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한민족의 뿌리 동북 3성을 찾아서-- 동양 최대 광개토왕비

강인한 고구려인 기상 품은 당당한 자태
폭 6.34m 높이 2m 무게만 37톤의 응회암 비석
일본군 장교가 1883년 발견 광개토왕비 처음 밝혀
집안시 일대 장수왕릉·고구려 통구 고분군 등 발굴

2018년 09월 13일(목) 18:53
백두산 천지는 해발 2,194m에 위치하며 북한 쪽을 조금 빌려 그곳에서 바라보는 백두산 천지가 중국쪽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고구려 전성기의 영웅 광개토대왕비는 집안시 태왕향(太王鄕) 구화리에 대왕의 기상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1982년부터 주황색 기와로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6.39m 폭 2m의 웅장한 높이에 무게만 37톤에 달하는 거대한 응회암 비석은 인공적으로 꾸미기보다는 야성 그대로를 좋아하는 고구려인들의 취향답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서기 414년에 세운 이 비석은 당시 유행하던 예서체의 글씨로, 고풍스러우면서도 힘이 넘쳐나 강인한 고구려인의 기상을 잘 보여주는데 현재 이 글씨체를 로고로 사용하는 곳도 있을 정도로 단아한 맛이 풍긴다.

비문은 잘 알아 볼 수 없으나 원래는 1,775자였지만, 탈락되었거나 금이 가고 마모돼 판독할 수 없는 글자가 141자나 된다고 한다. 이 글자들의 해석을 둘러싸고 한국, 일본, 중국, 북한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 아직도 끝이지 않을 정도로 논란이 많은 비석이기도 하다.

광개토왕비라는 것을 처음 밝혀낸 사람은 일본군 참모본부 소속의 사쿠오라는 장교다. 그는 중국에 파견된 간첩으로 북경에서 중국어를 배운 후 한의사로 가장해 만주로 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일이 있다. 일본은 장교에 불과한 사람이 비석을 해석하는데,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한문 공부를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한문은 중국보다 더 공부하고 있다. 돈황에 가면 이런 글이 있다. '돈황은 중국에 있으나, 돈황학은 일본에 있다'라는 것이 일본이 얼마나 학문적으로 앞섰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1883년에 우연히 거대한 비석을 발견하게 된다. 이 비문의 내용을 왜곡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합리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현지 중국인을 시켜 탁본을 뜨게 했는데 이것이 바로 쌍구본이라고 한다.

집안에는 곳곳에 고구려의 유적들이 있는데 '동방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장수왕릉이 있다. 5세기 초에 고구려인에 의해 건립된 적석묘이다.

이 고분은 높이 12.4m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1,600년의 세월 탓인지 무덤을 쌓아올린 돌의 틈새가 벌어져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광개토왕릉은 일본이 파헤쳐 놓은 상태로 있다.

신라는 너무 과한 값을 주고 통일했으나, 참으로 보잘 것 없는 통일이었다. 청천강 이북을 가보지 못한 통일이다. 광개토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획득한 정북한 군주이다. 어떻게 그 광활한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국내성내에 환도성터가 있는데, 환도성은 국내성의 일부이다. 졸본성은 동명성왕이, 국내성은 유리왕이, 환도성은 산상왕이 평양성은 장수왕이 천도했다.

환도산성에는 환도산성비가 있는데,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환도산성의 처음 이름은 위나암성이고, 고구려 국내성의 위성이다. 서기 3년부터 쌓기 시작했으며, 209년 산상왕이 환도성으로 옮겼다. 고구려의 수도로서 산성이 웅장했고, 담장은 돌로 쌓았으며, 문은 5군데나 있었다. 전체의 길이는 7km이었고, 성내에 궁전이 있었다. 유적으로 조망대와 저수지가 있는 데 고구려를 연구하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집안시 일대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 통구 고분군은 1만1,258기나 되는 무덤 떼를 이루고 있다. 이들 중에 발굴된 것은 1,000여기의 적석총이며 현재 보수중에 있다.

당나라에서 고구려를 수 차례 공격해 결국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 과정에 고구려민이 무려 4만 4,000명이나 되었다. 연개소문의 손자 천헌성(泉獻誠)은 무예가 출중하여 우위대장군으로 수여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유명한 장군으로 고선지 장군, 산동성의 이정기, 이사도 등을 들 수 있다.

통화에서 백두산을 갈 수 있다. 옛날에는 통화에서 밤 기차를 타고 이도백하에서 내려 백두산을 볼 수 있었다. 통화에서 백산시를 거쳐 올라간다. 요즈음은 북경 등에서 백두산에 있는 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는 중국인들도 많다.

연길에서 백두산 올라가는 백두산의 북파를 볼 수 있고, 통화에서 올라가는 길을 서파라 한다. 금년부터 남파로 올라가는 길이 열렸다. 남파는 북한땅을 거쳐 가는 곳이다.

통화에서 3시간 정도 가면 '금강계곡'이 나온다. 금강계곡을 보는 데 1km는 걸어가야 하는데, 바위와 소나무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중국에서는 장가계나 다른 협곡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천지까지 올라갈 수 있다.

백두산 입구에서 약 50분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면 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걸어가야 한다. 약 900m이며, 계단은 1,442개이다. 빠른 사람들은 20분 정도, 보통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며, 정상에 오르면 북한과 중국간의 경계비가 나온다. 북한 쪽을 조금 빌려 그곳에서 바라보는 백두산 천지는 중국쪽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그런데 금년부터 북한이 막아버렸다.

백두산 오르면서 시를 생각했다. 백두산 천지는 2,400m 정도에 있는데, 이보다 더 높은 호수는 티베트에 있는 남초호는 해발 4,700m에 있다.

백두산

백두산은 / 우리 민족의 산/ 누구나 가 보고 싶어 한다// 백두산은/반가운 낯으로/ 우리를 맞이하기도 하고/ 눈과/ 비바람으로/ 우리를 매몰차게 막기도 한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과 함께/ 수천년 동안/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산/ 오늘도, 천지를 향하여/ 뚜벅 뚜벅 걸어 올라간다.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