엇갈리는 대화가 있을망정 마음 속으로 보살님이니 우린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것이다.…’

이제 두 기인이 모두 저 세상으로 가셨고, 아마 즐겁게 막걸리를 마시며 해후를 반겼으리라.

천상병이 남긴 ‘술’이라는 시가 있다.

‘술 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 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 한잔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 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아내는 이 한잔씩에도 불만이지만/ 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천상병이 술만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어린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그의 또 다른 시 ‘요놈 요놈 요놈아!’를 보면, ‘집을 나서니/ 여섯살짜리 꼬마가 놀고 있다.// ‘요놈 요놈 요놈아’라고 했더니/ 대답이/ ‘아무것도 안사주면서 뭘’ 한다./ 그래서 내가/ ‘자 가자/ 사탕 사줄께’라고 해서/ 가게로 가서// 사탕을 한봉지/ 사줬더니 좋아한다.// 내 미래의 주인을/나는 이렇게 좋아한다’가 있다.

머리와 어깨에 성기가 달린 중광의 자화상.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어린아이들을 좋아해서 막걸리를 사 마시는 대신 사탕을 사주었다. 그는 ‘귀천’이라는 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아마도 당연한 듯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서 여전히 막걸리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마치 이 세상에 소풍을 온 것처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간 사람처럼.

그의 사후 중광이 그린 천상병 드로잉에는 입에 담배를 물고, 한쪽 눈은 감고 다른 쪽 눈은 퀭하고 뚜렷이 뜨고 한 쪽 가슴은 멍든 것처럼 동그란 흔적이 있고 다른 쪽은 시커멓게 문질러 놓은 흔적의 천상병이 서 있다. 마치 로봇처럼, 그 어떤 감정의 여지 보이지 않고. 문득 그가 보고 싶어 순간적으로 낙서처럼 그린 드로잉이다.

걸레 스님 중광은 선불교를 통해 깨달은 바를 그림과 글로 표현하며 현대의 대중 사회에 즐거운 화두를 던지며 살다 간 기인이다. 천상병이 쓴 중광과의 만남 첫 장면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검정 고무신에 누더기 옷을 입으시고 온 얼굴에 흙이 묻어 있는 그 모습으로 내 손을 덥썩 잡으시고 반가워하시는 그 모습이 천진난만한 웃음은 초면이 아닌 옛날부터 알던 사람인 것 같은 다정한 만남이었다. 내가 스님께 보살님이라고 하였더니 스님은 나를 도사님이라고 하시지 않는가? 나는 “아닙니다. 도사님이라니요?” 라고 반문을 했지만 자꾸만 도사님이라고 하는 통에 나는 “보살님, 보살님”하고 부르니 우리는 자꾸만 웃게 되니 따라서 여러 사람이 함께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이 자꾸만 났었다.’

눈빛이 번쩍 마주치는 순간 서로를 알아보고 반기는 모습이다.

내가 아는 중광은 세상을 걸림 없이 통 크고 멋지게 살다 가신 도인, 예술가였다. 미국의 불교학자 랭커스터 교수가 그를 발견하고 ‘미친 중’이라는 책을 펴내 그의 선 사상과 예술을 소개하자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종로의 감로암 그의 거처는 벽과 천정까지 낙서 투성이였는데 술이 취해 귀가를 하려 대문을 나서자 나를 불러 세우더니 바로 달마도 한 점을 달빛에 비추며 깔깔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머리에 성기를 달고 있는 달마였는데 전남대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던 작품이다.

천상병 시인 타계 후 그를 기리는 책에 나오는 중광의 드로잉.
이제 중광 스님도 가신지 18년이 된다. 그가 생전에 썼던 시 ‘허튼 소리·3’을 보면, ‘우리집 개는 불교를 믿고/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교를 믿고/ 우리집 향나무는 유교를 믿고/ 우리집 우물은 무당을 믿고/ 나도 가갸거겨 또 가갸거겨/ 너도 가갸거겨 또 가갸거겨.’가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가장 통렬하게 열린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글만 쓰지 말라고 물감을 상자에 가득 담아 주시고 전시회 때는 싱글싱글 웃으며 품평을 해주시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천당과 극락을/ 오른쪽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닌다./ 양심은/ 하늘에 걸어두고/ 이슬처럼 따먹는다’고 노래했던 그는 임종에 앞서 ‘나 죽거든 절대 장례식 하지 마라. 가마니에 둘둘 말아 새와 들짐승이 먹게 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렇게 떠나지 못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인생이다.

세상을 사는 것도 예술이다. 작위적인 예술보다 더 큰, 살아있는 예술이 인생에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게 인생 아니던가? 꼭 어떤 작품을 두고 그 작가를 평가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그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보고 그 작가, 그 인생을 평가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걸림 없이 한 세상을 멋지게 살다간 두 영혼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아직 대중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그들에게 건배를 제의한다.

/장석원(미술평론가)
/장석원(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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