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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왜곡 기록 그대로 적시…'또다른 역사 왜곡' 걱정된다

[위기·기회의 갈림길 5·18] ④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
계엄군 옛 전남도청 발포 자위권 주장
‘피습 시점’ 엇갈린 진술에 결론 못내
일관성·체계성 없어 ‘진상규명’ 불능

2024년 05월 21일(화) 18:12
지난 3월 열린 5·18조사위보고서 평가 및 기자간담회/전남매일 DB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북한군 개입설, 신군부 자위권 발동 등 5·18 역사왜곡 논리가 근거 없는 허위사실로 밝혀졌다.

하지만 ‘무기고 피습 사건’의 경우 5·18 당시 왜곡된 기록들이 조사결과보고서에 실린데다 시위대 무장 시점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해 또 다른 역사 왜곡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에 따르면 5·18 당시 광주·전남 일원에서 총기 5,003정, 수류탄 552발, 실탄 28만 9,400여 발 등이 피탈됐다.

무기들이 주로 피탈된 시기는 1980년 5월 21일부터 23일 사이다.

조사위는 정확한 무기고 피탈 시점을 규명해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와 극우인사들의 북한군 개입설 주장의 진위를 밝혀내고자 했다.

계엄군은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발생했던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가 ‘시민의 선제무장과 공격에 따른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했으며, 지난 2014년 지만원은 ‘5·18분석 최종보고서’에 북한특수군이 전남지역 무기고 위치를 확인, 전문적 수법으로 탈취했다고 왜곡했다.

앞서 나주 금성동파출소의 경우 지난 1988년 열린 광주특위 국회청문회에서 1980년 5월 21일 오전 11시에 피탈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1997년 검찰수사 발표에는 21일 오후 1시 하남파출소에서 최초 무기 피탈이 발생했다고 봤고, 보안사 자료인 ‘전남도경 상황일지’에는 나주 남평지서 오전 9시, 반남지서 오전 8시 등 엇갈린 주장들이 나오면서 정확한 시점을 결국 특정하지 못했다.

조사위는 △무기고 위치 사전파악 및 동시 습격 여부 △전문적 수법의 무기탈취 △무기 피탈 시간 왜곡 △무기고 피습관련자에 대한 법적 평가의 변화 등으로 조사 과제를 나눴다.

조사위는 당시 작전·정보부대 등 67명의 대인조사와 나주·화순에 위치한 무기가 피탈된 경찰서와 파출소 등 9곳의 실지조사를 벌인 결과, 반남지서 5월 21일 오후 5시 40분께, 남평지서 오후 1시 30분께, 금성동파출소 오후 2시께로 피탈 시간을 확인했다.

전남 일원에서는 화순(오후 1시 25분)과 나주(오후 1시 30분), 영암(오후 2시 30분), 해남(오후 4시)에서 무기 피탈이 발생했는데, 이는 광주지역과 인접한 거리순에 따라 피습된 것으로 파악됐다.

시간대를 보면 지만원의 ‘북한특수군이 계엄군 차량을 탈취 후 동 시간대 무기고를 피습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름이 확인됐고, 오후 1시 전남도청 발포 이전에 시위대의 선제 무장 여부도 가능성이 낮았다.

‘기소자 총명부’에서 죄명이 ‘무기고 피습’으로 적시된 63명도 모두 지역민이었고, 이중 44명(59%)은 피습 무기고 소재지가 일치했다. 이들은 무기고 피습 당시 위치 등 지역민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파악돼 북한군 개입의 전문적 수법의 무기탈취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조사위는 보고서 중간에 ‘왜곡된 자료와 일부 진술자들의 신빙성이 낮은 진술에 시간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조사위는 남평지서 피탈 시간을 오후 1시 30분으로 확인했다면서도, 박동화 남평지서장의 진술 번복 등의 이유로 ‘확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박 남평지서장은 2017년 전남경찰청 조사에선 오전과 오후 2회 피탈됐다고 진술했고, 조사위에는 ‘오전 1회만 피탈됐다’고 진술했다.

진술은 엇갈렸지만, 1980년 당시 나주서 기록과 관련 경찰관(남평지서장, 나주경찰서 경무과장)의 책임을 묻는 징계기록은 모두 오후 1시 30분 이후였음에도 조사위는 확인할 수 없다고 적시한 것이다.

금성동파출소도 5·18 당시 파출소를 경계했던 경찰관의 진술서와 파출소장의 진술서, 나주경찰서의 ‘경찰관서 피습상황’이 모두 오후 2시로 통일됐지만, 소속 경찰의 계고장과 진술서를 보고 피탈 시점을 오전 11시 30분이라고 적시하기도 했다.

전원위 관계자는 “시위대의 무장과 계엄군의 발포 시간의 전후 관계는 5·18 진상규명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시위대 무장은 ‘국헌문란 행위’로 볼 수도 있으며, 자국민에게 발포를 감행했던 계엄군과 대한민국 육군의 명예와 정체성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며 “조사보고서의 뒷부분에서는 무기 피탈 시간을 확인했다면서도 중간 부분에서는 왜곡된 논거의 자료나 일부 진술자들의 신빙성이 낮은 진술 내용에 상반된 주장이 있어 일관성과 체계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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