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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 간직한 그곳에 우리들 이웃 있었다”
2015년 12월 31일(목) 00:00


소록도 한센인 100년 ‘애환’ 여전
한때 6천여명…현재 500여명 생활
치료용칼 등 유품 등록문화재 추진

소록도는 면적 3.79㎢의 작은 섬이다. 섬 모양이 아기 사슴을 닮았다고 해 ‘소록(小鹿)’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소록도 입구의 푸른 바다와 소나무 가로수 길은 한 폭의 그림 같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전부는 아니다.
소록도병원 입구에 세워진 84인의 ‘애환의 추모비’에서부터 역사적 현장이 고스란히 담긴 감금실, 검시실, 중앙공원으로 향하는 벽화, 소록도 벽돌공장터까지 한센인들의 피와 한이 서려 있다.
소록도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자혜의원(국립소록도병원 전신)이 들어선 이후 한센인의 집단 생활시설이 됐다. 한때 6,254명(1947년)에 달했던 소록도 한센인은 12월 현재 551명만이 생활하고 있다.
국립 소록도 병원은 오는 5월 17일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소록도의 한
나무 하나하나부터 중앙공원까지, 소록도는 한센인의 피와 땀으로 일군 곳이다.
소록도 병원으로 향하는 산책로는 통곡의 장소였다.
병원에서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격리해 생활하게 했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경계선 도로에서 한 달에 단 한 번 면회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눠 철조망을 쳤고, 도로를 양옆으로 갈라선 채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다 보니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고 불렸다.
산책로를 따라 병원 입구에 들어서면 소록도에서 자치권을 요구하다 학살당한 원생 84명의 추모비가 있다. 당시 원생들은 1945년 8월 해방을 맞아 병원 측에 자치권을 요구했고 병원 직원들과 갈등을 빚다 죽임을 당했다. 이후 56년만인 2001년 유골 발굴 작업을 거쳐 학살을 당한 그 자리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중앙공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소록도의 과거·현재·미래가 담긴 벽화가 있다. 이곳에는 500여 명에 달하는 주민과 병원 관계자의 얼굴이 담겼다. 그 길을 따라가면 검시실(등록문화재 66호)과 감금실(등록문화재 67호)이 있다.
1935년 만들어진 감금실은 한센인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곳이다.
일제가 만든 ‘조선나예방령’에 따라 소록도에 격리 수용된 한센인은 당시 소록도 원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감금실에 끌려가 금식이나 체벌 등의 징벌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수호 원장시절 일이 힘들어 도망치다 잡혀서 감금됐고, 바닷물에 빠져 죽기도 했다.
감금이 끝난 뒤에는 강제단종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검시실은 감금실 바로 옆에 있다.
검시실에서는 시신해부와 정관수술이 이뤄졌다.
한센인은 총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병으로 죽고 두 번째 죽음은 이곳 검시실에서의 해부다. 당시 장기를 보관했다던 장과 침상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이후 만령당(납골탑) 안치가 세 번째 죽음이다.
소록도에는 화장시설이 있어 시신을 섬에서 화장한다. 화장한 유골은 유가족이 찾아가지 않는 경우 모두 만령당에 안치한다. 10년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는 유골은 봉분에 묻는다. 하지만 유골을 찾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검시실 또 다른 공간에는 정관수술을 했던 수술대와 세척실이 있다.
한센인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를 강제적으로 지워야 했고 단종수술을 해야만 부부가 함께 살 수 있었다.
강제낙태와 단종수술은 일제 1937년부터 한센인에게 강제로 시행됐다. 정부는 해방 이후 이를 폐지했다가 1948년부터 소록도 내 부부 동거자들에게 다시 시행해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감금실은 H구조로 남자와 여자를 분리해 가뒀다. 녹슨 창살과 낡은 건물 감금실 안 푸세식 변기 등이 그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했다. 나무부터 잔디까지 한센인들이 일군 중앙공원 내부에도 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새겨진 동상, 한센인들이 자신을 참배하도록 하기 위해 세운 수호 동상에서도 한센인들의 한이 고스란히 배여있다. 소록도에서는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오마도 간척공사, 강제격리 등으로 인권침해가 지속됐다.
현재 소록도 거주 한센인 평균 연령 74세,청춘을 소록도에서 보낸 한센인들은 어느덧 노년을 맞았다.

◇편견 사라져야
지난 1968년 한센병으로 소록도병원에 입원한 황요한씨(세례명·66)는 “사회인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씨는 음성판정을 받은 1976년 사회로 복귀했지만, 지난 2010년 교통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게 되면서 소록도 병원을 다시 찾았다.
황씨는 현재 소록도 자치원생의 간부로 활동하며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황씨는 “우리를 지칭하는 말로 한센인, 나환자 등이 있다”면서 “감기가 완치되면 음성 감기환자라고 부르지 않지만 우리는 음성나환자라는 말이 따라붙어 사회적으로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병이 나으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만 우리는 한센 이라는 단어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 “ 편견을 갖고 우리를 바라봐왔던 시각으로 인해 아직도 후유증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황씨는 “첫째를 제외한 내 새끼들조차 내가 한센병에 걸려 이곳 소록도병원에 있는지 모른다”면서 “한번은 내 며느리가 어디서 지내느냐고 묻는 안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황씨는 “우리에게도 신이 창조한 침범할 수 없는 인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면서 “우리를 볼 때, 동정심과 구제받을 대상도 아닌 서슴없이 어울릴 수 있는 우리의 이웃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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