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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8>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요셉 보이스

목숨을 건 예술적 결단이 필요하다
영화 ‘작가미상’에서 본 예술적 창의력
“예술이 죽으면 사회도 죽어” 각성 필요

2020년 04월 09일(목) 06:12
영화 ‘작가미상’의 명장면. 뒤셀도르프 대학 교수 요셉 보이스가 양대 정당의 정치인에게 투표하지 말고 예술에 투표하라며, 선거 포스터를 불태우는 장면.
영화 ‘작가미상’은 독일 유명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그린 것이다. 유년시절 히틀러 시절의 잔혹한 정치를 경험하고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청년기를 지내면서 미술대학에 진학, 공산당의 선전 벽화를 그리다가 연인과 함께 서독으로 탈출,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고 독특한 그림으로 성공적 데뷔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잘 묘사되고 있다.

그가 동독을 버리고 탈출한 것은 ‘자유’를 찾아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고, 서독에 와서 현대미술의 진원지였던 뒤셀도르프 대학으로 간 것은 진정한 예술의 자유와 독창성을 발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의 선전 벽화로 이미 사실적인 묘사력을 충분히 인정받았지만 그것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진정한 예술의 의욕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뒤셀도르프 교수 요셉 보이스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예술적 각성은 일깨워졌다. 수업 중 요셉 보이스는 선거철 양대 정당 정치인의 포스터 이미지를 두고 학생들에게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둘로 갈라져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다. 이때 요셉 보이스는 정치인에게 투표하지 말고 각자의 예술에 투표하라고 말한다. 예술이 죽으면 이 사회도 죽는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보이스는 그 정치 포스터에 불을 지른다. 보이스 뒤에 설치된 포스터는 불이 붙는다.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두 번째 수업 장면은 요셉 보이스가 학생들에게 특별한 각성에 대해 묻는 장면이다. 리히터는 이렇게 말한다.

“두 자리 숫자를 임의적으로 나열해 말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복권 당첨 숫자는 의미가 있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다”고.

보이스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수업을 마치겠다며 따로 리히터를 호명하더니 남으라고 한다. 그리고 보이스는 리히터의 작품을 보고 싶다고 한다.

좀처럼 학생들의 작업을 보지 않기로 소문난 그가 왜 리히터의 작품을 보자고 했을까? 리히터는 긴장하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에 의한 작품들을 준비한다. 마침내 보이스가 그의 작업실에 들어왔다. 어떤 작품은 칼로 캔버스를 찢어 물감이 흘러내리게 한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의미를 추측하기 어려운 원형의 붓질을 나열한 것도 있었다.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보이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2차 대전 때 공군 폭격기 조종사 보조로 탑승하게 되었는데, 당시 조종사는 단기 교육으로 문제가 있었다. 동유럽 타타르 지역으로 갔는데, 조종 미숙으로 추락했다. 조종사는 즉사하고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타타르 원주민이 다가와 우리를 발견하고 나를 수습해 치료하기 시작했다. 온 몸에 지방을 두텁게 바르고 펠트로 둘둘 말아 보호했다. 몽골 출신 부족의 전통적 치료 방식이었다. 자신들을 폭격하기 위해 갔던 군인을 정성을 다해 치료했던 것이다. 내 피부는 지방질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고 감싸여진 펠트로 체온을 유지하며 깨어나게 되었다. 내 피부는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작품에서 사용하는 지방, 펠트는 그러한 이유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그런데 네 작품에는 네가 없다. 나는 네가 있는 작품을 보고 싶다.”

그 말을 하고 보이스는 작업실을 떠났다.

‘작가미상’의 주인공 게르하르트의 초기 출세작. 사실적인 묘사 위에 그것을 지우는 붓질을 가해 나치 시절의 기억과 지금을 연결시킨다.
충격을 받은 리히터는 고민에 빠진다. 무엇인가를 그리기 위해 캔버스를 펼쳐놓고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한다. 패션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 그리고 병원 계단 청소로 용돈을 버는 와중에도 작품을 고민하지만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문득 나치 치하에서 사상적 불온으로 찍혀 정신병동으로 끌려갔다가 강제적 불임 수술과 반항 그리고 결국 가스실에서 죽은 이모를 떠올린다.

유년 시절 자유의 가치를 알게 했던 그 이모와 찍은 사진을 모사하기 시작한다. 짙은 푸른 색 계열의 모노톤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 위에서 그는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림이 마르기 전 평 붓으로 그림을 살짝 뭉개면서 사실적 이미지는 과거의 기억과 연결된 감성을 일깨우게 된다.

직감적으로 그는 이것이 자신이 찾던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러한 기법으로 나치 치하의 기억과 처절하게 찢긴 삶을 연결시키며, 자신만의 독특한 발언을 시작한다. 독일 전체가 정서적으로 헤어나지 못했던 전범 국가로서의 죄의식, 어떻게든 치유되지 않고서는 당당할 수 없었던 역사적 기억들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다.

한편 동독에서부터 연인 사이로 동반 탈출했던 아내를 뒤셀도르프 대학의 계단을 나체로 내려오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작품화한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남게 되었는데, 후일 작가와의 대화에서 “마르셀 뒤샹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패러디 한 것으로 뒤샹에게 헌정하는 의미의 작품”이라고 고백한다.

전후 폭격으로 초토화됐던 독일의 도시 풍경 이상으로 황폐했던 정신적 기반을 재기할 수 있게 발휘되었던 예술적 창의력을 영화 ‘작가미상’에서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리히터 작, ‘계단을 내려오는 에르나-게르하르트 리히터’, 1966.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계단을 내려오는 에르나의 모습을 촬영해 그린 것으로 마르셀 뒤샹에 대한 헌정이기도 하다.
요셉 보이스처럼 모든 사람의 창의력을 활짝 열려는 예술적 문제 제기가 없고서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다. 그 스승의 정신적 자극을 받아 고심 끝에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나아간 제자의 모습도 그럴 듯해 보인다.

예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고차원의 예술적 질문과 대답이 필요하다. 예술마저 진영논리에 갇혀 이데올로기 방향으로 고착되거나 상업주의적 위력에 굴복하는 모습으로는 결코 정상적 미래를 열 수 없다. 목숨을 건 예술적 결단이 현장에서 요구된다. 이 길을 우리는 피해갈 수 없다.

/장석원(미술평론가)



리히터 작, ‘계단을 내려오는 에르나-게르하르트 리히터’, 1966.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계단을 내려오는 에르나의 모습을 촬영해 그린 것으로 마르셀 뒤샹에 대한 헌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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