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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웅의 흔적을 찾아서

영암 구림마을 하정웅미술관·도기박물관
영암왕인축제 맞아 다양한 장르 '명품'전
하정웅 기증품 3천8백여 점 상설전시

2019년 05월 02일(목) 14:51
동강 하정웅이 그린 ‘심미일로’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전경.
[ 전남매일=광주 ] 이보람 기자 = 월출산의 정기를 받으며 2,200년의 세월을 보낸 영암 구림마을은 왕인박사 유적지와 유채꽃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매년 봄이 되면 왕인문화축제와 함께 유채꽃축제가 개최되며, 줄지어 심어진 나무에서 만개하는 벚꽃 등은 가는 곳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월출산 주지봉 아래 자리한 덕에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선사시대 청동기와 철기문화 유입은 물론 고대 중국과 일본의 교역로 상대포가 있어 예부터 한·중·일 문화교류의 관문이었다.

곳곳에 위치한 한옥과 한옥 펜션, 도갑사, 정원명석비, 조종수 가옥 등을 비롯한 마을의 대표 문화재 또한 구림마을을 대표한다.

구림마을은 역사가 긴 만큼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왕인박사와 통일신라시대의 선승 도선국사, 고려 개국공신 최지몽 등의 훌륭한 인물을 배출했다. 또, 정운, 광준, 김치홍, 김준연 등이 나라를 위해 싸우기도 하고 문화예술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높였으며, 법무부장관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다. 그 인물 중의 한명이 현재 영암군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동강 하정웅이다.

재일교포인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영암 출신으로, 아버지대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만 했고 사업가와 평론가, 미술콜렉터로서의 인생을 살았다.

평생 미술품을 수집해오던 그는 지난 1993년 광주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부산과 대전 등에 기증해오고 있다. 2007년에는 영암군에 750여점의 소장품을 기증, 이후 20차례가 넘게 꾸준히 기증을 해왔으며 그로인해 2012년 9월 3일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이 개관하게 된다. 현재 총 3,801건의 작품을 소장중이며, 지난 2월 26일 조례에 맞춘 최종 기증서를 작성했다.

구림초등학교에서 15분 정도를 걸어가니 미술관이 보였다. 탁 트인 미술관 앞에는 아이들이 자전거와 보드를 타고 있었으며, 정자에서 쉬고 있는 마을 주민들도 볼 수 있었다. 현재 미술관이 있는 곳은 일반 집터였다고 한다. 광주 유명 서점인 충장서림 대표의 가족들이 살았던 곳으로, 집터를 구매해 미술관을 지었다.

미술관의 외경은 마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구림마을은 여전히 한옥을 비롯한 마루가 있는 옛날식 구조를 지닌 집이 많이 보였다. 거리 역시 차와 사람이 드문 한적한 시골 풍경이었다. 반면에 미술관은 한쪽 벽면이 전부 유리로 장식된 인테리어와 기와를 얹어 한옥을 연상케 하는 지붕이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자랑했다.

입구에는 하정웅이 그리고 박병희가 제작한 ‘심미일로’라는 작품이 관객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이 작품은 영암군민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단결화합하고 슬기운 지혜를 모아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층으로 구성된 미술관 1층 상설전시관에서 하정웅컬렉션 ‘명품’전을 만나볼 수 있었다.

‘명품’전에 전시된 작품은 전부 하정웅컬렉션 기증품으로 한국화, 서양화, 조각, 사진, 공예 등 여러 장르를 소화한다. 한국은 물론 북한,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아프리카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다. 미술관은 1년에 약 4번에 걸쳐 수장고에 저장된 소장품을 다양하게 전시한다.

지난 4월 3일부터 열린 이번 전시는 수집한 모든 작품을 함께 즐겨야 한다고 강조했던 하정웅의 정신을 받들어 왕인문화축제를 맞아 영암을 찾은 관객과 군민과 함께 작품을 나누고자 기획됐다.

남성 중심의 파리화단에서 여성 예술가로 활동했던 프랑스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1884~1956)의 파스텔 톤 감각적 색채를 만나볼 수 있다. 미국 사회적 사실주의 작가인 벤 샨(1989~1969)의 경제공황 당시 삶의 모습을 화폭해 담은 작품도 전시 중이다. 벤 샨은 도시의 빈민과 어린이 등을 소재로 자본주의가 남긴 부조리를 알렸다.

재일화가로는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과 곽인식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추상미술을 동양의 정신과 연관시킨 두 작가는 거칠고 파격적인 서양의 추상미술에 대항해 단순하고 반복의 과정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하정웅이 처음으로 수집한 재일화가 전화황의 대표작 ‘미륵보살’을 만나볼 수 있어 더 의미있는 전시로 꼽힌다.

하정웅의 소장품 중 일부인 도자기는 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영암도기박물관 3층 하정웅컬렉션 기념실에 전시돼 있다. 영롱한 빛을 내는 도자기들은 수억원을 호가해 눈에만 담을 수 있었다.

하정웅의 도자기 기증 또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림의 도기는 한국 최초 고화도 시유도기로 저화도, 고화도 환원소성의 생활용기와 녹갈색, 황갈색, 흑갈색 시유도기들은 도기에서 자기로의 기술발전과정을 살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도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약도기 생산지인 구림도기가마터 등 한국 시유도기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도기박물관은 도자기빚기 체험과, 전시연계 프로그램, 생활도예교실, 도예동아리 등을 통해 구림 도기의 역사성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 주민들 역시 “아이들이 체험 학습 현장으로 많이 가기도 하고, 집 근처에 이렇게 좋은 미술관이 있어 좋다”는 반응이다.

시골 마을에서 만나는 세계 거장들의 현대미술과 도자기는 마치 먼 나라에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주기도 했다. 40년 넘게 작품을 수집한 동강 하정웅의 역사와 함께 구림마을의 역사도 함께 배워갈 수 있는 좋은 문화공간이 아닐까 싶다.
/이보람 기자         이보람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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