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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후의 자동차로 유럽여행 2부/ 영원한 관광대국 이탈리아를 탐하다<22> 폼페이③

타임머신 타고 현재로 온 도시

2020년 01월 02일(목) 15:53
폼페이 발굴 각종 도자기와 웅크린 채 죽어간 석고 인간상. 옆의 수반에 황천노자로 쓰라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다.
고대 황족과 귀족들 휴양의 도시

신의 노여움이 뿜어나온 분화구

뜨거운 화산재에 매몰 하얀 인골



폼페이에는 창녀들의 공간이 각종 음화로 장식되어 성적 환상을 일으키는 것을 현재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폼페이 인구는 2만이었는데 집창촌이 21개나 된다고 하니 그들의 성개방 풍조를 익히 알 수 있다. 그들을 찾아가는 길안내표시 돌판이 아직도 존재한다.

무역선 선원들의 객고를 풀어준 이곳의 여성들은 투표권은 없어도 광장에서의 발언권은 있었다고 한다. 세금을 내고 당당히 영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근래에 이탈리아에서는 포르노 배우가 국회의원이 된 적도 있었다. 하여간 집창촌엔 다국적 여성들이 몰려들었으며 언어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화로 손님들의 성적 취향을 파악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폼페이의 성적 타락이 신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폼페이는 고대의 황족과 귀족의 휴양도시였고 번성했던 무역항이었으므로 교양있는 여성을 그린 우아한 그림도 있다. 그들은 대부분 파마 형태의 세련된 헤어스타일을 보이는데 장식품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당시엔 종이가 없었으니 한 손엔 메모를 하기 위한 석판을 들고 다른 손엔 필기용 철필을 든 채 포즈를 잡은 여인상도 있으니 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는 폼페이에서 발굴된 그림을 되도록 현지에서 복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하지만 유명한 벽화는 대부분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니 먼저 그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폼페이를 찾을 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인상적인 그림을 하나 더 소개할까 한다. 폼페이의 어느 비극 작가의 집 대문엔 모자이크로 사나운 흑구가 그려져 있고 개조심이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어 새삼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카프리의 많은 집 대문앞 땅바닥엔 자기 땅의 경계를 타일로 표시하거나 공시하는 점이 참 신기했다. 대문 밖의 영역인데 설령 지적도엔 자기소유 땅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소유권을 주장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이었다.



폼페이의 간선도로인 ‘행운의 길’에는 ‘파우노의 집’이 있다. 규모가 큰 이 집에선 로마시대의 대표 모자이크 그림을 볼 수 있다. 지난 번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편에 소개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이수스 전투장면이다. 바닥 장식으로 모자이크 그림을 그렸는데 기원전 330년에 대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 격전을 치룬 전쟁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원본은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모작을 만들어 놓았지만 감동은 여전하다. 이곳의 작은 박물관의 영상에선 전투장면의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전투의 승리는 헬레니즘 문화가 꽃핀 계기가 된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으니 두고두고 기리고 인용하리라.

이 집은 고관대작의 집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문패가 없어 그냥 목축의 신 ‘파우노’의 이름을 빌려 명명했다. 왜냐하면 이 집에서 50센티 크기의 파우노 청동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집은 여성을 위한 안뜰과 창고, 신전, 노예들을 위한 바깥뜰이 구분되어 있을 정도로 부유한 저택주인의 신분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집 말고도 안내판에는 여러 사람들의 집을 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일례로 ‘정형외과의 집’도 있다.

큰 돌로 포장된 도로의 틈새엔 하얀 돌을 끼어 넣어 야간통행에 도움이 되게 했다.
폼페이의 유물이라는 하얀 인골은 그대로 출토된 것이 아니다. 고온의 화산재에 매몰된 인체가 화산재 속에서 연소하거나 증발하여 공동을 만들어 냈는데 그 속에 하얀 석고를 부어 만들어 낸 조소품이다. 인간의 육체가 꼭 그 치수대로 화산재 속에서 정확히 그만한 빈 공간을 만들어 냈으니 역으로 석고를 부어도 같은 형체가 될 수밖에 없다.

폼페이의 도로는 계획도시의 도로답게 격자형으로 되어 있고 큰 돌을 깔아 포장을 했다. 그래서 마차가 불편없이 다닐 수 있고 양쪽엔 인도가 있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구조이다. 큰 돌로 포장을 한 후 빈틈은 하얀 자갈을 끼어 넣어 밤에 다닐 때 희미하나마 길을 알아볼 수 있게 한 점도 놀랍다. 현대도시 도로의 야광판 또는 발광판과 같은 이치다. 또한 인도와 경계를 이루는 돌에는 구멍을 뚫어 말을 묶어 둘 수 있도록 한 곳도 있어 그들의 생활지혜가 현대인과 다를 바가 없다. 집집마다 그 가옥구조가 노출되어 있으니 당시에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푸른 창공과 완전한 대비를 이루는 바실리카 근처 비너스 신전의 인상적인 조각상.
폼페이는 정말 인류의 거대한 문화유산이다. 고대의 폼페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에 착륙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은 폼페이를 뜨거운 화산재와 질식사를 가져오는 독가스로 뒤덮어 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밀레니엄이 두 번 지나도록 온전히 땅속에 보존하였다가 후대에 거의 온전히 보여주는 섭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신의 뜻을 알 수 없을게다. 그리고 각자는 그 입장에 따라 그 해석을 달리 하겠지….

하여간 신의 노여움이 뿜어 나온 저주의 분화구와 진노의 화산쇄설물이 흘러내려간 베수비오 산록에 올라가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그러나 시가지가 끝나는 산자락에도 갈 시간이 없었다. 참고로 베수비오 화산은 남북에서 오르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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