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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 듣는 80년 5월의 그날 <5> 김유경 품 한국문화예술교류센터장

"폄훼 왜곡 아닌 제대로된 5·18 알리고 싶었다"
어린시절 기억 민주화 열망 담아
5·18 주제 닥종이 인형 군상 작업
완성 이후 유엔서 전시열고 싶어

2024년 05월 19일(일) 19:26
5·18 군중
“직접 목격한 5·18이 왜곡되고 폄훼되는 사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전 세계에 5·18을 알려 민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김유경 품 한국문화예술교류센터장의 말이다. 김 센터장은 한지조형 작가다. ‘예술은 역사와 함께한다’는 게 그의 창작 지론으로 한지로 잊혀서는 안 되는 한국의 역사와 인물의 군상을 만들어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고려인들과 함께 3·1 운동을 모습을 재현한 닥종이 인형 작업을 했고,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과 문화교류를 기획, 광주시비영리민간단체 공익사업 지원금과 개인 비용을 보태 지난 4월 19일부터 24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방문,‘고려인과 함께하는 한국문화예술이야기’를 주제로 우리의 전통예술을 전파했다. 몇 해전부터 는 꾸준히 광주 시민들과 5·18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김 센터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0년 5월 18일 당시 김 센터장은 광주에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김 센터장은 도청인근에 살고 있었다. 김 센터장이 어린시절 겪은 5·18은 공포의 기억이다.

“당시 도청 근처에 살았는데 거리 곳곳이 탱크로 가득했어요. 공수부대가 총칼을 들고 다니고 시민들을 폭행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했어요. MBC에 불이 나면서 전기가 끊겼고 고모가 살고 있는 서방시장으로 피난을 갔어요. 당시 서방시장 인근이 시골이어서 아주 고요했거든요. 부모님은 계엄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항상 도청으로 나가셨어요. 어린 마음에 서방시장에서 걸어서 도청까지 나가 본 광주의 모습은 죽음의 도시 같아 공포로 다가왔어요.”

1980년 5·18에 대한 공포의 기억은 성장하면서 변화했다. 민주화 바람이 뜨겁게 불던 1980년대 학생들의 목소리에 김 센터장도 힘을 싣기도 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피어난 민주화의 열망은 김 센터장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 5·18을 주제로 광주시민들의 군상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데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년 전부터 해외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했어요. 캐나다 국공립학교를 찾아 우리 한국문화를 알리는 교육도 하고 강좌도 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민한 한국인들과 만나게 되는데 5·18을 바라보는 시선이 딱 두 갈래로 나눠지더라고요. 전라도 사람들은 5·18을 역사적인 사실 그대로 아는 반면, 경상도 사람들은 5·18을 북한군 소행이다, 빨갱이다고 왜곡하더라고요. 제가 직접 5·18을 보고 겪었는데 폄훼하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어요. 한지로 인형을 작업하는 작가이고 가지고 있는 기술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 센터장의 광주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혼자 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광주시민과 함께 만들었다.‘닥종이 인형으로 전하는 시민 목소리’라는 프로젝트는 7년간 이어지고 있다.

“혼자 작업을 하다 문득 광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5·18 하면 대동정신이 대표적이잖아요. 그러기에 시민들의 힘을 모아 작업을 하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직접 시민들을 찾으러 이곳저곳을 다녔고 학교와 단체에 전화를 걸어 저의 작업과정을 소개하고 힘을 모아줄 것을 요청하며 힘을 모아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 센터장의 작업목표는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 군중 518명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400명으로 목표치와 가까워지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 작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쉽지 만은 않았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제안을 하면 흔쾌히 뜻을 함께 해주는 분들도 많지만, 간혹 또 다른 목적이 있다고 바라보시거나 상업적으로 생각하며 저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어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작가로서 작업에만 몰두한다면 대우를 받을 텐데 이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고민을 하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광주 이야기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일은 저만이 할 수 있다며 격려를 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 다시 힘을 내게 됐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광주 시민들 또한 1980년 당시 광주에 살았던 시민들도 있고, 5월을 배우려는 학생 등 다채롭다. 프로젝트 또한 정부의 지원 없이 오직 김 센터장 자비로 이뤄지고 있다. 프로젝트 참여의사만 밝힌다면, 시민들은별도의 재료비 없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단 진심 어린 마음은 필수다.

“프로젝트 참여비는 없지만 참여자들에게 마음속에 있는 5·18을 담아 달라고 부탁해요 그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담긴 메시지를 담고 싶기 때문이죠.”

김 센터장과 광주시민들이 작업한 5·18 군중작품을 살펴보면, 계엄군에 맞서 소리쳐 목소리를 내고 있거나 강력한 투쟁의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군중의 모습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작품을 보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5·18 당시를 재연했는데 왜 광주 시민들이 웃고 있고 있냐고 질문해요. 저는 5·18을 겪은 시민들이 더 이상 아픔에서 멈춰있지 않았으면 했어요. 아픈 시절이 있었지만, 우리 한국민주주의 를 위해 광주 시민들은 큰일을 해냈고 이는 세계 평화를 던져 주는 메시지가 됐으면 했어요. 당시 거리로 나간 광주시민들이 투쟁을 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 또한 시민 모두 평화와 행복 속에 살고 싶었던 마음이잖아요. 그 마음을 행복한 표정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5·18 군중 작품은 미디어 아트로 담겨 광주 시내 미디어월에서 상영되기도 했고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다. 김 센터장은 518명의 군중이 모두 완성되는 날 유엔에서 전시를 열어보고 싶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우리 광주의 이야기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서 평화의 이야기로 풀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518명의 작품이 다 만들어지면 평화의 상징인 유엔에서 전시를 열고 싶어요. 이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투어 전시를 하면서 우리 이야기를 한번 전해보고 싶어요.”

글·사진=이나라 기자

518 군중
518 군중
김유경 센터장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5·18 당시 광주시민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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