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북구 용봉동 용문경로당에 정수기 한 대가 들어섰다.
어르신들은 “날씨는 덥고 물을 찾는 사람은 많은데 먹을 물을 끓이기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던 차에 정수기가 생겨 편하게 됐다”며 반겼다.
정수기는 이 곳 용문경로당 뿐 아니라 5월 한 달간 용봉동 내 32개 경로당 중 정수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19개 경로당을 포함해 북구에서만 22번째 지원되고 있었다.
향토유통업체 영암(Y)마트 김성진 대표(44)가 경로당 정수기 후원의 숨은 주인공이었다.

김성진 대표는 “렌탈로 설치되는 거라 한 번에 큰 돈이 드는 건 아닙니다. 매월 렌탈비만 내면 되니까요”라고 말했지만 북구지역을 포함해 광주시내 영암마트가 입점해 있는 인근지역 경로당까지 정수기 후원은 벌써 60곳을 넘겼다고 정강학 영암마트 용봉점장은 귀띔했다.
김 대표는 “맨주먹에 몸뚱아리만 갖고 시작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먹고 살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한 뒤, “지역에서 돈을 벌었으면 당연히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민들 도움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나누는 게 당연하며, 밥도 혼자 먹는 밥보다 같이 먹는 밥이 맛있는 법이다”고 몸을 낮췄다.
수수한 외모, 소탈한 성격의 그는 과일행상으로 시작해 지역에서 20년간 유통업으로 잔뼈가 굵은 향토유통업체 대표다.
북구 용봉동에 8평 점포로 시작해 어느덧 42호점을 개점시킬 정도로 회사를 키운 김 대표의 경영철학은 간결했다. ‘초심 잃지 않기, 번만큼 나누기’다.
영암마트의 이름이 지역주민들에게 친근한 이유도 수익의 일부를 대가없이 지역사회에 꾸준히 환원해오고 있는 김 대표의 나눔경영 때문이다.
정강학 영암마트 용봉점장은 “매년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지역 내 경로당에 꾸준한 후원을 해 온 김 대표가 뭐 다른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경로당에 알아보던 중 최근 광주시에서 수돗물 사고가 났었다”며 “어르신들이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정수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정수기가 없는 경로당에 모두 설치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용봉지역 경로당 모임인 ‘용경회’ 김성태 회장은 “매일 물을 끓여 마셨는데 정수기가 설치돼 끓일 필요도 없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며 “노인들이 고마운 마음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도 안 쓰는데 마트 장사해서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도움을 줘 매번 고맙기만 하다”고 전했다.
김 대표가 매월 후원하고 있는 업체만도 아름다운가게, 엠마우스복지관, 세실리아요양원, 북구자원봉사센터, 광주시민센터 등 20여 곳에 이른다.
지난 5월 말 문을 연 영암마트 용두점 2층에는 저소득 맞벌이부부 자녀의 보육공간인 ‘새싹 돌봄센터’가 함께 문을 열었다.
이 곳에 김 대표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무료로 내주고 에어컨 등 필요한 기자재까지 갖춰 놨다.
새싹돌봄센터 뿐만이 아니다. 신나는 교실, 아이숲 도서관, 바람개비 도서관, 목련지역아동센터 등 지역 내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을 조건없이 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해줄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돌봄공간과 도서관 후원을 생각하게 됐다”는 그는 한사코 “대단한 일이 아니다”며 손을 내저었다.
김 대표의 나눔의 삶은 20여년 전 광주 인근 담양, 송정리, 나주 등으로 노점행상을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 오는 날엔 장사가 안돼 재고가 많이 남았어요. 과일 중에서도 딸기 등은 3일 내에 처분해야 싱싱한 상태로 팔 수 있는데 못 팔면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창평의 온누리재활원에 팔고 남은 과일을 두고 오는 발걸음이 그렇게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소소한 나눔이 어느덧 지금에 와 후원규모만도 연 2억원이 넘고 매년 5,000만원 상당의 야채와 과일을 사회복지시설에 후원하기에 이르렀다.
김 대표는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그 시절 근면성실함을 늦추지 않는다. 그의 하루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새벽 4시면 집에서 나와 공판장으로 갑니다. 경매로 과일과 채소를 떼어 오지요. 15년 전 결혼해서 지금까지 딱 하루 쉬었어요. 결혼식 날 당일에요. 신혼여행도 제주도 감귤농장에 가서 산지거래를 했으니까요.”
배달 일손이 달릴 때면 지금도 오토바이에 올라타 직접 배달에 나선다는 김 대표는 “노점상 때 내 꿈은 조그만 가게 한 칸, 집 한 칸, 현금 1억원이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가게를 갖고 있는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게는 문을 열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베풀면 배가 되어 돌아온다. 가을에 수확하려면 봄에 씨앗을 뿌려야 하듯 나눔의 씨앗은 큰 수확을 안겨 준다는 것을 배웠다”는 그는 “50세가 넘으면 실버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소년소녀가장에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장학재단 설립도 그가 꼭 이루고 싶은 꿈 중 하나다.
올해 영암마트 50호점 개점을 목표로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부터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직거래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 트럭에 오르는 김 대표의 성실한 발걸음은 후원이나 나눔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김 대표는 “시작할 때의 부푼 꿈을 잃지 않는 것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그렇게 성실히 노력할 때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며 “모든 사람들이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양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