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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10> 자유를 추구하는 무용가, 홍신자

자유로워지기 위해 춤추듯 순간을 살다
27세에 뉴욕 알윈 니콜라이 무용학교 등록
댄스시어터 워크샵 극장서 '제례' 공연 호평
인도서 라즈니쉬 등 명상 대가들 만나 깨달음
사랑-굴레-자유 사이 번민의 예술 지속해와

2020년 05월 14일(목) 10:00
‘1984년 존 케이지 음악과 함께 했던 작품 ‘네 개의 벽’ 중 한 장면. 네 개의 벽 안에 갇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삶의 딜레마에 빠진 인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2018년 6월 1일 오후 5시, 하정웅미술관에서 ‘한국을 사랑한 독일인’이라는 베르너 삿세의 전시 개막을 위한 행사가 있었다. 이때 작가 삿세와 배우자인 홍신자의 퍼포먼스가 열렸다. 커다란 붓을 들고 바닥에 펼쳐놓은 종이 위에 휘적휘적 붓질을 하던 그가 맨 마지막 장면에서 홍신자와 함께 마주 보고 큰 웃음을 소리 내어 웃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975년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나는 홍신자의 전위적 현대무용을 볼 수 있었다. 벽에 기대어 선채로 한쪽 팔만 간신히 움직이거나, 몇 분간 우산을 뱅뱅 돌리는 등 그것은 춤 이전에 메시지였고 영감이었으며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평범하던 홍신자는 1967년 뉴욕에서 알윈 니콜라이의 무용 공연을 보고 춤을 추기로 결심했다. 만 27세의 늦은 나이로 알윈 니콜라이가 세운 무용학교를 찾아 등록한 것이다. 그녀는 8년 간 ‘근육을 찢는’ 피땀을 흘리고 경제적인 고행을 겪은 끝에 무용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니콜라이 학교를 마치고 콜롬비아대 무용과 석사과정을, 뉴욕 예술학교에서 안무를 공부했다. 뉴욕 예술학교 학장 스튜어드 호디스는 학교 무대에 올린 그녀의 작품을 보고 “이제 너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때의 감동을 “나는 마치 검술 스승으로부터 하산을 허락받은 검객처럼 비장해졌다”고 표현했다.
죽은 친언니의 한을 풀기 위해 만든 작품 ‘제례’. 1973년 뉴욕에서 올린 작품으로 홍신자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의 개막작이 되었다.
1973년 뉴욕의 전위 무용 극장 ‘댄스 시어터 워크샵’에서 ‘제례’를 올려 호평을 받는다. 인생의 3분의 1을 병석에서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친언니의 한을 풀어보려고 만든 이 작품은 뉴욕에서만 20회 이상의 공연을 하게 되었고, 공연을 본 후 무대 뒤로 다가와 그녀를 안고 조용히 눈물만 흘리다 가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1976년 그녀는 인도에 가서 라즈니쉬, 니사가다타 마하라지 등 명상의 대가들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 처음 라즈니쉬를 만났을 때에 “저는 한국에서 왔으며 뉴욕에서 무용가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무용을 해야 할지 그것을 버려야 할지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고 말하자 라즈니쉬는 잠시 진지한 모습으로 그를 보더니 어떤 식으로든 몸을 움직여 보라고 했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더니, 결코 무용을 그만두지 말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의 길을 가라고 말해주었다.

1980년 홍신자는 한국의 한 무용 공연에서 이상남씨가 구상한 독특한 무대미술을 보고 인연이 되어 결혼하게 된다. 12세 연하인 28세의 추상화가와의 결혼 이후 뉴욕에 돌아와 뉴욕 다운타운 스탠든 거리의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행복하고도 지독히 괴로운’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유와 책임, 예술과 생활 사이의 갭은 그녀를 결코 편안하게 하지 않았다. 딸이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한국의 시댁에 맡기게 되었는데 잠시일 것으로 생각했던 그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1998년 간행된 홍신자의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싶다’라는 책에서 그녀는 작가의 말로 이렇게 서술한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을 안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딸을 낳고부터이다. 그날부터 내 가슴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기운이 사랑임을 알았다. 인류를 향한, 예술을 향한, 자연을 향한 빛나는 기쁨을 체험케 해준 딸은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늘 고마움을 지니고 산다.’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 자체가 물거품 같은 꿈이라고 하지만, 딸 아이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물거품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같이 살면서 사랑을 나눌 수도 없는 처지…. 사랑과 굴레와 자유 사이에서 그녀의 예술은 지속된다.

S왼팔로 해골 하나를 가슴에 품고 묵묵히 서서, 오른팔은 몸의 반대 방향으로 원형을 그리면서 그 손끝은 예민하고 미세하게 떨고 있다는 1984년 리버사이드 처치에서 초연된 ‘나선형의 대각선’. 힘들게 살던 시절 문득 욕조에서 떠올렸던 상상이 작품화 되었다.
왼팔로 해골 하나를 가슴에 품고 묵묵히 서서, 오른팔은 몸의 반대 방향으로 원형을 그리면서 그 손끝은 예민하고 미세하게 떨고 있다는 1984년 리버사이드 처치에서 초연된 ‘나선형의 대각선’은 끝없는 탄생과 죽음을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발상은 매일 파김치가 되도록 춤 연습,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음악을 틀어놓고 욕조에 누웠는데 몇 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해골을 안고 손을 흔들며 지구를 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 순간 좁은 욕조는 사라지고 자신은 우주 속을 떠도는 창조자의 영혼이 되었고 욕조에서 일어났을 대에는 이미 안무가 끝나 있었다고 한다.(홍신자 ‘나는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 P. 93-4)

아마도 긴 여행 끝의 모습을, 나는 하정웅미술관에서 그녀의 큰 웃음 퍼포먼스에서 본 것 같다. 인생은 여행이다. 그리고 기쁨이고 고통이며 허망한 한바탕 꿈이고 깨달음이다. 그녀의 터무니없는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삶을 구속 하는 그 어떤 이유도, 변명도 소멸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누구도 삶을 구속하지 않지만 당사자는 헤어날 수 없는 구속감에서 좀처럼 해방될 수 없는 삶의 굴레…, 웃음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벽….

1975년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봤던 전위적 동작들, 한 남자와 무대 바닥을 뒹굴면서 웅얼거리듯, 알 수 없이 내뱉던 말과 춤인지 뭔지 모를 동작들은 바로 우리들 인생을 말했던 것이 아닐까? 죽을 때까지 방황하면서 수없이 질문과 대답을 내놓지만 끝내 알기 어려운 삶의 문제를 치열하게 다룬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처음 알윈 니콜라이의 공연을 보고 ‘나는 이제 춤을 출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터뜨리고 모든 것을 분출하는 춤을 출 것이다’고 다짐했던 그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삶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는 말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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