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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 에세이-질문과 대답<25·완>코로나 시대의 예술과 삶

“예술은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사람다운 삶 살 수 있는 정신적 근거
덧없는 삶에 위안·불멸의 가치 전달
예술의 목표는 ‘생존’ 넘어선 ‘가치’

2021년 01월 07일(목) 11:28
‘코로나-사막-AX‘ 전시 장면. 전주 서학동사진관, 2020. 11. 25~12. 26.
연일 1,000여명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코로나 감염자 때문에 수도권은 2.5단계 대응 수준이 이어지는 한편 전국적으로 비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될 뿐 착석이 안 되고 음식점 역시 밤 9시 이후 영업할 수 없으며 낮 시간에도 텅 빈 자리만 지키기 일쑤다. 거리 곳곳에는 건물에 ‘임대’와 ‘매매’가 나붙어 있는 게 일상적 풍경이 되어버렸다. 지난 연말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연말의 명동 거리는 한산한 상태를 넘어 껌껌하다고 했다. 어떻게 이 고난을 극복할 것인가?

코로나 19에 대하여 예술가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해진 것이 없다 어떤 예술가들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가해 벽화를 그리며 소일하기도 한다. 어떤 예술가는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하듯 화실에 들어가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들에게 이 상황은 잘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룹 AX가 ‘코로나-사막-AX’전을 전주 서학동사진관에서 열게 된 것도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한 공동 대처의 의지를 보인 것이다. 코로나가 일으킨 사막 같은 현실, 황폐해진 현실에 대응해서 예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황폐해진 삶, 인내하며 버틸 수밖에 없는 생활환경,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보이지 않는 세균에 대하여 방어적 자세를 지키며 지내야 하는 그 간의 상황은 모든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살지 않으면 안 되고,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지난 6월 창립전을 가졌던 AX 그룹이 연말에 임하여 두 번째 전시를 갖게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이번 전시의 주제는 ‘코로나-사막-AX‘로 정했다. 코로나가 몰고 온 황폐한 상황을 사막으로 규정하고, 우리가 직면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삶도, 예술적 환경도 좋지 않다. 그러나 예술은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삶의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예술은 생존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선 가치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60년대 정치적으로 힘들었을 때 시인 김현승은 ‘절대 고독’이라는 시를 썼다. 고독은 그 어려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그 어려운 현실을 정신적으로 이겨내기 위한 힘이었다.

그 한 대목을 옮겨보자.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그 끝에서 나는 눈을 비비고/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내가 만지는 손끝에서/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내가 만지는 손끝에서/나는 내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따뜻한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이 체온으로 나는 내게서 끝나는/나의 영원을 외로이 내 가슴에 품어 준다/…’

가장 힘들 때에 절대 고독에서 자신을 지키는 가치를 발견했던 시인은 영원의 먼 끝에서 오히려 손끝에서 만져지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사실 절대 고독과 따스한 체온은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지만, 시인에게는 역설적으로 상통하는 문제였다.

1991년 4월 천경자의 ‘미인도’를 두고 가짜 시비가 일어났을 때에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이 먹혀들지 않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애써 진품임을 강조하자 천경자는 절망 끝에 이렇게 진술한다.

“피곤하죠. 김현승의 시에 있듯이 요즘은 ‘절대고독’이에요.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찬란한 고독‘이라는 화제가 생각났어요. 하나의 수확인 셈이죠.”

그러나 그녀는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졌고, 2015년 8월 뉴욕에서 사망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결국 인간에게는 인간적 진실만이 남는다. 아무리 사회적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인간적 삶을 보장한다 해도 인간만이 갖는 그 진실을 뒷받침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시와 그림이 있는 것이고, 그를 통해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목사인 부친을 따라서 광주 양림동에서 살기도 했고, 숭일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김현승, 그리고 광주 전남여고에서 교직에 임하기도 했던 천경자.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예술 혼은 길이 기억돼야 한다. 예술은 누군가의 장식품이 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또는 생존과 관련된 우아한 상품도 아니다. 예술 정신은 여의치 않은 삶의 현실에서 제 정신을 갖고 살고자 하는 외침이기도 하다.

끝으로 김현승 시인의 ‘견고한 고독’을 일부 읊고 싶다.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모든 신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 밤/ 내 삶과 같이 떼어주며,/…’

나는 이 예민하고 정직한 감성에 찬사를 보낸다. 이런 감성에 공감치 못한다면 그 어떤 정의도 정당할 수 없다.

코로나 19 시대에 사람은 어떤 기력으로 살아가는가? 먹고 사는데 필요한 물질적 지지? 또는 언제나 함께 해온 가족들과 집에서? 그것도 사람이 험한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것이지만, 더 긴요한 것은 험난한 위협에 굴하지 않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정신적 근거이다. 기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그 어떠한 삶도 허무하다. 인생은 덧없이 흘러가는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만일 예술이 그 덧없는 순간에 대한 위안 혹은 순간에 대한 불멸의 가치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예술 또한 덧없는 것 아니겠는가? 2020년 한 해가 갔다. 아듀, 코로나! 아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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