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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대답<2>우여곡절 광주비엔날레

현대미술, 깊이 알수록 깊은 내막 보인다

2020년 01월 16일(목) 17:01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쿠바 작가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 당시 제3세계 작가의 수상 소식은 신선했으며, 그것도 25세의 젊은 작가가 쿠바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는 보트 피플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작가는 광주에 오기 전에 주최 측에 빈 맥주병 2,000개와 노젓는 배를 요구해왔다.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배…, 그것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미국으로? 아니면 복잡한 현실을 피해서 피안의 세계로?
제3회 광주비엔날레 ‘인+간’ 우여곡절 겪어

중국작가 마류밍 개막일 퍼포먼스로 유명세

2007 신정아 사건은 총감독 선정 모순 폭로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렸을 때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대상을 수상한 쿠바 작가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였다. 빈 맥주병 2,000개 위에 나룻배 한 척을 띄운 이 작품은 당시 핫이슈였던 쿠바의 난민을 다룬 것이어서 호평을 받았다.

당시 유난히 단체 관람객이 많았는데, 한 의사협회에서 나온 관객은 도슨트의 작품 설명에 “예술이 꼭 설명을 들어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게 예술이냐?”고 반문했다.

이 말은 꽃이 아름답고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굳이 설명의 여부와 관계없이 아름다운 것이고,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은 설명의 필요없이 아름다움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는 지금도 유효하고 어느 정도 예술의 본질을 가리키는 면이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알아야 하고, 깊이 알수록 깊은 내막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오늘의 예술은 의외로 예술 외적인 문제와 크게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크초의 경우도 그렇지만,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가게에서 구입해 전시장에 작품으로 내놓은 경우도 그렇고, 팝의 대가 앤디 워홀이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의 얼굴을 실크 스크린으로 복제해서 작품으로 낸 것도 그렇다.

독일의 요셉 보이스에 이르면 7,000개의 현무암 돌기둥을 쌓아놓고 떡갈나무 한그루와 짝을 지어 도처에 심겨지도록 한 프로젝트는 단순히 무엇이 아름답게 보이느냐 하는 문제와 전혀 별개의 동태를 보였다. 예술은 확장된 개념으로 경계를 넘어 변모해 왔다.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분이 크게 일었다. 당시 총감독으로 뽑혔던 최민이 권한 문제로 조직을 총괄하는 최영훈 사무처장과 갈등을 빚었다. 1년여에 걸쳐 전시 업무 진행보다는 조직 내의 갈등이 점차 외부적 미술계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그리고 극단적인 권력투쟁 조짐을 보이자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사회는 최민 감독을 업무 태만으로 해촉시켰다.

그 와중에 필자는 전시기획실장으로, 그리고 오광수 총감독이 위촉되었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를 둘러싼 갈등은 증폭되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시장을 만나면 광주비엔날레 상황을 묻는 정도였다.

차기 대회를 준비하는 시간에 쫓기어 이른 시간에 출근해 있던 내 방으로 당시 김태홍 사무총장(부시장)이 커피 두 잔을 대동하고 찾아왔다. 갈등 확산을 막고 타협할 수 있는 인물이 있으니 만나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난 인물이 김상윤, 후에 사무처장이 되었다. 그날 우리는 오광수 총감독을 만나러 서울로 갔다. 그리고 며칠 후 오광수, 장석원, 김태홍, 김상윤이 손을 잡고 대타협을 이뤄내는 기자회견을 갖게 되었다.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중국 작가 마류밍이 수면제에 의해 취해 잠들어 있다. 그 옆에서 한 사람씩 짝을 지어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 많은 외국인 작가, 기획자들 뒤로 당시 전시기획실장이던 필자가 포즈를 잡았다. 이 일로 마류밍은 국제적인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우리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전시 구도를 구축했다. 본 전시 1관에 아시아 작가들을 배치키로 하고 커미셔너로는 일본의 타니 아라다가 맡았다. 물론 전 세계를 5개 권역으로 나눠서 각 섹션을 맏는 커미셔너를 뒀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분할형 전시 구도였다. 그 외에 ‘예술과 인권’, ‘예술과 성’ 등 주제 ‘인+간’과 관련된 특별전들이 있었다.

개막일 오후 2시경, 구내방송으로 중국작가 마류밍의 퍼포먼스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제1관 자신의 작품 부스 앞이었다. 현장에 가보니 이미 국내외 작가들, 기자들, 관객 등이 몰려 있다. 가운데에는 얕은 단 위에 중국식 의자가 둘 놓여 있었다. 얼마 후 마류밍은 나체로 등장했다. 미리 수면제를 많이 먹고 졸린 상태에서 사무 공간과 긴 복도를 관통해 나체로 걸어왔던 것이다.

의자에 앉은 그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한 사람씩 빈 의자에 혹은 그 주위에 서서 졸고 있는 나체의 작가와 짝을 이뤄 사진을 찍는 것이 이 퍼포먼스의 핵심이었다. 기이하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국제적인 작가, 평론가, 기자, 관객 등이 참여했다. 나도 불현듯 이 순간에 참여했다. 전시기획실장으로, 출근복 그대로, 팔짱을 낀 채로, 자고 있는 작가와 상관없이 사유하는 자세로 찰칵, 그 장면은 마침 취재하고 있던 광주권 일간지 사진기자에 의해 기록되어 남았다.

그후 마류밍은 국제적으로 유명해져서 베니스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등에 초대되었다. 수년 후 북경에서 내가 만난 마류밍은 더 이상 전위적인 행위미술가가 아니었다. 고급 대형 아파트를 작업실로 쓰면서 조수를 몇 명 두고, 잘 나가는 모습이었다.

1995년 5월 11일 마류밍, 주밍, 창신 등 10명의 남녀 전위 작가가 높이 86.393m의 미아오펭산에서 벗은 몸들을 차곡차곡 쌓아 1m를 더 올렸다는 퍼포먼스. 13시 26분~13시 38분 사이에 그 산의 높이는 87.393m가 되었다. 신체를 통한 중국적 전위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1995년에 무명시절의 주밍, 창신, 장환 등과 더불어 10명의 작가가 높이 86.393m의 야산을 1m 더 높이기 위해 차곡차곡 벗은 몸들을 쌓던 전위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그 후 몇 차례 전시장에서 본 그의 그림은 그와 관련된 미술책을 쌓아 놓은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는 그 책의 높이처럼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그는 이미 끝난 것처럼 보였다.

2007년도 광주비엔날레의 신정아 사건은 당시 총감독 선정 체계가 정치적, 관변적이라는 모순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던 사건이었다. 투명하게 경쟁적으로 진행될 수 없는, 정치적 이해 관계로 얼룩진 최악의 결과였다.

신정아를 추천했던 이사회의 한 인사의 무지함이나 이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던 이사회의 시스템이나 사전에 예고된 시나리오대로 권력에 의한 암시대로 맹목적으로 따르는 기제의 무지함 그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다. 신정아를 결정하면서 모 인사(광주의 화가, 당시 비엔날레 이사)가 서울을 들락거리면서 수고를 한 덕분에 ‘옥동자를 낳게 되었다’고 했던 당시 박광태 시장의 치하는 무지한 권력이 통하는 이사회 시스템에서의 오만이었다.

그때 이후로 한국 감독은 광주비엔날레에서 제외되고 있다. 번번이 외국 감독으로 나열되어 광주비엔날레는 더 이상 아시아 대표 비엔날레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그저 외국의 명망있는 기획자들을 불러 그들의 입맛대로, 외형적 세련도나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정치적 요구에 부합하기 좋은 형태로 변신되었다. 국제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한국 독자적인 기획력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는 미리 차단되고 종적을 감추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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