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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고전은 아이디어의 수원지다-형식지·암묵지에 대하여(2)
2018년 03월 22일(목) 17:19
동양은 근대 이전까지 문화적으로 서양을 앞섰다. '지식'에 대한 객관적 인식 역시 서양보다 앞서 존재했다.

도가의 장자에서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귀하게 여긴다. 책은 말을 글로 써놓은 것이고, 그 말에는 귀한 것이 있다. 말이 귀한 것은 바로 그 말에 뜻이 있기 때문이고 뜻에는 뒤따르는 바가 있다. 그런데 뜻에 뒤따르는 것은 말로 다 전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만을 귀중히 여겨 책을 전한다 -중략-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형체와 색깔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소리뿐이다. 안타깝다. 세상 사람들이 형체와 색깔, 이름과 소리만으로 저 깨달음의 세계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형체와 색깔, 이름과 소리만으로는 저 깨달음의 세계를 충분히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는 자는 말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말로 설명을 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것을 모르고 있을까?(장자외편, 2012, 홍신문화사, 188면)라고 말하고 있다.



말과 글에는 한계가 있어



바로 착륜지의(수레바퀴를 깎는 느낌)라는 고사성어의 연원이 되는 사례에서 나온 내용이다. 제나라 환공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옆에서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던 목수가 환공에게 그 책의 내용은 결국 '옛 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한 것'(앞책 188면)이라 하면서, 자신이 수레바퀴의 바퀴통을 깎을 때 헐겁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적절한 크기로 깎아야 하는데 그것은 '손으로 터득하고 느낌으로 알 수 있을 뿐 말로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내용의 사례다.

'명시지', 즉 '말'이나 '글'로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과 함께, 그 한계 너머는 '암묵지'가 채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장자와 비슷한 시기를 산 유가의 맹자 역시 같은 의미의 말을 하고 있다. '재장과 윤여가 다른 사람에게 나무를 깎고 바퀴를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지만, 그로 하여금 공교하게 할 수는 없다'(맹자2권, 2009, 학민문화사, 527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윤순이란 사람은 '규구는 방법이니 남에게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을 익히는 것은 배우는 상대방 본인에게 달려 있으니 가르치는 이가 아무리 대단한 장인이라 할지라도 이는 어찌할 수 없다. 기본적인 배움은 말로 전할 수 있으나, 통달하는 것은 반드시 본인 스스로의 느낌으로 깨달아야 한다'(맹자2권, 2009, 학민문화사, 527면)라고 해설하고 있다.

M. 폴러니 보다는 2,300년, 데카르트보다는 2,000년 앞서 '명시지'와 '암묵지'의 구분 그리고 그 각각에 대한 명백한 의미 정의가 동양에서는 이미 존재했었다.



높은 수준의 지식은 '암묵지'



한고조 유방의 손자 유안이 정리한 '회남자'에서는 '선왕이 쓴 책을 읽는 것은 그 말을 직접 듣는 것만 못하고, 그 말을 직접 듣는 것은 그 말의 원인을 깨닫는 것만 못하다. 또한 그 말의 원인을 깨달은 자가 그것을 말로 옮기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입으로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유안 편자, 회남자中, 2013, 명문당, 237면)라고 말했다. 명시지의 한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면서, 동시에 도는 말로 전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즉 진정한 깨달음, 높은 수준의 지식은 명시지가 아닌 암묵지라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장자, 맹자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때 장자와 맹자 이상으로 암묵지의 절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긴 명시지와 암묵지의 공식 창안자인 M. 폴러니도 지식을 둘로 구분하면서 암묵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암묵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간 행동의 기초가 되는 지식은 바로 암묵지이기 때문에 암묵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논리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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