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박병태·김혜린 기자]“지난해는 가을장마, 올해는 고온현상으로 또 배추 농사를 망쳤습니다.”

4일 오전 해남군 화원면 영호리 저상마을 최동환 이장(66)은 애써 키운 배추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수확기에 접어든 가을배추 작황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해남 등지에서 지속적인 고온 현상으로 무름병 등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저상마을에서는 50농가에서 30만평 규모를 재배하고 있다. 1마지기당 평균 10~15%가 이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

최 이장은 “지난달 초부터 시작된 무더위에 한창 자랄 배추들이 성장을 멈췄다”며 “고온현상으로 배추들이 자라지 못하고 물러져 주저앉은 무름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밭에서 무름병에 걸린 배추를 직접 뽑아 무름병을 설명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도 자세히 들춰보면 밑동이 누렇게 변하고 뿌리는 안쪽까지 짓물러 배추를 뽑으면 우수수 배춧잎이 떨어진다. 고온 현상에 잘 자란 배추도 성장이 더뎌 크기가 작았다.

최 이장은 “덜 자란 배추는 더 키우면 되지만, 속이 무른 배추는 상품가치가 없어 팔 수 없다”며 “무름병에 걸린 배추에 대한 피해 보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배추 주산지인 해남에서는 2,000농가에서 2,414㏊ 면적에 26만1,267톤을 재배하고 있다. 전체 재배면적의 10% 가량이 무름병 등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배추가 한창 성장할 9월말부터 10월 중순 사이에 잦은 비와 28~31도를 기록한 고온 현상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상기온 영향으로 배추 대부분이 출하 기준에 못 미치는 3~3.5㎏를 보이고 있다. 출하 기준인 4~5㎏이 되려면 1~2주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최 이장은 “30여년째 배추 농사를 하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밝혔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배춧값을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고, 인건비 등 농사 기본비용이 올라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전부터는 계약재배로 전환했다. 1마지기당 60만원에 계약재배를 하고 출하하면 수중에 들어오는 것은 25만원 수준이다.

마지기로 계산돼 계약을 진행하지만 병충해 등으로 판매하지 못하는 배추가 생기면 계약재배 역시 제 값을 받지 못한다.

최 이장은 “배추 한 포기가 600원에 거래되는 꼴인데, 1,000원은 돼야 유지가 된다”며 “소비자들은 공산품 가격이 100~200원 오르는 건 신경도 안쓰면서 농작물이 100~200원만 올라도 엄청 비싸졌다고 하니 가격을 올릴 수가 있냐”고 토로했다.

같은 마을 강용기씨(71)는 “올해는 손해나 안 보면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다”며 “이달 중순까지 잘 커야 배추에 맛이 든다. 서울과 수도권 김장 시기가 일주일 정도만 늦어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여름부터 정성들여 키운 배추가 좋은 가격을 받아 팔리면 좋겠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며 “김장을 하는 가정이 많아져야 배추 수요가 늘 것이다. 올해도 김장을 안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고 걱정했다.

김장철을 앞두고 서민들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을장마 등 이상기온 영향으로 주재료인 배추와 무를 비롯해 마늘, 소금, 양파 등 양념재료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김장을 꺼렸다면 올해는 농산물값 상승으로 김장을 포기한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김장을 앞두고 배추와 무 수급과 관련해 “가을배추는 생산량 감소에 따라 가격이 소폭 상승하나 수요 감소 등 영향으로 상승폭은 제한적일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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