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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신 상태 참혹…행불자, 가족 품으로 돌아갔으면"

[오월 그날, 못다한 이야기] ⑤ 최귀연 5·18 공로자회 전 상임감사
상무관 시신 목격자로 도피 생활
계엄군 구타에 한쪽 눈 시력 잃어
“피해 보상 위해 진실규명 필요”

2024년 05월 28일(화) 18:52
5·18공로자회 최귀연 전 상임감사
“그때 봤던 시신들은 아직도 꿈에 나올 정도로 참혹했어요. 시신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최귀연 5·18 공로자회 전 상임감사는 1980년 5월 17일부터 경찰들의 보급품을 운반하며 옛 전남도청에서 당시 상황을 지켜봤다.

1978년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 담양으로 내려온 최씨는 이듬해인 1979년부터 담양화물에 취직해 화물차를 몰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는 한 연락을 받고 5·18민주화운동 현장에 발을 딛게 됐다.

최씨는 “오전 업무를 시작하기 전 담양경찰서에서 광주로 경찰들을 운반해 줄 화물차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며 “경찰서에 도착하니 방패와 진압봉 등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을 싣고 광주로 들어간 최씨는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시위 중인 것을 목격했다.

경찰들을 도청에 내려주고 안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들은 그는 민원실에서 시위대와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는 것을 지켜봤다.

최씨는 “시민들은 군·경과 대치하면서 돌을 던졌고, 군·경은 이들이 전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루탄을 쏴댔다”고 말했다.

최씨는 다음 날인 18일 경찰들의 식량들과 장비를 운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날부터 군인과 경찰이 도청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공수부대의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그는 “공수부대들이 곤봉을 들고 시민들을 폭행하는 현장을 지켜봤다”며 “시민들은 전신에서 피를 흘렸고 의식을 잃은 시위대를 차에 내동댕이치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5월 19일 오후에는 “사람이 죽어 들어왔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점심을 먹던 그는 직접 확인하기 위해 상무관으로 이동했다.

최씨는 “상무관에 도착하니 5~6구의 시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한 학생이 시신에 비닐을 둘러 관에 넣으며 태극기를 덮었다”며 “리어카에도 머리 안이 다 보일 정도로 다친 남성의 시신과 가슴 한쪽을 도려낸 듯한 모습의 여성 시신이 있었는데 아직도 꿈에 나올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최씨는 이어 “시신을 수습하고 있던 그때 계엄군이 들이닥쳐 상무관 인근에 있던 시민들을 구타하고 차량에 실어 연행해갔다”며 “정신을 차려보니 군인들이 단숨에 둘러싸 폭행하기 시작했고, 같이 시신을 보고 있던 경찰이 직원이라고 말하며 말렸지만, 이미 몸은 가눌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계엄군의 구타에 만신창이가 된 그는 함께 있던 경찰의 도움을 받아 도청으로 들어갔고, 부상이 심각하자 경찰의 인솔하에 담양으로 돌아갔다.

5월 20일 부상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집에 누워있다가 회사에서 한 통의 연락을 받게 됐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전날 한쪽 가슴이 잘려나간 시신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최씨를 잡기 위해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회사에서 나를 찾는 사람들이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뉴스에서는 상무관에서 본 시신에 대해 유언비어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수원과 서울 등 전 지역을 돌며 숨었던 그는 한 달여만에 집에 돌아갔지만, 가족의 환영이 아닌 비난과 원망을 받았다.

그는 “집에 돌아왔을 때 마당과 집은 엉망인 상태였고 가족들은 나를 보며 ‘왜 살아왔냐’고 원망했다”며 “알고 보니 나를 잡기 위한 국보위 요원들이 계속 가족들에게 ‘내가 어디있냐’며 추궁했고, 동생은 나로 오해받아 끌려갈 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도피하는 동안 다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군인들에게 폭행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분노조절장애 판정을 받아 아직도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최씨는 “5·18 보상을 받기 위해 진술을 했지만, 5월 19일에는 시신이 없었다며 거짓된 주장이라고 신청이 받아지지 않다가 6차 보상 때 진술이 인정돼 피해자로 인정됐다”며 “제대로 규명이 되지 않아 보상받지 못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상무관에서 봤던 여성 시신의 경우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행방불명된 시신들을 찾아 더 늦지 않게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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