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의악파 작곡가들 음악으로 조국애 표현
작품에 민족의식·희노애락·환희·승리 등 드러내

시벨리우스 작곡 핀란드의 국민찬가 ‘핀란디아’
러시아 자유억압 대항 민족적 정체성 반영한 곡


바쁜 일상 가운데 ‘빨간 날’은 무조건 반갑다. 그렇지만 그 날의 의미는 되새겨 보자. 이제 곧 현충일이 다가온다. 1956년 6월 6일 지정한 현충일은 법정기념일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국군장병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군인들이 나라를 지킨다면 음악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조국애를 표현한 작곡가들이 있었다. 국민주의는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으로 강대국의 통치에 있던 나라들 사이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자국의 민족적 색채를 넣어 작곡한 이들의 음악을 국민주의 악파(Musical nationalism)라고 한다.

19세기의 국민주의 음악은 낭만파 음악의 파생된 음악적 특징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기악음악과 이탈리아 오페라의 지배적인 영향 및 낭만파 음악으로부터 벗어나 러시아, 헝가리, 보헤미아 등지의 작곡가들이 자기 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재창조해 내는 음악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비록 국민악파는 20세기에 들어 그 빛을 잃었지만, 오늘날 현대음악에서 민족적인 소재를 사용하려는 영향을 낳는 근원이 되었다.

국민주의 악파 작곡가들은 민요적 선법, 고국의 민족선율과 가사 등을 작곡의 소재로 사용한 음악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후기 낭만주의 국민악파 작곡가들은 고국에 대한 애국심과 향수를 작품에 투영한 작품들이 많다. 이는 19세기 민족주의운동과 더불어 서양음악에 미친 영향으로 러시아 5인조(The Russian Five)-발라키레프,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륵스키, 보로딘, 큐이가 있고, 시벨리우스, 드보르작, 야나체크, 스메타나 등이 있다.

국민악파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자의식이 아닌 민족의식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역사적 실존인물과 전설적인 영웅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다수 있다. 간혹 심한 스트레스나, 깊은 우울감 또는 스스로 격려를 받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싶을 때 국민악파 작곡가들의 음악 감상이 음악치료로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의 구성이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기본으로 종결은 반드시 기쁨, 환희와 승리 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투르쿠의 시벨리우스 박물관.

19세기 핀란드는 주변 강대국의 침약과 끊임없는 간섭으로 역사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특히 19세기 말 핀란드는 러시아의 통치를 받으면서 이른바 1899년 ‘2월 선언’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공포하며 러시아가 핀란드의 내부 문제를 간섭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즉 핀란드 자치권의 박탈을 의미하는 사건이 되었다.

핀란드 태생인 시벨리우스는 그가 세살이 되던 해(1868년) 장티푸스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외삼촌의 돌봄을 받게 된다. 이때 음악을 좋아하던 삼촌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후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885년 핀란드의 왕립 알렉산더 대학(Imperial Alexander University)의 법학과에 진학하지만 음악의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헬싱키 음악원(현 시벨리우스 음악원) 입학한다. 이 곳에서 1885년부터 1889년까지 베겔리우스(Martin Wegelius)와 부조니(Ferruccio Busoni)로부터 작곡법 등을 배우며 작곡가로서 기반을 다졌다.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가 ‘핀란디아’를 작곡하던 때가 바로 1899년이었다. 국가의 자치권을 잃고, 자유를 유린당한 핀란드 국민들은 러시아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마치 20세기 초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국권을 잃었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시벨리우스는 러시아 내정 간섭 이전 스웨덴의 지배와 이후 러시아로부터 자유를 억압당하는 행태에 대해 민족적 정체성을 고민하고, 이는 곧 음악으로 반영된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에 만들어진 시벨리우스 공원. 시벨리우스는 조국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을 다수 작곡해 핀란드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곳에는 강철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기념비와 시벨리우스 동상이 있다. 600여 개의 금속 파이프로 이뤄진 기념비는 조각가 에일라 힐투넨의 작품으로 ‘음악의 열정(Passio Musicae)’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시벨리우스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가져온 중요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핀란디아’를 빼 놓을 수 없다. 34살 때 작곡한 이 작품은 그의 교향곡 2번,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핀란디아는 국민찬가로 선정되었고, 그의 공로를 인정한 정부는 그에게 평생 연금을 제공했다고 한다.

6월, 그리고 현충일을 앞 둔 오늘 ‘핀란디아’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킨 시벨리우스와 핀란드의 선율이 마치 일제강점기 우리의 한(限)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약 8~9분 정도의 길지 않은 작품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완벽한 기승전결 구조를 들려준다.

금관악기의 웅장한 서주는 마치 북유럽의 찬바람을 휘몰아치듯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목관악기의 따뜻한 선율은 찬 기운을 녹여내리듯 따뜻한 봄기운을 가져오는 듯하다. 결국 나라의 독립과 국민의 자유를 얻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승리를 노래’하는 한편의 오케스트라 드라마를 감상하는 듯하다. 현충일을 앞둔 오늘 그날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핀란디아를 감상해본다.

/광주시립교향악단 운영실장

하멘린나의 시벨리우스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