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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세입자들 <시인 민슬기>
2017년 08월 07일(월) 00:00
남의 집에 구멍을 빌려 지으면서 시작된 식탐이다
무엇이든 훔쳐야 직성이 풀리는 업보다
어둠을 갉아먹으며 사람들의 은밀한 말소리를 귀담아듣는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으므로 속절없이 칸칸이 들어찬 어둠을 헤맨다
침묵이 답이라 믿으며 썩은 음식물 냄새로 묵묵히 이동할 뿐이다
이따금씩 고양이 소리에 눈을 번뜩이며 살기를 맛본다
눈알은 갖고 있으나 몽유하는 혼령처럼 스스로를 볼 수 없다
끊임없이 헤매도 변하지 않는 역마살
어디서 시작되고 끝은 어디쯤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풀벌레가 뱉어내는 소리는 비명 같다
가느다란 수염은 한껏 거추장스러운 자존심이다
진술실의 조명처럼 가로등은 꺼질 줄 모르고
쥐가 가는 길을 탐색한다
달이 한 겹씩 탈피를 해도 여전히 같은 곳을 뒹굴듯
보이지 않는 틀 속에서 질주한다
치부를 드러낸 채 무방비 상태로 널브러진 쓰레기봉투 위에
까닭 없이 올라서 보기도 하며 허무를 베어먹는다
어쩌면 도사리고 있는 덫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도는
시한부 목숨일지도, 긴 꼬리로 지나온 길을 곱씹으며
막다른 길로 질주한다, 막다른 길이 집이다

민슬기(제18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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