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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학문의 건강한 풍토를 위하여
2023년 05월 18일(목) 16:51
<기고>학문의 건강한 풍토를 위하여
이강래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지난해 말에 ‘전라도천년사바로잡기전라도민연대’(이하 ‘연대’)가 배포 직전의 ‘전라도천년사’의 서술 내용에 대해 일제 식민사관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그 이후 여러 언론은 물론 심지어 지방의회와 국회의원들까지 연이어 연구자들을 꾸짖었다. 이처럼 전라도의 다양한 구성원이 한목소리로 한국사 연구자들을 식민사학자라고 치죄한 전례가 없다. 200여 명이 넘는 연구자들로 구성된 집필진과 편찬의 절차를 점검하고 추진해온 편찬위원들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상처를 입었다. 사태는 얼른 수습하기 어렵게 헝클어지고 말았다.

‘연대’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들은 한국의 역사학 및 고고학계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문헌 고증의 안목과 고고학적 유물 정보를 바탕으로 마한과 가야와 백제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일본서기’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사실 자체마저 성토한다. 글쓴이의 비판 문맥이 아니라 오히려 이른바 ‘임나일본부론’을 긍정하거나 지지하는 서술로 읽어버리는 기이한 현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관련 서술에 대해 문득 ‘동북공정’을 추종하는 사대주의 관점이라고 논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천년사’가 전라북도 남원을 왜의 식민지인 기문(己汶)이라고 조작했다는 비판을 들 수 있다. 그렇게 지적한 분의 시각은 일본서기의 기문을 왜의 식민지로 보는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백제와 반파(伴跛)가 기문을 둘러싸고 갈등한 맥락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천년사’ 집필진을 포함한 고대사 연구자 가운데서는 일본서기 필법을 신봉하여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인정하는 경우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6세기 전반에 작성된 양나라의 직공도(職貢圖)에도 백제 인근의 소국 가운데 기문과 반파(叛波) 등이 보이므로 이들 지명(국명)은 6세기 초 백제 인근 가야 정치체로 보는 게 온당하다.

현재 위치 비정에서는 이견도 있겠지만, 이들은 일본서기의 서술처럼 왜 왕권이 장악한 식민지가 아니라 가야 세력의 일원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서기의 고대 한국 관련 기록들이 8세기 천황 중심 국가주의에 영합하여 윤색된 것이라는 사실은 다시 이를 필요가 없다. 반면에 그 윤색과 왜곡 이전의 전승을 탐색하여 우리 고대사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정보 자질을 발굴해 내는 것은 연구자의 역량 문제일 뿐, 식민사학과는 무관한 것이다. 남원의 가야 고분군이 바야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게 된 것도 그와 같은 연구 역량 덕분이다.

물론 나는 동료 필자들이 서술한 내용 모두를 동의하거나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랜 연구성과에 바탕을 둔 그들의 고민과 주장을 존중한다. 우리 사회의 건강과 성숙을 희구해서라도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하여 문득 식민사관과 사대주의를 들씌우는 타성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글 아는 이라면 스스로 읽고 음미하여 주체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천년사’는 이미 필진과 전문이 공개되어 있다. 자칫 혐오주의와도 다를 바 없는 세태에 뇌동하여 진지한 성찰을 포기한다면 그 결과 초래될 미래가 너무도 암울하다.

누구나 우리 역사의 특정 국면을 탐구하고 그만의 설명을 내세울 수는 있다. 그 가운데 서로 다른 설명들은 설득력을 경합하면서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려는 모색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설명은 새로운 설명에 의한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학문이란 모르는 것을 전제로 한 활동이며, 지식인이란 끊임없이 더 나은 설명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천년사’ 집필진은 우리 역사학계의 현 단계 역량을 반영하는 한편, 자신의 연구성과를 일관되게 가다듬어 지방정부의 요청에 부응한 이들이다. 학술적 비판을 외면할 까닭이 없다.

진리가 다수결로 결정될 일은 아니라는 데는 ‘연대’ 측에서도 동의할 줄로 안다. 그분들의 주장이 우리 사회의 공교육 기관 연구자들의 생각과는 대체로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의 마당에서조차 다중의 위력이 득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만 자연과학에도 윤리가 외면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역사학의 설명 역시 최소한의 실증과 논리를 갖추어야 학술적 견해가 된다. 이를 위해 논란의 대상이 된 구체적 사안별로 양측의 학술적 견해를 비교할 수 있는 장기적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답일 수 있다.

지방정부는 처음 일부 시민단체의 항의를 접하고, 집필자들이 과연 전라도를 온통 일본 땅이라고 서술했는지 ‘사실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동안 일말의 기대를 편찬위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앞을 다투는 비난들만 폭주하는 가운데 관련 사안에 대한 책임 있는 대답은 여태 들리지 않는다. 이제라도 정책을 추진한 주체답게 궁리하여 오히려 위난 상황에서 의젓했던 전라도인의 표상을 제대로 증명하기를 열망한다. 건강한 지성을 고대하는 전라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여겨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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