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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후 교수의 자동차로 유럽여행<19> 네덜란드 아펜도른

북유럽을 남하질주해 네덜란드의 오아시스에 깃들다

2018년 06월 21일(목) 18:28
네덜란드 아펜도른 왕궁내 숲.
드디어 스웨덴을 떠나 유럽 본토에 들어서는 일정을 맞게 되었다. 스웨덴은 북유럽의 복지국가로서 세계최상이지만 환경적이나 정치·인권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세계 제일의 선진국가로서 노벨과 노벨평화상의 나라로 유명하다.

드디어 세계평화주의자인 노벨과 북유럽의 멋쟁이 아가씨들의 도시, 스톡홀름을 자정이 가까워서야 떠났지만 노을이 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북유럽인들은 여름엔 백야로 인해 수면부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기는 부러운 풍속을 자랑한다.

프랑스 동부지역 알프스산맥 서쪽 자락 휴게소.






외스테르말름은 스톡흘름의 신시가지로서 디자인 구역이라고 했는데 이곳이라야 숙박요금에 여유가 있었다. 일박을 한 후 부지런히 숲과 호수가 널려 있는 평지를 질주하여 처음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건너갔던 헬싱보리로 되돌아 왔다.

북상하던 길에 관광했던 햄릿의 성, 크론보그는 며칠만에 재방문할 대상이 아니었다. 급히 네덜란드의 아펜도른까지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헬싱보리에서 덴마크의 헬싱괴르는 카페리를 이용했는데 도선료는 380 덴마크 크론을 카드로 지불했다. 원래는 스웨덴 제2의 도시인 말뫼를 거쳐 코펜하겐을 통과할 작정이었지만 일행은 빨리 네덜란드에 가고 싶어 졸랐다. 말뫼는 스톡홀름과 어떻게 분위기와 경관이 다른지 관심사항이었지만 세상사 모든 게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코펜하겐이 위치한 셀란 섬에서 덴마크반도로 우회하지 않고 E47 도로를 남하하여 다시 도선을 통해 독일령에 입경했다. 이후 지치도록 차를 몰아 밤 11시가 되어서야 일행의 딸 부부가 사는 아펜도른에 도착했다. 스톡흘름에서 아펜도른까지 약 1,300㎞를 하룻만에 주파한 셈이었다.

7월 15일의 아펜도른은 밤기온이 19°로서 선선하고 쾌적했다. 독일에서부터는 독일교통표지판으로 도로번호가 바뀌었지만 네덜란드에 들어서자 다시 북유럽식의 E30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펜도른은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 이어 주요 도시중 하나지만 참으로 목가적이고 한가했다. 방문지의 일행친척 아파트도 2층에 불과하고 어디에도 고층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높은 산이 없어 농경지를 이루고 있는데 숲이 어디에나 우거져 있었다. 특히 대규모 공원의 녹지와 체육시설은 잘 갖춰져 있었다. 그 곳엔 한 때 우리나라 남도지방 어디에나 흔하던 높다란 양버들도 흔히 눈에 띄었다. 반가운 나무라서 그 이파리를 따서 어릴 적 추억속의 잎 생김새가 포플라 나무와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살펴보기도 하였다.

다음 날은 네덜란드 왕궁중 별궁으로 사용되는 곳을 관광했다. 왕궁의 정원은 거대한 나무들이 그 연륜을 자랑하고 있어 혁명이 휩쓸고 간 곳이 아니고 역사가 이어져 온 그 나라의 역사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왕궁이 아닌 다른 건축물은 검소한 규모로 보아 평범한 시민들의 보금자리인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왕궁과 서민주택이 공존하고 경계가 없는 점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오랜 역사를 가늠할 수 있었다. 왕은 상징적인 존재로서 존경을 받고 있으니 왕국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적 전통에 대한 긍지를 갖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아펜도른에서 일요일을 맞아 네덜란드의 교회도 가보았다. 그 교회는 목사가 따로 있지 않고 신도중에서 설교를 하는 점이 특이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이를 제도적으로 유지해야 하기 위해서 방어벽을 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일요일 하루를 푹 쉰 다음날 우리는 일행의 가족까지 대동하고 또 먼길을 나섰다. 처음엔 가까운 영국을 가기로 결정했지만 밤새 헤아려본 결과 좌측통행은 피하는 게 상수인 듯 싶었다. 동반자도 필자가 무척 졸릴 때는 간혹 운전을 해줘야 하는데 그는 일본에서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없다고 했다. 필자도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프랑스 니스와 칸을 거쳐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기로 즉시 변경했다. 필자는 최초의 장기 유럽자동차여행이니만치 한 치의 사고라도 있어선 안 되었다. 네덜란드를 떠나니 곧 벨기에가 나타났고 룩셈부르크는 금방 지나갔다. 파리 동부지역을 남하하여 내륙 대도시 리옹을 거친 다음 론 알프스지역으로 약간 돌아갔다. 알프스산맥 서부지역 끝자락도 설봉이 보이고 장엄한 산세는 장관이었다. 다음 편에는 휴양도시 니스와 영화도시 칸을 다룬다.
/동신대 교수·호텔관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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