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김성후의 자동차로 유럽여행 2부/영원한 관광대국 이탈리아를 탐하다<12> ‘미니 국가’ 산 마리노 공화국

산 위의 요새 고산준령의 무릉도원

2019년 10월 03일(목) 17:41
산마리노 공화국의 도시와 산하.
산 정상의 지형지물을 잘 활용한 산마리노의 성벽과 성루.




2월초 어느 날 아침에 자동차로 베네치아를 떠나 적벽돌 튄타워의 도시 볼로냐, 그리고 갈대가 무성한 개천에 불과하지만 도강은 의미가 있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이어 남진하여 어둠이 깔리자 산 위의 요새같은 산마리노 공화국에 도착했다.

가파른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경사가 심한 산상까지 오를 때 왜 이렇게 높은 곳에 국가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날은 어둡고 궂은 날씨에 여독이 쌓였으니 가로등 불빛이 밝은 산상에 이르렀어도 휴식이 우선이었다. 사전답사 겸 야경도 구경하기 위해 여장을 푼 후에는 외출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오늘 할 것을 내일로 미루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음날 아침은 쾌청했다. 다만 산하와 먼 산에 이불솜 같은 구름이 군데군데 걸려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청명한 창공과 고산을 엮어 펼쳐진 비경은 황홀했다. 높은 산상의 햇살은 눈부시고 푸른 창천은 하얀 구름과 대조를 이루니 천하절경이 따로 없었다.

이 날이 그믐 며칠 전이었다면 ‘제월’이라는 비가 갠 뒤의 맑은 아침 달도 볼 뻔했다. 우리 지역의 풍영정은 광산 8경이자 영산강 8경이라서 ‘풍영야우’라 극찬받는다. 그렇듯 밤비가 그친 이국의 승경을 갑자기 맞닥뜨리니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슴이 활짝 열렸다. 천산만학(千山萬壑)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로다! 산상의 맑은 공기는 담양 소쇄원의 제월당에서 마시는 공기처럼 소쇄하였다.

여기 산꼭대기에 있는 소도시를 국가라고 하다니 평생 어떻게 생긴 나라인지 심히 궁금했었다. 소국이라고는 하지만 이탈리아의 중북부지역 동북쪽에 위치한 어엿한 공화국이다. 정식 명칭은 산 마리노공화국(Republic of San Marino)으로 티타노산의 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아드리아 해안에서 가깝다.

물론 눈으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산의 동쪽 사면에 공화국이 위치했다면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위치 때문에 겨울철 고산지역에 내린 많은 눈이 그늘진 곳에서는 잔설로 남아 있었다. 골목길 귀퉁이로 치워 놓은 눈은 푸근한 겨울 날씨일지라도 성벽 그늘 아래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 나라는 희한하다. 국경이 이태리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인데 면적은 광주 동구보다 약간 넓은 61㎢이고 인구는 3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소국 탓인지 수도 이름도 산 마리노(San Marino)이다. 국민중엔 이탈리아계의 산마리노 원주민도 더러 있다는데 외부인의 눈으로는 알 길이 없다. 하여간 이태리어를 사용하고 이태리인들이며 그래서 모두들 가톨릭 교도들이다.

소국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우리보다 소득이 거의 두 배나 높고 엄연한 의원내각제의 공화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니까 국방대책이 있겠지만 여행객의 눈으로는 군인은 커녕 경찰마저 전혀 볼 수 없었다.

단지 성채 관광지에는 대포로 무장했던 요새도 있고 길거리에는 세계 각국의 무시무시한 도검류를 공공연히 기념품으로서 여러 곳에서 팔고 있었다. 옛날에는 자주 국방을 위해 민병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기사도 정신을 중요시하여 도검류에 대한 각별한 애착문화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장도나 일본도가 금기시되고 불온하니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산마리노는 1862년 당시 왕국이었던 이태리와 우호협력조약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이다. 이 좁은 땅에 나라가 들어설 수 있는 것도 바티칸이나 마찬가지이다. 유럽인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합리적인 사고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네 상식을 뛰어넘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연합내 모든 시민이 역내에서 마음껏 돌아다니고 이주도 자유로이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전력도 수원지도 없으니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약을 몇 차례 갱신해 가면서 독립된 공화국을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규 상비군을 가지지 않지만 필요시 16세부터 55세까지의 국민을 민병대로 동원할 수 있단다. 그래서 박제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도검문화가 확산되어 있다. 전쟁으로 역사를 이어온 인류문화에서 각 나라의 특색을 각종 도검은 훌륭한 장식품이다. 이곳의 도검 장식문화는 어찌 보면 영원한 독립국으로서의 자유의지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산마리노를 여행하기 위해선 동쪽 해안휴양도시 리미니가 거점이 되지만 우린 자동차를 이용하니 안중에 없었다. 리미니에선 보통 버스로 거의 한 시간 걸려 이 도시에 올라간다는데 우린 북서쪽 더욱 먼 거리 볼로냐에서 한 시간만에 달려왔다.

다음날 소쇄한 산공기를 들이마시며 성채에 들어가니 중세시대로 여행하는 듯 싶었다. 어쩌면 산 정상 암반을 기반삼아 성벽, 망루, 성당을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을 수 있는지!

유럽에서 세 번째 소국인데 로마 황제시대에 한 석공이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곳에 신앙공동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발전하여 현 공화국의 정신적 모태가 되었고 세계대전에서도 중립을 유지하였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여 유럽연합국은 아니지만 2002년부터 자체 통화를 포기하고 유로를 사용한다. 그렇게 여행객의 불편을 덜어주니 관광입국이 아니겠는가.

모나코 다음의 소국이라도 리베르타 광장이 있고 거기에 대성당도 있다. 전면에 이색적인 대리석 조각상을 가진 푸블리코 궁전도 명소인데 지금은 시청이라도 정오경엔 근위병의 교대식도 절도있게 이루어진단다. 그래도 일개 나라이니 5유로에 기념 목적의 여권도장도 찍어준다

성채 뒤쪽의 트레킹 코스엔 남녀 산악 자전거팀까지 올라와 유럽의 자유로움을 보여주었는데 길 옆엔 연리지도 한 그루 있었다. 이태리인들에겐 동양인이 가진 애틋한 연리지 개념이 없으니 기묘한 연리지라도 길가의 단순한 나무에 불과했다. 따라서 젊은 서양 연인들이라도 우리처럼 절절한 사랑을 약속하면서 나무를 붙들고 사진을 찍을 일이 없다. 실제로 눈여겨봐도 길가 연리목은 전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동신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리베르타 광장의 산마리노 대성당.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