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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1인 기업 박정수씨

“구두 만지며 세상 살아가는 지혜 배웁니다”

시계수리→자개공→좌판→토큰판매→구두수선
신체장애 딛고 나만의 일터서 행복·꿈 키워

2013년 01월 01일(화) 00:00
서구 동천동 한두레마트 앞 노상 1평 남짓 컨테이너 공간.
‘에덴구두·신발병원’이라 이름이 내걸린 이 곳은 박정수(57)씨의 희망찬 삶의 터전이다. 꼼꼼한 수선 솜씨에 서비스는 물론이고 주민들의 말동무에 이르기까지 박씨의 평판은 이곳 동천동을 넘어 멀리 신창, 일곡, 월곡동까지 자자하다.
구두수선 일에 솜씨 말고 무슨 서비스가 필요할까 싶지만 박씨의 긍정적 마인드와 남다른 직업의식은 직장 일에 지치고 사업에 좌절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만 하다. 박씨의 작은 일터에서 그를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3살 때 소아마비가 찾아왔다. 13살부터는 목발을 짚어야 했다. 지체장애 2급.
곡성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시계 수리와 도장 파는 일을 배웠다. 솜씨가 제법 좋았다. 20년 가까이 시계, 도장 일을 하면서 평생 업이 될 줄 알았다. 영리하고 성격이 밝아 사람도 많이 따랐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기 시작했다. 도장 대신 싸인이 통용되고, 시계 역할을 휴대폰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1988년 광주로 옮겨 새롭게 자개 일을 배웠다. 생소한 일이었지만 손재주는 자개에서도 빛을 발했다. 직업을 바꾸길 잘했다 싶었다. 한 달에 100만원은 벌었으니 당시 수입으로서는 남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이 또 바뀌기 시작했다.
자개 일을 한 지 2년만에 가구는 티크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모든 가구점의 가구가 자개 대신 티크로 바뀌면서 쓸모없는 기술이 되버린 자개 일을 접어야 했다.
다시 시작이었다. 이번엔 수세미, 고무장갑 등 식당용품을 공급하는 일을 시작했다. 열심히 했지만 이 분야는 힘이 들었다. 일을 접고 노상판매를 시작했다. 노상에서 인형, 양말 등을 팔았다. 다리가 불편한 까닭에 한계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그러는 사이 1996년 늦은 나이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부인은 자신보다 더 불편한 몸이었지만 성격은 누구보다 밝고 쾌활했다.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교회에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자원봉사도 열심히 했다.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그 점에 반했다고 그는 말했다.
가정을 꾸린 그는 1999년 문흥동에서 작은 컨테이너를 얻어 토큰과 복권판매를 시작했다. 항상 웃는 낯에 신속한 서비스를 해 주는 까닭에 단골손님이 많았다.
장사도 제법 되는 편이라 안정적으로 정착하나 싶었지만 다시 한번 시대의 부침을 겪어야 했다. 버스토큰은 교통카드로, 복권은 로또로 넘어간 것이다. 토큰판매 마진은 2%였는데 교통카드로 넘어가면서 0.5%로 떨어졌고, 로또열풍으로 일반 복권 열기가 시든 가운데 로또복권은 사업자 허가가 나와야만 판매할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 구두수선을 해 보라고 권유했다.
구두…. 신체의 가장 밑부분인 발을 만진다는 것, 지저분 하기도 하고 자존심에 걸리는 일이라 생각돼 맘조차 먹지 않았다. 구두를 만지는 일은 그야말로 밑바닥 일이라 생각됐다.
그러던 것이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남의 발을 만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겸손의 자세로 믿음과 신뢰의 마음을 전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또한 구두는 평생 벗을 일이 없으니 시대흐름이 아무리 변화무쌍 해도 구두수선 일을 놓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2004년부터 구두 일을 시작했다. 용봉동에서 시작해 2년후 동천동으로 옮겨와 지금의 자리에 ‘에덴구두·신발병원’으로 둥지를 틀었다. 운 좋게도 교회의 지인이 컨테이너도 마련해주고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정기적으로 외부청소도 해 주고 있다.
“황토흙이나 껌 등은 기본이구요, 변이 묻어있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지저분한 구두를 만진다는 게 쉽지는 않더군요. 어떻게 하면 표정변화 없이 만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기왕 할 바엔 냄새를 향기로 생각하자, 내 손으로 세상을 좀 더 깨끗하게 한다 생각키로 맘 먹었지요.”
구두 수선을 비롯해 우산·양산·가방·지퍼 수선 등을 하는 그의 가게는 하루종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선을 위해, 지나가다 안부를 묻기 위해, 간식을 나눠먹기 위해 오전 9시부터 가게문을 닫는 7시 30분까지 이웃들의 발걸음이 총총 이어진다.
“여기에 들어오신 손님은 1,000원어치든 1만원 어치든 신발이 깨끗해져서 나가야 한다는게 제 신념입니다. 아직 쓸 만한 부분은 다음에 하셔도 된다, 아직 몇 달은 더 쓸 만 하다 말해 드리면 더 기분좋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의 단골손님 중에는 특히 여성들이 많다. 단순히 구두를 닦는 일 외에도 굽이 까지거나 칠이 벗겨진 부분까지 깔끔히 서비스 해주기 때문. 특히 약한 구두 바닥도 그의 손길을 거친 후 2~3년은 수명을 연장시키니 여성 손님들의 소개가 이어진단다.
배움이 짧은 그이기에 신발수선에 관한 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가죽과 구두 트렌드에 대해서도 짬짬히 공부하고 있다. 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의 공부방 강의를 위해 신문과 TV, 인터넷 등을 골고루 탐독하는 그는 역사, 상식도 만만치 않게 궤뚫고 있다.
“10~20분 고객과 마주하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져야죠. 대화를 통해서도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골프, 음악, 영화, 여행, 세계지리 등 어떤 주제에도 응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얻었어요. 손님이 내놓은 화젯거리에 응수해 드리면 아주 좋아하십니다.”
그는 구두수선 일이 좋다. 장애가 있어도 걸림돌이 없고 아플 땐 쉴 수 있고 비오고 추워도 가림공간이 있으며 좋은 이웃들이 있어 수시로 찾아주는 까닭이다.
그는 매사에 부러울 게 없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수시로 음료도 가져다 주고 간식거리도 가져와 나눠 먹는다.
“구두를 수선하며 세상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배웠다”고 그는 말했다. 80만원짜리 구두를 맡기고도 500원을 깎아 달라며 3,000원만 던져주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꼬깃꼬깃 쌈짓돈 5,000원을 건네주며 거스름돈 2,000원을 한사코 받지않고 그냥 가는 백발의 할머니도 있는 것이 세상이다.
“세상이 발전하면 못 배운 사람이 살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밑천은 없는데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하니까요. 많은 길을 돌아돌아 왔지만 그래도 이 몸에 출퇴근하는 내 일이 있고 이웃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릅니다. 구두를 깨끗하게 해 세상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나만의 자부심과, 나의 힘으로 공부방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공간을 주고 희망을 나눠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세상에 따뜻한 온기가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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