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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후의 자동차로 유럽여행 2부/ 영원한 관광대국 이탈리아를 탐하다<23·완>에필로그

그리운 저 빛난 햇빛의 도시 소렌토

2020년 01월 09일(목) 18:36
소렌토에서 시작되는 지상낙원의 길, 아말피 코스트.
세계 최고 해안절벽 절경 자랑 아말피 해안

지중해 아름다운 바다 품은 세계적 휴양지

문화유적 애착과 관심 국민적 자부심으로



이제 이탈리아 전국을 한 바퀴 일주하는 여행도 종착역에 이르게 되었다. 로마에서 시작하여 로마로 끝나는 이번 이탈리아 전국일주는 그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여행 코스였다. 긴 반도나라의 남북에 걸쳐 이탈리아의 속살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한두군데 유명 관광도시를 보고서 전체를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리얼하고 생동감 있는 여행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콤파니아 주에 속한 세계 3대 미항 나폴리, 세계 최고의 휴양지 카프리, 2천년 전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보여주는 폼페이 유적에 이어 다음 행선지는 그 유명한 소렌토, 세계 최고의 해안절벽 절경을 자랑하는 아말피 해안이었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1,281m의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구까지 올라갈 시간이 있었다면 위에서 언급한 나폴리 일대의 모든 풍광과 산수지세를 조망해 볼 수 있었겠지만 여행은 시간과 장소의 선택과정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날 마지막 코스는 소렌토행. 나폴리 호텔을 일찍 떠나 잔뜩 설레는 가슴으로 남행했다. 이 날은 겨울햇살이 화창하여 아름다운 소렌토 바다는 윤슬로 수평선에서부터 해변까지 광휘가 넘쳐났다. 참으로 눈부신 신비감이 온 몸을 감쌌다. 멀리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아도 빛나는 풍광이 숨막히는 듯했는데 실제 백사장에서 보면 더욱 장관이겠지... 왜냐하면 겨울햇살이라 태양고도가 낮아 해변의 고도라면 그 각도상 태양빛이 더 많이 반사될 것이 아닌가. 빛이 넘쳐 눈부신 해안 절경은 여행자의 호기심으로 인해 더욱더 뇌리에 깊이 새겨지지 않겠는가. 인상파 화가가 아니라도 빛이 가득한 세상은 평범한 여행자에게도 넘치는 정열과 그리운 로망에 대해 성찰할 계기를 주지 않겠는가.

소렌토의 눈부신 겨울바다. 윤슬이 일품이다.
1898년에 작곡된 ‘오 솔레 미오’는 나폴리의 빛나는 태양을 담고 있다면 ‘돌아오라 소렌토로’ 역시 소렌토의 풍광을 찬양하며 떠나간 애인에게 정겨운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고 있다. 나폴리와 소렌토는 나폴리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개의 항구이다. 소렌토는 원래 작은 어항이었지만 이제는 격이 달라졌다. 세계적인 휴양지로서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다.

나폴레타나는 나폴리에서 생긴 성악곡을 말하는데 전자는 나폴레타나의 왕이라면, 후자의 곡은 ‘여왕’으로 비견된다고 한다. 그 정도의 포스가 있으니까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겠지.... 하여간 ‘돌아오라 소렌토’는 1902년 27세의 나이에 작사와 작곡을 나폴리 출신 형제가 했는데 이 노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작은 해안 도시 소렌토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다. 이 노래가 인기 절정인 때가 나폴리 민요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나폴리 민요를 나폴레타나라고 하는데 1200년경에 발생했으니 오랜 역사와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이 놀랍다. 나폴리 민요는 주로 망향의 노래인데 고향을 떠난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이국에서 부르는 향수가 잔뜩 밴 곡들이다. 나폴리 민요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나폴리에서 매년 열리는 민요제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남도에도 바다를 끼고 있어 ‘내 고향 남쪽 바다’가 인기가 있고 서편제가 있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로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구나. ...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태리 교민들이 애창하며 향수를 달랬다는 너무나 유명한 가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여수 밤바다’가 그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절벽 해안도로에서 조망한 소렌토.
소렌토를 지나며 위의 가곡을 흥얼거렸다. 중학시절에 배웠으니 죽기까지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 소렌토부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아말피 코스트에 해당한다. 왜 그렇게 유명할까 했더니 차를 몰고 가기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해안도로였다. 큰 버스는 다닐 수도 없어 관광용 미니버스만 다니고 있다. 운전자인 필자는 주변 경관을 흘끔거리며 쳐다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운전에만 집중해야 할 죽음의 도로였다. 시간마저 부족해 중간의 포지타노와 아말피 해안도시 해변의 중심지에는 접근하지도 못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콤파니아 주 끄트머리의 살레르노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라벨로를 거쳐 로마시까지 출국 전날에 도착해야 했다.

그토록 가파른 해안절벽에 제비집처럼 붙어사는 수많은 인간군상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험하고 위험한 곳에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것도 역설이고 현재는 세계적인 관광지라니 더욱 놀라웠다. 그래서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 세상엔 이야기거리가 되나보다.

카프리와 아말피 해안도로의 절벽에 자리 잡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보고 우리네 남해안 섬들의 급경사지가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는 자각을 했다. 우리 지역 한 전직 부지사는 전남의 미래가 섬 자원의 활용에 있다는 나의 주장에 동감하여 인증용 현장사진들을 요청하기도 했다.

거의 보름간에 걸친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은 무사히 끝나 여행전문가의 면모를 유지했다. 더 나아가 수많은 풍광과 경승, 문화와 유적을 답사하고 생활상과 사회상을 접하며 화이부동을 고찰하는 여유까지 가졌다. 그들의 놀라운 역사문화유산을 부러워하지만 부러워만 할 수 없는 노릇임을 자각하는 멋진 여행이었다. 역시 이탈리아는 남북간 경제적 갈등이 있어도 하나의 국가로서 사회문화적 공통점과 일체감이 있어 소매치기 왕국의 오명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고대로부터의 문화유적에 대한 절대적인 애착과 관심이 국민적인 자부심이 되어 로마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신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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