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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획 40년만에 받은 명예졸업장 <4>5·18시민군 이맹영씨

공수부대 만행·간첩 폭거 규정 '울분'
고교 2학년 재학 중 시위 참여했다 제적
"오월정신, 남북통일·세계 평화로 나가야"

2020년 05월 21일(목) 18:24
80년 5월 광주일고 2학년에 재학 중 시민군에 참여해 제적당한 이맹영씨가 최근 40년 만에 모교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광주일고 제공
“40년 세월이 흘러도 해마다 5월 이 맘 때가 되면 80년 5월 고교 때 부른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이 노랫말이 절로 입에서 나옵니다. 이 노래는 당시 자연발생적인 시민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역사적 현장에서 가슴으로 부른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80년 5월 당시 광주일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맹영씨(57)에게 5·18 광주는 이씨의 가슴과 머리에 각인돼 아픈 상처로 자리 잡고 있다.

이씨에게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은 충격 그 자체였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할 군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간첩들에 의한 폭거로 규정, 시민들에게 천인공노할 일들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80년 5월 학교 앞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만행에 의분을 느껴, 시위대 선두 차량에 올라 시민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씨는 핸드 마이크를 통해 “김대중 석방하라”, “계엄령 해제하라”, “전두환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두환이 누구인지,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씨는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믿기 어려운 그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그의 눈에 비친 5월의 광주는 잔인했다.

상무대와 도청 주변 등 그늘마다 시신이 누워 있고 역겨운 냄새가 이씨를 울부짖게 했다. 믿기지 않는 처참한 현실에 두려움보다는 ‘왜 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나? 그것도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에 의해 시민들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어야 하나’ 하는 의문과 함께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이씨의 울분을 솟구치게 했다.

이씨는 이후 ‘불법시위’ 혐의로 보름 동안 기관에서 조사를 받았고, 학교에서 제적됐다.

5·18 민주화 항쟁 기간 학생의 신분으로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교 현장에서 체포돼 강압에 의한 반성문 작성과 조사를 받았다.

항쟁 기간 동안 활동을 진술하고 그 실상을 외부로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학적을 강제로 정리당했다.

이후 이씨는 질풍노도와 같은 방황과 좌절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내가 그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이처럼 오랫동안 분노와 한을 겪을 일은 없지 않았을까?’라고 자문하는 세월이었다.

이씨는 95년 뒤늦게 신앙의 길을 찾아 장로회 신학대학교를 졸업했고, 현재 서울 용산구 소재 양선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이씨는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을 때는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경책을 넣어주기도 했다.

이씨는 그동안 간절히 원했던 졸업장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구속부상동지회와 광주시교육청의 추천으로 40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이씨는 “5·18민주화운동이 벌써 40주년을 맞았고 5·18 영령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많이 생각한다”며 “5·18을 등에 업고 훈장처럼 여겨서는 안 되고 더는 왜곡·폄훼해서도 안 되며, 과거를 넘어서서 민주·평화의 5·18정신을 널리 알려 남북통일·세계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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