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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 <24> 더 파더

내 기억의 신호등은 붉은색이다
인간의 정신적 죽음에 대한 고민
집이란 공간 속에서 느끼는 공포
치매 환자의 기억과 시간에 초점

2022년 06월 23일(목) 17:39
‘더 파더’(The Father, 2020)는 치매를 통해 인간의 정신적 죽음을 고민하게 만든다. 죽음이 인간의 육체적 소멸이듯 치매는 정신적 죽음이다.

인간을 기억의 미로에 빠트리는 치매는 기억의 언저리를 빙빙 맴돌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두려운 존재다. 특히 영화는 가장 익숙한 장소인 집이 미지의 공간으로 변하는 공포를 치매 환자의 시각에서 접근한다.

그리고 치매의 현실적 증상과 시점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이를 통해 사라져가는 기억이 인간을 얼마나 나약하게 추락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영화는 철저하게 집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구성된다. 제한된 공간이란 단점은 치밀하게 설계된 세트와 치매 환자의 심리를 상징하는 소품의 변화 및 잘 짜인 각본 등의 힘으로 극복해 나간다. 그래서 연극 같은 영화를 만들어간다.

‘더 파더’
더욱이 영화는 치매를 앓는 주인공 안소니의 의식 자체를 따라 흘러간다. 반면 관객에게는 발생하는 사건의 상세한 정보마저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관객 역시 혼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치매 노인의 정신적 혼란을 다룬 영화에서 명확한 개연성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하지만 관객을 일부러 제3자의 시선으로 만든 것은 영화의 의도된 작전이다. 치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들의 삶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도록 만든다. 결국, 관객이 치매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효과를 만든다.

치매를 앓는 노인의 정신적 혼란을 경험하다 보면 망각의 두려움이 슬며시 밀려온다. 인간이 가진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기억과 공간이 무한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삶과 시간도 그렇다.

영화는 딸 앤이 안소니를 급하게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를 혼자 보살피기 버거웠던 앤은 새 간병인을 들이는 문제로 안소니와 갈등을 겪는다.

‘더 파더’
안소니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자신은 혼자 있어도 될 정도로 건강하고 타인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 급기야 간병인이 자신의 시계를 훔쳤다며 도둑을 집에 들일 수는 없다고 항변한다.

날이 갈수록 안소니의 기억은 자꾸만 틀어져 가고, 딸은 아버지를 런던에 남겨두고 파리로 떠난다. 결국, 그는 집을 떠나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놀랍게도 요양병원의 창문 위치, 침대와 장롱, 의자, 액자가 걸린 위치 등이 안소니 집과 비슷한 구조로 묘사된다.

안소니가 자기 집이라 집착하고 우기던 공간은 요양시설이다. 하지만 치매를 앓는 안소니는 요양시설에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요양시설을 자기 집으로, 직원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착각한 것이다.

딸이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맡기고 나오는 장면에 깨어진 얼굴처럼 생긴 큰 조각상이 나온다. 뇌만 사라진 조각상은 안소니의 현재 모습 그 자체다. 그리고 딸의 얼굴에 비친 죄책감과 해방감의 이중적 표정은 치매를 간병하는 가족의 혼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색깔을 통해 주인공의 생각과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영화는 파란색을 기본으로 붉은색의 포인트로 화면을 구성한다. 주인공의 나약함은 파란색으로 권위는 붉은색으로 상징해 화면에 변화를 준다.

‘더 파더’
이를 반증하듯 영화 초반부 안소니가 파란색 비닐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 장면이 있다. 파란색의 빈 비닐봉지는 기억을 잃은 채 나약한 육체만 남은 자신의 처지를 은유한다.

여기에 사고로 죽은 둘째 딸이 병원에 입원했던 장면은 극단적인 파란색으로 연출된다. 그가 걸친 붉은색 가운마저 파란색으로 물들면서 애써 외면한 둘째 딸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의 나약함은 절벽에 도달한다. 잊고 싶은 것은 잊지 못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의 극한 모습이 반영된다.

영화는 치매를 겪는 환자의 행동이 아닌 기억과 시간에 초점을 둔다. 주인공은 유독 손목시계에 집착한다. 시계를 숨기는 그의 행동 속에는 시간을 감추거나 멈추게 하려는 무의식이 작용한 셈이다.

‘더 파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먹이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안소니 홉킨스의 눈물이 가득 찬 눈동자에는 엄마를 향해 뛰어가는 소년의 순수함과 생의 마지막을 돌아보는 노인의 두려움이 모두 담겨 있다.

한편 기억의 혼란으로 자신의 세상마저 의심하는 치매 노인을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를 빼놓을 수 없다. 80대 노인부터 7세 아이의 모습까지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연기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고령 남우주연상도 수상한다.

‘더 파더’의 치매 노인도 우리 시대의 나머지 인간이다. 그를 통해 망각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바라볼 수 있다. 인간의 삶도 망각의 두려움 앞에서 초라해진다.

‘내 모든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그래서 나와 내 시간을 기억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영화는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판씨네마㈜

‘더 파더’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 황동규 시인의 ‘풍장’ 연작시



‘더 파더’의 소재인 치매는 인간의 정신적 죽음이다. 기억의 언저리를 빙빙 맴돌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치매는 두려운 존재다. 죽음을 기억하게 만드는 전조증상 같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황동규 시인의 ‘풍장(風葬)’ 연작시가 머리를 스쳐 간다. 죽음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삶의 관조가 영화의 주제와 평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풍장 연작은 우리 시대 대표 시인인 황동규가 1982년 1편을 시작으로 1995년 70편으로 완결된다. 죽음을 사람의 자극이자 완성으로 포용한 시적 상상력이 풍장이다. 특히 죽음에 대한 치열한 사유가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죽음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문이라는 이해와 연결하게 한다.

풍장은 군산 선유도를 비롯한 서남해 도서 지방에서 행해지는 독특한 장례법이다. 바다에 나간 아버지나 자식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주검을 땅에 묻지 않고 초막에 둔 데서 유래한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로 시작하는 연작시는 삶과 죽음의 아름다움과 깨달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 둘의 투쟁 속에서 평온을 발견하는 인생의 여정을 노래한다. 그리고 죽음길들이기를 거쳐 죽음의 긍정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극복한다.

영화 속 주인공 안소니가 시계에 집착하듯, 시 풍장도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라며 시계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타자화시키는 평행이론도 보인다.

치매와 죽음은 삶의 유한함이 만든 산물이다. 더 파더 속 주인공도 풍장을 기다리는 연약한 나머지 인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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