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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서혁신 “음악, 끝이 없는 장르‥실력 키워나가야”
2020년 04월 08일(수) 09:13
뮤지션 서혁신
뮤지션 서혁신 “음악, 끝이 없는 장르‥실력 키워나가야”

내 실력을 키우는 게 음악을 잘하는 길
나이 50되면 블루스 밴드 만들어 공연

스튜디오 방음은 온전히 뮤지션을 위해서였다. 지척의 소음들이 우리들의 귀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왔을 때도 뮤지션의 스튜디오는 자리를 지키며 가사와 소리, 곡을 만들었다. 추운 계절임을 절감케 하고 감염의 신산스러움이 주위를 휘감아 돌아도 뮤지션의 감각은 여전했다. 그 자신이 손을 움직이자 모니터의 높낮이와 깜박임은 멈추질 않는다. 지속의 향연.
바다의 향이 물씬 풍기는 여수 오동도 앞 스튜디오. 서혁신이 숨 쉬고 생각하는 곳이다. 그에게 음악에 대해 물었다.

글 사진 동부취재본부=우성진 기자

- 음악이란 무엇인가.

▲ 학창시절 가장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이 두 개 있었다. 농구와 기타 치는 것이었다. 철이 들면서 들었던 누군가 했던 말, ‘돈과 명예는 떼어놓고 본다’는 얘기,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대학 때 통기타 동아리 ‘하모닉스’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노래가 재밌었고 함께 하는 밴드가 좋았다. 음악은 그렇게 내 삶에 시나브로 들어왔다. 평생 밴드가 하고 싶다. 음악은 내게 그러하다.

- 노래와 음악에 대한 열정이 크다.

▲ 90년대 중후반, 실용음악과를 둔 대학이 드물었다. 당시 서울예전에만 있었다.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나 갈증이 심했다. 작곡가 길옥윤 선생이 만든 서울재즈아카데미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두드렸고 발성부터 배웠다. 기타반, 작곡반 등을 넘나들었다. 작곡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밴드를 하려면 다른 이들로부터 곡을 받으려 애쓰지 말고 스스로 해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실행했다. 더듬이수준으로 시작했다. 지금이야 ‘미디’가 나름대로 보편화 과정에 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음악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 일반인에게‘미디’는 좀 어렵고 낯설다.

▲ 말 그대로 ‘뮤지컬 인스투루먼트 디지털 인터페이스’다. 전자 악기를 이용해서 하나의 곡을 완성해 내는 시스템이자 과정이다. 흔히 가수와 가사, 악기들이 모여 하나의 곡을 만들어내는데 ‘미디’는 컴퓨터 음악기기를 통해 혼자서도 거뜬히 해낸다. 미디의 가장 큰 매력은 머릿속에 악상이 떠오르면 그 즉시 다른 소스의 도움 없이 홀로 노래와 가사, 곡, 편곡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곡, 결과물을 내놓으면 그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그래서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배웠다. 믹싱은 노래를 만들기 위한 각각의 요소들을 섞고 모으는 것이고, 마스터링은 볼륨이나 음질까지 완벽하게 컨트롤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귀에 까지 노래를 들리게 하는 것이다.

- 대학과 실용음악학원에서 강의를 했다고 들었다.

▲ 상명대 컴퓨터음악과 석사과정과 서울재즈아카데미 과정을 마치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수년간 레슨을 했다. 입시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배운 것을 아낌없이 내줬다. 그러다 문득 고민에 빠졌다. 원래 꿈이 뭔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심플하게 생각했다. 나의 음악으로 승부해야겠다는. 곡을 만들어 내가 부르고 앨범을 만들고, 때론 다른 이들에게 주기도 하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교수와 강사 타이틀을 벗어버렸다. 홀가분했다. 목표가 더욱 분명해졌다.

- 보람이라면.

▲ 뮤지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나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퍼포먼스를 멋지게 하는 것과 함께 결국은 내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나 밖에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래서 이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늘 불태워야 한다고 본다. 거기에는 끊임없는 연습이 밑바탕이다. 발라드 안에 트로트, 국악 안에 펑키, 재즈 안에 또 다른 장르, 이렇게 딱 정해진 것이 없이, 합치고 섞으면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곡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보람이다. 실제 하나의 곡으로, 작품으로 눈앞에 보일 수 있고 들려줄 수 있다는 것, 나의 자신감이자 자존감이다. 최근 한 공연장에서 내가 작곡한 노래를 부른 한 가수가 누구(서혁신)의 작품임을 밝히며 흥겹게 부른 것에도 감사하다.

- 서울생활을 마치고 여수에 온 지 3년쯤 됐는데. 꿈이 궁금하다.

▲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곤 음악적 다양성을 접하긴 사실상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또한 뮤지션이 헤쳐 나가야 한다. 환경이 그렇다면 이 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여수는 낭만포차, 버스킹 등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좀 더 채울 수 있도록 하려 한다. 나의 도움으로 고향이 음악으로 풍요로울 수 있다면 그 행복 또한 매우 즐겁다.
세 가지 정도 생각하고 있다. 우선 내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을 기본으로 지역에서 음악적 다양성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어여쁜 새싹, 제자들을 키워 내는 것이다. 꿈이자 현재 진행형이다.
마지막 바람이 있다. 나이 50을 넘으면 블루스 밴드를 만들어 노래하고 싶다. 나의 내면과 대중의 음악적 교류를 잘 엮어내 소울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 곧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음은 서혁신의 노래 ‘행복해져라’의 가사 끝부분이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어제보다 조금만 더
내 작은 소원이 있다면
단 하나 우리 모두 행복하길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우리는 그럴만하잖아
슬픔을 겪어낸 사람만이
결국에 웃을 수 있어 너처럼.
우성진 기자         우성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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