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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11> 내가 겪은 전위적 퍼포먼스

고통을 통해 진실을 보고 깨달음을 얻다
예술의 전위성, 사회적 모순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
中 장환·日 세이지 시모다, 역사에 남을 퍼포먼스 펼쳐
삶이 거칠고 힘들면 예술도 전위적으로 치열해지는 것

2020년 05월 28일(목) 01:26
3월 23일 교토 카페 바자르에서의 퍼포먼스, 타미지는 옷을 천천히 벗고 관객을 잠시 응시한 다음 뒤로 돌아섰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 ‘I HATE YOU!‘라고 썼다.
2015년 9월 11일 오전 10시, 전북도립미술관의 첫 ‘아시아현대미술전’ 개막식이 열렸다. 14개국 36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로서 현대 아시아의 영광을 꿈꾸는 첫 무대였다. 개회 선언이 있기 전 일본의 퍼포먼스 작가 세이지 시모다의 실연이 있었다. 그는 20여 년간 NIFAF를 주도해 오면서 국제적인 퍼포먼스 운동을 지속해오고 있었다. 그는 검은 비닐 봉투 하나를 들고 무대에 오르더니 거기에서 종이컵 등 일상의 사물들을 꺼내 테이프로 이것들을 얼굴에 부착시켜 나갔다. 얼마가지 않아 얼굴은 예상치 못한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곧이어 그는 주머니에서 휘슬을 꺼내 불기 시작했다. 몇 차례 반복되며 휘슬 소리는 불안한 긴장상태를 고조시켰다. 그것은 아시아의 전위예술이 처한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알리는 신호로 인식되었다.

2018년 3월 21일 도쿄 ARTS 3331, 미얀마 여성작가 타미지와 스페인 작가를 끈으로 묶은 퍼포먼스 ‘I LOVE YOU, I HATE YOU!’.
예술의 전위성은 사회적 모순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아시아권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아직 민주적 질서가 갖춰진 곳이 드물다. 권력은 이권과 유착되고 소수가 독점하며 심해지는 빈부 차, 인권 유린, 언론 탄압 등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지만 대책 없는 위기 속에서 전위성은 더욱 민감해진다.

중국의 유명한 작가 장환이 데뷔 시(1994) 온몸에 꿀과 생선 기름을 바르고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온몸에 달라붙는 파리들을 견디며 1시간 동안 버텨낸 퍼포먼스 역시 단순히 인내력을 시험하는 행위로 볼 수 없는 사회적 모순이 느껴진다.

꿀처럼 먹을 것이 있는 곳에 달라붙는 파리들, 그것을 견뎌야 하는 민중들…. 그러기에 그의 밀폐된 장소에서의 퍼포먼스 사진은 중국 전위 역사에 부동의 것으로 남아 있다. 그가 1998년 뉴욕 PS1에서 했던 ‘순례, 참배’라고 이름 붙인 퍼포먼스는 중국 전통 평상에 깔린 얼음 큐브 위에서 나체로 앉거나 누워서 견디는 것이었다. 중국의 전위성은 온몸으로 극한 상태까지 버티고 견디는 성향의 것들이 보인다.

장환, 1994년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체로 온 몸에 꿀과 어유를 발라 파리가 달라 붙고 그것을 견디는 퍼포먼스. 장환의 출세작 ‘12 평방미터’.
2018년 3월 23회째를 맞는 NIPAF(일본 국제 퍼포먼스 페스티발)에 작가로 초청되어 갔을 때에 내 행위의 주제는 ‘I LOVE YOU, I HATE YOU!‘였다. 사랑의 감정과 미움의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다루는 행위였다.

일본 도쿄, 교토, 오사카, 나가노 등을 순회하며 5차례 벌어지는 공연과 워크샵에서 나는 하나의 작품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다른 것을 보여야 했다. 마치 일상 속에서 그때그때 벌어지는 사건, 그때그때의 감정이 다르듯이 나의 작품 개념도 마찬가지였다.

그 첫 걸음은 미리 준비한 계획대로 치렀다. 사람과 사람을 묶는 끈, ‘I LOVE YOU, I HATE YOU!’를 육성으로 녹음한 5분짜리 파일, 그리고 그것을 적은 크고 작은 현수막, 얼굴에 바르는 페이스 칼라 등…. 나는 현장에서 만난 낮선 여자와 남자를 끈으로 묶었고 바닥에서는 ’아이 해이트 유‘와 ’아이 러브 유‘를 반복하는 감정섞인 목소리, 즉흥적으로 주어지는 사물들을 연결시키며 페이스 칼라로 칠해진 얼굴로 돌아봤다. 거기까지 준비된 것이었다. 사랑과 미움의 드라마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며칠 후 미얀마에서 온 타미지라는 여성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도와 달라고 했다. 그것은 그 여성 작가의 목에 걸린 목줄을 끌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역할이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위적, 지배적 악역이었다. 나는 기꺼이, 충실히 그 역을 담당했다.

그 후 나는 그녀에게 두 번의 도움 요청을 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의 요청 하나는 그녀가 상반신을 벗고 등 뒤의 스페인 남자와 함께 묶이는 것이었고 나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줄로 두 사람을 묶을 수 있었다. 현수막을 든 도우미까지 연결되어 그 장면은 멋지게 남아있다. 그리고 그녀의 반나 퍼포먼스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의 두 번째 요청은 더 적극적인 것이었다. 그녀가 관객 앞에 서서 천천히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하여 완전히 나체가 되었을 때에 약 3분간 관객을 응시하다가 관객을 등지고 서게 되면 내가 나타나 등 뒤에 글씨를 쓰는 것이었다. 그녀는 몇 분간 망설이더니 곧 수락했다. 그래서 그 장면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결정적일 때에 수줍어져서 뒤돌아 옷을 벗었고 그래서 관객을 향한 응시는 사라졌다. 그녀의 등 뒤에 나는 ‘I HATE YOU!‘를 썼다.

그 후 나는 그녀가 당당하지 못했음에 섭섭함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첫 나체 퍼포먼스였고 그래서 미얀마에 돌아가면 독재적 군부 정권에 항의하는 의미로 정부 청사 앞 광장을 나체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말해 주었다. ‘당신은 곧 감옥에 가겠지만, 미얀마의 전위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라고.

그 후 그녀는 돌아갔지만 아직 감옥에 갔다는 소식은 없다. 페이스 북에 올린 사진을 보면 바닥에 깔린 조그만 네모 틀에 스스로의 몸을 웅크려 가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옥죄는 환경에 스스로를 가둔 채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 반항의 몸짓을 펼치지는 않았다.

사실 예술의 전위성은 삶의 전위성과 다를 바 없다. 삶이 없다면 예술도 없다. 삶이 거칠고 힘들면 예술도 전위적으로 치열해진다. 행복한 낙원에서는 예술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예술이 필요 없는 낙원이 좋기는 하지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너무 편안한 삶은 심심하지 않은가? 너무 안락한 삶은 드라마도 소설도 될 수 없지 않은가? 인생의 쓴 맛,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진실을 보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고통은 더 나은 단계를 가기 위한 신호이다.

/장석원(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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