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DJ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었다

여성부 신설 등 여성 정책·정치 문호 확장

2019년 06월 11일(화) 19:15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지 이전에 한국 여성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여성지식인이자 여성운동가였다.

이 여사는 이화고등여학교(이화여고 전신)와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 전신), 서울대 사범대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당대의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다.

이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 여성교육자 황신덕 여사, 헌정 사상 첫 여성 당 대표(민주당)가 된 박순천 여사 등과 함께 여성운동 ‘1세대’로 활약했다.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 결성과 1952년 여성문제연구원(현 여성문제연구회) 창립을 주도했다.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원에서 상임간사와 회장을 역임하며 여성노동자 근로환경과 여성 정치의식 등을 조사하고 ‘요정 정치’ 반대 운동을 벌였다.

1959년에는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았다. YWCA에서는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에 나섰고, 남녀차별적 법조항을 수정하는 데 힘썼다.

이 여사가 핵심이 된 YWCA의 이런 활동은 1989년 남녀차별적 내용을 일부 고친 가족법 개정의 성과를 낳았고 훗날 호주제 폐지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온 후에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페미니스트’인 이 여사에게 평생에 걸쳐 받은 영향으로 김 전 대통령 역시 여성 문제에 관심이 컸기에 국민의 정부는 적극적인 여성 정책을 폈다.

여성부가 신설되고 부처마다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설치됐다.

1998년에는 가정폭력방지법이, 1999년에는 남녀차별금지법이 각각 시행되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여사는 이화여대 출신 재야인사 등을 중심으로 여성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표적인 인사는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낸 한명숙 전 총리와 2002년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장상 전 총리 서리 등이다. 박영숙 전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도 이 여사와 각별한 사이였다.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