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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뮤직 줌 <90> 차이콥스키, 교향곡 1번

봄 기다리며 자유 꿈꾸는 몽상가의 희망
민요풍 선율·나로드니키 경향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지휘 초연
3번째 개작으로 세상에 내놔

2023년 12월 07일(목) 18:39
차이콥스키 교향곡 1번 중 4악장 주제 선율
차이콥스키(1840~1893)는 1859년 법률학교를 졸업한 후 그해 바로 법무성 공무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법무성에서 일을 할수록 정부의 부정부패와 본인의 일에서 오는 공허함을 느끼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당시 그에게 큰 힘이 된 것은 음악이었다.

1860년은 러시아 음악에서 근간이 되는 사건이 발생된다. 당대 명 피아니스트로 이름 알린 안톤 루빈스타인(1829~1894)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 교실을 설립했다. 삶에서 방향을 잃은 차이콥스키에게 창설한 음악 교실은 관심의 대상이었고, 1862년 음악 교실은 음악원으로 정식 개원을 하게 되면서 차이콥스키도 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의 심경을 그의 여동생 알렉산드라에게 아래와 같이 편지에 담았다.

“지금 난 늦었든 빨랐든 음악의 길로 바꾸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하늘이 명하는 대로 걸어가고 싶을 뿐이야. 유명한 작곡가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가난한 음악 교사로 끝날지는 알 수 없어. 물론 내가 공무원으로서가 아니고 예술가로서 확실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음악 공부를 그만두지 않을 생각이야.”

사회적으로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일인지, 그의 가족은 물론 주변인들이 얼마나 그를 걱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에게 음악은 삶의 영감이면서 당시 사회적 통념과는 거리가 먼 예술가적 기질을 바꾸긴 어려웠다. 결곡 1863년 법무성에 사표를 내고 음악가로서 삶을 결정하게 됐다. 그리고 186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864년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안톤 루빈스타인의 동생)은 모스크바 음악교실을 개설하고, 그의 형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설립한 것과 같이 모스크바 음악원 창설을 준비하고 1866년 개원하면서 차이콥스키를 음악원의 이론 교사로 초청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정식으로 작곡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중 번호와 표제가 붙은 교향곡은 6번 ‘비창’과 1번 ‘겨울날의 환상’이 유일하다. 제목은 없지만 차이콥스키의 음악성이 특별히 오케스트레이션이 눈부시게 잘 드러나는 곡은 4번 이후부터 그의 음악성과 러시아의 감수성이 어우러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성으로 뛰어난 그였지만 그가 고민하는 것은 늘 음악의 형식과 자연스럽게 동기들을 확장하고 연결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1888년 콘스탄틴 대공에게 보낸 아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음악에 대한 형식을 파악하고, 조작하는 것에 대해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평생 동안 괴로워했다. 나는 이 선천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형식에 있어 진정으로 완전한 것을 만들지 못한 채 무덤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나의 작품은 항상 사족으로 가득해 유식한 사람이 보면 금방 그 장치를 알아 버리겠지만, 나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교향곡 1번

표제를 갖고 있는 그의 첫 번째 교향곡답게 1악장(겨울 여행의 몽상)과 2악장(황량한 땅, 안개의 땅)은 독립적인 표제를 담고 있다. 교향곡 전 악장은 민요풍의 선율과 마지막 악장의 주제 선율의 전개는 나로드니키(Narodniki: 19세기말 러시아에서 생성된 인민 농민 중심의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이념과 사상을 지향하는 사람들 인민주의자)적인 경향을 들려주고 있다.

작품은 1866년 차이콥스키가 모스크바 음악원에 교편을 잡은 해 봄에서 여름 동안 첫 번째 판이 완성됐다. 당시 안톤 루빈스타인과 자렘바에게 자문을 구했으나 이들에게 수정할 것을 권유받고, 두 번째 판의 연주는 1868년 2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초연을 했다. 차이콥스키는 초연을 지휘해 준 니콜라이에게 교향곡 1번을 헌정하게 된다. 하지만 초연 후에도 차이콥스키는 만족하지 못해 3번째 개작을 통해 1875년 수정판을 재출판하게 되고, 1883년 12월 1일 막스 에르드만스데르퍼의 지휘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전체 악장은 4개의 악장 구성으로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느린 3부 형식, 3악장은 스케르초, 4악장은 구슬픈 서주를 가진 소나타 형식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2악장은 목관악기의 주제 선율과 현악기 군의 악기가 발전시키면서 주제 선율을 들려주고 있다. 이는 차이콥스키의 선율 확대 방식과 러시아의 우울한 감수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악장으로 그가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의 잠재력을 들려주고, 교향곡의 제목이 주는 비장함과 계절이 주는 자연의 환상을 느낄 수 있다. 이 교향곡의 백미는 마지막 4악장에서 다시 한번 들을 수 있다. 인상적인 주제 선율은 1861년 카잔(Kazan) 학생운동의 대중가요 ‘꽃이 피었네’의 멜로디를 사용해 당시 러시아 농노 해방기의 러시아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작품의 종결은 민중가요가 사용된 만큼 과감하게 주제를 강조하며 힘찬 열기를 이루며 절정을 만들어 화려한 종지를 들려주고 있다.

러시아의 겨울과 우리의 겨울 모습은 각기 다른 인상을 주겠지만 차이콥스키 교향곡 1번에서 주는 계절적인 공통점과 봄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소망과 자유를 꿈꾸는 몽상가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
(왼쪽부터) 니콜라이 안톤 루빈스타인
차이콥스키 교향곡 1번 중 2악장 주제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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