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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국새·효종어보, 미국서 돌아왔다

재미교포 이대수 씨 기증…국립고궁박물관서 내달 8일까지 공개

2020년 02월 19일(수) 11:07
국새 ‘대군주보’(왼쪽)와 효종어보.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조선의 자주국가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1882년(고종 19년)에 제작한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와 효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0년(영조 16년)에 제작한 ‘효종어보(孝宗御寶)’를 지난 해 12월 재미교포 이대수 씨(84)로부터 기증받아 최근 국내로 무사히 인도했다고 19일 밝혔다.

국새는 국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외교문서나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된 도장이다.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으로, 왕이나 왕비의 덕을 기리거나 죽은 후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해 국가에서 관리했다.

대군주보는 높이 7.9cm, 길이 12.7cm 크기로 은색의 거북이 모양 손잡이와 인판(도장 몸체)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 외교관련 업무를 위해 고종의 명에 따라 1882년에 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전까지 조선은 명과 청에서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국새를 받아 사용했으나, 고종의 명으로 ‘대(大)조선국’의 ‘대군주(大君主)’라는 글씨를 새긴 ‘대군주보’를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고종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1882년) 등의 당시 조선의 정세 변화에 발맞추어 중국 중심의 사대적 외교관계를 청산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의 전환을 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세부 자료 조사 결과, 대군주보의 공식적인 사용 시기는 1882년 제작 이후 1897년까지로 파악됐으며, 외국과의 통상조약 업무를 담당하는 전권대신(全權大臣)을 임명하는 문서(1883년)에 실제 날인된 예를 확인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새롭게 제정된 공문서 제도를 바탕으로 대군주(국왕)의 명의로 반포되는 법률, 칙령, 조칙과 관료의 임명문서 등에 사용한 사실도 확인했다.

높이 8.4cm, 길이 12.6cm 크기로 역시 거북이 모양 손잡이에 금색을 띤 효종어보는 영조 16년(1740년)에 효종에게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존호를 올리며 제작된 것이다.

기증자인 재미교포 이대수 씨는 1960년대 미국으로 유학 후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경매 등을 통해 문화재들을 매입하던 중 1990년대 후반에 이 두 유물들을 매입했고, 최근 국새?어보가 대한민국 정부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고국에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국새와 어보는 총 412점이 제작됐으며, 이번에 돌아온 2점을 제외하고도 아직 73점은 행방불명 상태다. 이번 환수는 제3자의 도움과 소유자 스스로의 결심으로 이루어 낸 ‘기증’이라는 형식의 ‘우호적 환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돌아온 대군주보와 효종어보는 20일부터 3월 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조선의 국왕’실에서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이연수 기자         이연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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