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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2020전남매일 신춘문예 골드문학상- 수필 당선작 제은숙

2020년 01월 01일(수) 00:00
삽화=이형우 △홍익대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 졸 △개인전 19회 △단체전 110여회 △www.artsluke.com
장작이 탄다. 불이 붙기 시작하면 확확 타오른다. 마른 나무가 몸을 뒤채며 터지고 끊어진다. 치솟을 땐 다가 갈 수도 없게 뜨거웠던 것이 잦아들면 은은한 열기와 함께 옆자리를 내어준다. 숯불은 불길을 제 속에 불러들여 스스로 발광한다. 온전히 붉은 것이 아니라 노랗거나 빨간 빛이 쉴 새 없이 꿈틀거린다. 심장이 뛰듯 두근대기도 한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어디 먼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불기운이 주는 나른함 때문이리라.

어느 가을 우리 가족은 캠핑을 시작했다. 한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줄기차게 짐을 꾸렸다. 소꿉놀이하는 듯한 기분도 좋았지만 밤이 이슥하도록 화롯불 옆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즐거움이 그만이었다. 아울러 불향이 밴 고기까지 먹으니 캠핑의 진수를 맛 본 것 같았다. 내가 불을 지핀 날이 있다. 대중없이 던져 넣었더니 불길은 날름거리며 서너 시간 만에 장작 한 꾸러미를 삼켜 버렸다. 나무가 그렇게 빨리 타는 줄 알지 못했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그 많은 땔감을 어떻게 구했을까.

나를 낳고 일주일 되던 날에도 어머니는 나무하러 갔다고 한다. 고등어잡이 배를 탔던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나는 가끔 아이를 키우는 내 일상에 어머니를 비추어 본다. 외롭게 해산하던 날의 쓸쓸한 마당과 집안일 농사일에 하루가 빠듯했던 나날들이 겹쳐진다. 주어진 일이 형벌인 듯 당신의 의지로는 끝낼 수 없었던 삶이었다. 하지만 땔감을 구하던 모습은 떠올리지 못한다. 지금의 생활과 동떨어져 아득하고 그 시절엔 누구나 그렇게 살았던 것이라고 흘려버린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엔 내 속을 흐르는 강이 너무 얕다고 자책한다.

불길을 따라 옛집 부엌에 들어선다. 겨울 저녁, 비가 내리고 있다. 눅눅해진 솔가리를 잡히는 대로 아궁이에 집어넣고 후우후우 불며 불을 살리고 있는 어머니. 연기에 기침을 해댄다. 궂은일에 가꾸지 못한 손등은 갈라져 있다. 비 오는 날은 더 빨리 추워지는 법이어서 마음이 바쁘다. 급하게 차려낸 늦은 밥상에 어린 삼남매와 어머니가 둘러앉는다. 찬밥 한 덩이에 목이 멘다. 저녁이 내려앉은 얼굴은 아침의 어머니보다 더 늙어 보인다. 어머니는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것은 잠이라기보다 차라리 하루가 사그라지는 의식에 가깝다. 내일이면 다시 불씨를 살려야 한다.

언제나 땔감은 어머니 몫이었다. 삭정이나 팔뚝 굵기의 나무를 모아서 이고 왔다. 굵은 것은 못하니 산에 자주 가야 했다. 해 온 나무는 마당에 풀어놓고 손도끼로 자른다. 이 또한 어머니 일이다. 바싹 마른 솔가리는 갈퀴로 긁어 지게에 져 날랐다. 싹싹 긁는 소리가 재미있어 나도 해 본 적이 있다. 갈퀴를 만져보지 못하는 날에는 고사리손으로 한 움큼 쥐다가 솔잎 끝에 찔리기도 했다. 솔가리는 불쏘시개로 썼는데 화르르 타고는 금세 사라졌다. 나무하는 것은 고되지만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다녀가신 날에야 어머니는 땔감 걱정을 잠시 접어둔다.

어머니는 나무하러 갈 때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내가 따라 다니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가자고 했던 적이 많다. 저녁답에 서둘러 한 짐 이고 올 때는 컴컴해지는 산이 무서웠다. 어슴푸레한 나무 그림자에 놀라 운 적도 있다. 어머니도 무서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일찍 결혼한 어머니는 내가 한참 클 때까지 이십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어리고 예쁠 나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메우느라 한 번도 그 나이로 살지 못했다. 그 생각을 하니 울컥 가슴 안이 뜨거워진다.

바닷바람이 무시로 불어오는 언덕 위에 살았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과 돌담이 둘러쳐진 위태로운 집이었다. 바람이 거세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파도에 쓸리는 몽돌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창호지를 바른 방문은 허술했으며 외풍이 심해 코가 시렸다. 그런데도 방바닥은 뜨끈했고 늘 따뜻한 물에 씻었다. 시금치를 데친 물에 세수하고 군불 넣을 때 끓인 물로 차례차례 목욕을 했다. 불길은 밤새 방고래를 지나갔고 부엌은 냇내로 훈기가 돌았다.

아궁이는 겨우내 타올랐다. 어머니는 밥을 짓고 남은 숯불에 생선을 구워 상에 올렸다. 객지에 있는 아버지의 고봉밥은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 부엌 한편에는 자식들 입에 들어갈 끼니만큼 땔감이 쌓인다. 밤새 방을 덥힐 온기도 쟁여 놓는다. 어머니는 하루하루 되살아나는 불씨였고 우리 삼남매의 입은 아궁이였다. 계속 채우고 지피지 않으면 식어버리는 어둠이었다. 그것을 덥히는 일은 힘들고 때로는 무서웠겠으나 어머니는 기어코 불꽃을 피워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일이 어머니 삶의 전부였던 까닭이다.

저녁 아궁이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맛이 따라온다. 밥을 지을 때 부뚜막에 앉아서 먹는 콩이나 누룽지는 고소했다. 아버지의 자반고등어도 숯불에 구워 먹으면 달았다. 어쩌다 아버지를 만나는 꿈은 인동 꽃향기처럼 달콤했다. 밤에는 순수한 군불만이 남는다. 어머니는 새벽에도 불씨를 다스려 어린 자식들의 잠을 빈틈없이 다독였다. 어머니가 지핀 불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 되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 피어났다. 그것은 내 유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꽃이었다.

숯불이 마지막 말을 하는 듯 느리게 깜빡인다. 두근거림이 잦아들면 생을 다할 것이다. 몸을 푼 지 얼마 안 되어 산에 올랐을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어머니도 어려서 모든 것이 서툴고 힘겨웠음을 마흔이 넘어서야 깨닫는다. 철없었던 나의 이십대와 누군가의 목숨을 짊어진 어머니의 그때를 생각한다. 겨울이면 피가 났던 어머니의 손등과 따뜻했던 아랫목, 그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새긴다.

오래 전 어머니의 아궁이는 사그라졌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다. 넘겨받은 그 불씨를 감싸 안는다. 나는 지금 누구의 아랫목에 불꽃을 피우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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