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사람의 길…신의 길… 그 길을 잇고저

■순례자의 섬 ‘기점, 소악도’
1km 마다 12사도의 이름 딴, 아름다운 ‘건축미술’
예배당은 누구나 자신만의 장소로, 자기성찰 공간
증도 주민 90%가 개신교를 다니고 있는 데서 착안

2021년 09월 23일(목) 16:29
바르톨로메오의 집
[전남매일 신안=이주열 기자]느릿느릿, 싸목싸목, 걸어야 제격이다. 바닷물이 빠질 때만 볼 수 있는, 하늘이 허락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마저도 하루에 몇 번 내어주지도 않는다. 물때에 따라 야속하게도 길은 이내 사라졌다, 드러났다를 반복한다.

맨드라미꽃의 향연이 한창인 이웃 섬, 병풍도와 돌다리를 마주한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은 신비스럽다.

아주 먼 옛날부터 갯벌에 돌을 던져 만든 노둣길로 이어졌다.

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환상적인 섬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점, 소악도로 불리는 이곳엔 1km 마다 12사도의 이름을 딴, 작고 아름다운 ‘건축미술’ 작품이 곳곳에 들어섰다. 경외감마저 드는 작은 예배당은 예수의 12제자 이름으로 지어졌지만 특정 종교인을 위한 것은 아니다.

작은 예배당은 누구나 자신만의 신앙의 장소로, 자기성찰의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순례자의 섬으로 다시 태어난 기점, 소악도는 지난 2017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지정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증도 주민 대부분인 90%가 개신교를 다니고 있는데서 착안했다. 섬이 지닌 독특한 매력으로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꾀하고 걷는 여행의 맛과 멋을 더하는 의미로 작은 예배당 건축미술을 확정했다.

12개의 작은 예배당 프로젝트에는 11명의 공공조각과 설치미술 작가들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강영민, 김강, 김윤환, 박영균, 손민아, 이원석 작가가 심혈을 다해 제작했다.

장 미셀 후비오(Jean Michel Rubio, 프랑스), 파코(Pako, 프랑스/스페인), 브루노 프루네(Bruno Fournee, 프랑스), 아르민딕스(Armindix, 포르투갈), 에스피 38(SP 38, 독일) 작가도 정열을 쏟아냈다.

신안군은 국내·외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배려했다.

작가들은 섬 곳곳을 다니며 콘셉트에 맞게 작품을 설치할 장소를 물색한 끝에 위치를 선정했다.

계절이 세 번 바뀔 때까지 작가들은 섬 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연과 함께 자신과의 전쟁을 벌였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건축미술’ 형태의 이 작품들은 노둣길과 숲속, 언덕, 호수 위, 마을 입구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성당을 닮은 건축물도, 프랑스의 몽셀 미쉘의 교회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러시아 정교회의 둥근 모양도 선보이고 설치 작품마다 고귀한 사연들을 품고 있다.

저마다의 스토리를 간직한 작은 예배당은 두 평 남짓으로 자연채광, 자연통풍이 특징이다.

콘셉트도 다르고 모양도, 이야기도 각각인 작은 예배당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기점선착장에 들어선 김윤환 작가의 ‘건강의 집’ 베드로

그리스 산토리니의 하얀 건물과 파란 지붕을 연상시켜 지중해의 이국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멀리서 보면 등대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순례길의 시작이자 오가는 배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기도소(대기소)와 작은 종탑, 화장실까지 같은 톤으로 꾸몄다.

공공미술의 활용성을 최대한 고려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건물 사이에 낮게 매달린 작은 종을 한번 치면 순례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작가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순례를 시작하고 마무리 하자는 의미로 ‘건강의 집’으로 이름 지었다.

◇북촌마을 입구, 이원석 작가의 ‘생각하는 집’ 안드레아

경주의 바닷가 출신인 이원석 작가가 섬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작품을 제작하는 기간 동안 받은 인상들과 생각들을 담았다. 하루 두 번씩 열리고 닫히는 바다와 갯벌에서 영감을 받았다.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고양이들과 양식을 빻던 돌절구, 구유와 연자방아의 받침돌 등도 소재로 쓰였다. 잘 가꿔진 꽃 잔디 동산과 사방에 보이는 양파 밭, 유독 바람이 많은 노둣길에서 갖은 소회가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러시아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 안드레아를 생각하며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을 섬 주민들의 삶의 바탕인 양파에 대입해 탑 형태로 제작했다.

◇야산 입구 김강 작가의 ‘그리움의 집’ 야고보

그리움의 집은 마을길을 지나고, 논길을 건넌다.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나락이 눈부신 풍경 속으로 걸어간다. 호수가 끝나는 숲 근처에 지어진 작고 아담한 건축물이다.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 수줍게 분홍빛이 배어나는 흰 벽면은 이중삼중 덧칠로 마감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난히 작은 실내에 단정한 의자가 바쁜 일상에 지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정면에는 아름다운 부조가 눈에 띈다. 우아한 촛대에 불을 밝히며 그리운 사람을 떠올린다.

◇남촌 마을 입구, 박영균 작가의 ‘생명평화의 집’ 요한

마을 어르신이 기부한 땅에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의 바램을 담았다.

아름다운 타일아트 부조로 바닥과 실내를 가득 채웠다. 전체적으로 둥근 타원형으로 얼핏 천년전 별자리를 관찰하던 첨성대를 닮았다.하늘과 땅이 소통하는 공간이다.

천정과 벽에 설치된 채광용 창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빛의 밝기에 따라 변한다.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계단과 아트타일로 장식한 외뿔 염소가 인상적이다.

◇장미셀, 파코의 ‘행복의 집’ 필립

소기점으로 건너가는 길 언덕에 전통적인 프랑스 남부의 건축양식이 선명하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 마을의 예술촌장인 장미셀 후비오와 아나키스트로 알려진 ‘파코’가 공동으로 참여 했다. 인적이 드문 섬에서 음악을 켜고 춤을 추며 작업할 정도로 섬을 사랑했다고 주민들은 귀띔했다.

하루에 두 번 물에 잠기는 노둣길을 앞에 두고 돌담을 쌓고, 닦고, 구부리고 용접하고 대패질, 못질까지 손수 완성했다. 벽돌사이에 넣은 갯돌은 인근의 바닷가에서 주워와 쌓았다. 하늘을 향한 유려한 곡선의 지붕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더한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건축 형태라는 평가다.

◇호수 위 장미셀, 얄룩의 ‘감사의 집’ 바르톨로메오

물이 찰랑찰랑한 호수 위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연출했다. 저수지의 물을 3일간에 걸쳐 양수기로 퍼내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기초 파일을 박고 작업용 디딤틀을 만들고 본체의 작품을 하기까지 약 8개월이 걸렸다. 스텐 구조물과 컬러 유리의 채색으로 화려한 빛과 물빛이 어우러졌다. 쉽게 다가 갈 수 없어서 더 신비함을 가진 물 위의 작품이다.

◇순례길 들판, 김강 작가의 ‘인연의 집’ 토마스

섬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완만한 언덕과 풀밭이 펼쳐진 지형에 자리 잡았다. 앞으로는 마을의 논밭이, 뒤로는 갯벌이 펼쳐졌다. 전체가 흰 회벽으로 구성됐고 왼쪽 벽에는 ‘오병이어’ 부조가 있다.

비대칭의 창문들이 즐겁고, 정면의 푸른색 문이 인상적이다. 신비한 빛깔의 푸른색 안료는 모로코에서 가져왔다. 하늘의 별이 땅에 내려와 박힌 듯 작품 바닥에 유리구슬이 심어졌다. 건너편 바다를 등지고 선 작품의 뒷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워 이곳을 찾은 연인들이 스몰 웨딩을 연출한다.

◇노둣길 위, 김윤환 작가의 ‘기쁨의 집’ 마태오

갯벌을 매립해 돌로 된 기단과 기초를 완성했다. 뻘을 향해서 완만한 경사를 이룬 약간 높은 공간에 설치했다. 해질 무렵, 둥근 지붕에 반사되는 노을이 눈부시다. 섬 살이의 힘듦과 주민들의 생활상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양파 모양을 한 황동색 둥근 지붕을 올렸다.

◇둑방길 끝 장미셀, 롤랑의 ‘소원의 집’ 작은 야고보

소악도로 건너가기 전에 오두막을 닮은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어부의 기도소’로 항해와 조업의 안전을 기원하는 장소다. 파도와 커다란 물고기를 전면 벽에 배치하고 스테인드글라스의 푸른 빛을 내부로 깊숙이 끌어들였다. 밧줄과 외관에 매단 녹슨 닻은 갯벌에서 수집해 채웠다. 내부는 여행자들이 쉴 수 있도록 부드러운 나무 바닥으로 제작했다. 순례객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기원할 수 있도록 ‘돌’도 놓았다.

◇진섬 어귀 손민아 작가의 ‘칭찬의 집’ 유다 타대오

진섬의 어귀 쓰레기장에 예술 작품이 들어섰다. 부드러운 뾰족지붕이 연달아 있는 형태와 각각 모양이 다른 푸른 테를 두른 창문이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은 파스텔 톤으로 은은하다. 4개의 지붕 아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건축물 안팎에 연속 사방무늬로 깔린 타일은 이태리에서 가져왔다. 주변의 빈터엔 나무와 털머위, 해국 등 해안 식물을 식재해 작은 공원으로 만들었다.

◇해변 솔숲 강영민 작가의 ‘사랑의 집’ 시몬

가두지 않았고 문이 없으며 열려있는 공간이 특징이다.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작품의 위쪽에는 작가의 캐릭터 ‘조는 하트’(Sleeping Heart)가 한없이 평화롭게 졸린 눈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주변의 방풍림과 잘 어울리며 우람한 형태다. 실내·외에 커다란 조개껍데기 부조가 장식돼 있다. 텅 빈 공간에서 바람과 파도소리에 취해 볼 만한다.

◇딴섬 손민아 작가의 ‘지혜의 집’ 가롯 유다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을 지나 딴섬에 이르면 12km 순례길의 끝이다. 모래해변 너머로 물길이 가로 막히면 서 너 시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 물때에 따라 오고 가는 길이 사라져서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많은 이들이 벽돌을 지고 매고 끌고 와서야 완성된 작품이다. 사방 벽면은 붉은 벽돌의 요철만으로 연출됐다. 어긋나기와 돌려쌓기로 여러 차례 허물고 다시 쌓기를 반복한 결과다. 나선형 돌려쌓기로 신선한 감동을 주는 종탑도 눈여겨 볼 만 하다.

가롯 유다의 집
시몬의 집
야고보의 집 내부
기점 소악도 전경
마태오의 집
베드로의 집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