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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강제철거…한겨울 환자들 어떡하라고

■광주 북구 임동 그린요양병원 가보니
작년 임대기간 만료…식당 폐쇄 도시락으로 대체
국민청원 호소…"최소한 배려·이주대책 마련해야"

2022년 01월 09일(일) 19:02
8일 오전 개발을 앞둔 광주시 북구 임동 옛 전남방직내 그린요양병원 식당이 법원의 강제 철거 집행으로 이용할 수 없게 되자 환자들이 외부에서 사들여온 도시락을 먹고 있다./김생훈 기자
전남방직 부지에 입주한 요양병원 중증환자들이 법원의 강제 철거 집행에 한겨울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집행요원들이 병원 내 조리시설을 모두 뜯어내 강제 압류하면서 식당 이용이 전면 폐쇄됐기 때문이다.

특히 병원에 입원중인 무연고 환자들은 전남방직 개발을 앞두고 갈 곳 마저 없는 처지에 놓이는 등 최소한의 배려와 이주대책 보장마저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9일 오후 1시께 광주 북구 임동에 위치한 그린요양병원.

이날 점심시간이 막 지났음에도 고소한 밥 내음과 따뜻한 국 냄새는 풍기지 않고, 각 병실 문 앞에는 환자들이 먹고 남은 플라스틱 도시락 용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병실 내부로 들어서자 아직 식사를 마치지 않은 한 어르신이 숟가락을 들고 있었고, 일회용 배달 용기에 들어 있는 밥과 국은 다 식어 딱딱하고 차가웠다.

옆 병상의 환자는 식사 시간임에도 옆으로 쭈그려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먹다 남은 죽이 담긴 용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80대 어르신 환자는 식사를 막 마치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한 어르신은 “살면서 이렇게 오래 도시락만 먹어본 적도 처음이다”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현재 그린요양병원에는 300여명의 중증·치매 환자가 생활하고 있다. 치매환자 80여명, 중증환자 150여명,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무연고환자 30여명으로 당장 몸도 가눌 수 없는 지경에 놓인 환자들이 상당수다.

전남방직은 지난 2020년 6월 세입자들과 임대 기간이 만료되자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퇴거를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명도 소송을 제기한 전남방직은 지난해 4월 승소 판결을 받고 법원에 강제 철거 집행을 요청했다.

법원은 지난해 6월부터 12월29일까지 3차례에 걸쳐 병원장실·행정실·식당 등에 대한 강제집행을 진행했다.

병원에 입원중인 한 환자의 보호자는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병상의 아버지께 뜨뜻한 국물과 밥 좀 드시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약 한 달 전부터 병원에서 아버지를 직접 간병하고 있다는 그는 “안정된 식사는 쇠약한 환자에게 치료의 한 방편이며 식당은 환자들의 생명줄”이라며 “추운 겨울에 환자들의 국과 밥을 데울 수 있는 임시 주방이라도 만들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려와 대책을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요양병원 관계자는 “폭력적인 철거 현장을 지켜본 환자들은 물론 직원들 상당수가 불안 증세로 정신적 후유증을 보이는 상태”라며 “소화 불량으로 일반적인 식사가 어려운 중증 치매 어르신들이 태반인데 간단히 음식을 데울 만한 임시 주방기구라도 들이고자 하지만, 병원 곳곳에 감시원이 배치돼 이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수기 그린요양병원 병원장은 “식당을 폐쇄하는 것은 중증환자들의 생명에 지장을 주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며 “안 옮기겠다는 게 아니라 내부 사정을 봐서 시간을 좀만 더 달라는 것 뿐인데 아직 환자들이 머무르는 병원에 이렇게까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철거를 진행해야만 하는 급박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시는 북구 임동에 전남방직(16만㎡)과 일신방직(14만㎡) 부지의 재개발을 추진중이다. 광주지역 근대산업 유산으로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부지를 특급 호텔과 복합문화시설 등 전략적 중심상업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김민빈 기자         김민빈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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